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영 Dec 08. 2017

세 번째 살인

감춰진 진실의 여백을 골똘히 휘저어 놓는다.

후쿠야마 마사하루, 야쿠쇼 코지, 히로세 스즈가 출연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세 번째 살인'을 보고 왔습니다.


아직 개봉이 일주일 남았는데

저는 '이동진의 라이브톡'을 통해 미리 보고 왔습니다. ^^


영화 감상평과 별개로 오랜만에 라이브톡 관람이었는데

역시나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ㅎㅎ



지난 20여 년간 작품의 질로나 양으로나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 한사람만 꼽으라면

단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일 것입니다.


초기작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아마도, '아무도 모른다'를 기점으로

'태풍이 지나가고'까지 가족영화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였었는데

(이것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인터뷰를 보면

자신의 어머니 사망과 아들의 탄생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에겐 이번 작품이 '디스턴스' '공기인형' 이후

히로카즈 감독의 또 다른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형식적으로도 무척이나 인상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마음 속 진실의 여백을

골똘히 휘저어 놓습니다.



제가 라이브톡으로 미리 보았기 때문에

동진님 해설의 자장안에서 글을 쓸수 밖에 없지만

그 안에서도 제 생각을 칼럼형식으로 써보려합니다.

(그렇다고 제 기준과 생각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니까요)


스포성 글이 있습니다~

피드백이나 지적사항 있으시면

답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


























감춰진 진실의 여백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골똘히 응시하고 질문한다. 그러다 관객들은 하염없이 깊은 생각에 잠길 수 밖에 없다. 마음 속을 휘저어 놓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세 번째 살인'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 혹은 법정 스릴러 영화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임과 동시에 법조계에 대한 날카로운 칼날이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고 구원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모순과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영화이다. 엔딩에서 네갈래로 놓여진 골목에서 정중앙 위치해 있는 시게모리는 어디에도 갈 수 없으니 그저 멍하니 바라 볼 뿐이다.



지난 20여 년간 작품의 질로나 양으로나 일본을 대표하는 감독 한사람만 꼽으라면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일 것이다. 그의 데뷔작 '환상의 빛'을 시작으로 최근작 '태풍이 지나가고'까지 매 영화가 생각하고 질문하는 영화들이었으며, 심지어 장르영화의 아주 귀여운 소품 같았던 '하나'까지 영화의 깊은 곳엔 삶을 바라보는 통찰이나 성장이 줄곧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디스턴스' '공기인형'이후 세 번째 분기점으로 까지 보인다.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은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카메라의 워크 인물의 동선이나 캐릭터까지 전과는 매우 다른 작품들이었다.(물론 전체 작품을 돌이켜 보면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확연한 차이가 있었던 영화는 이 세작품으로 기억된다.)


프롤로그 장면부터 미스미(야쿠쇼 코지)가 어느 남자를 죽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범상치 않을 것을 예고하는 듯 보인다. 사형이 확실시 되며 모든 범행을 자백한 '미스미', 시게모리는 사법연수원 동기 '셋츠'의 부탁으로 이 사건의 변호를 떠맡게 된다. 냉정하고 주도면밀하며 법정에서의 전략과 전술을 어떻게해야 하는지 잘 아는 '시게모리'는 이 사건을 하루 빨리 끝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낮추려고 한다. 그러나, 미스미와 면담을 하면 할 수록 진술이 번복되고 이상함을 눈치채게 된다. 한편, 피해자의 딸인 '사키에'가 이 사건과 큰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재판과 면담을 거듭할수록 시게모리는 알 수 없는 혼란과 진실의 행방을 쫒으려 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성취는 형식적인 부분일 것이다. '하나'의 경우도 물론 장르영화이긴 했지만 말그대로 장르영화의 귀여움이 가득찬 영화였다. 그러나, '세 번째 살인'의 경우는 장르영화의 틀을 빌려 진실과 인물의 내면을 밀착해보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카메라와 연출이 단연 눈에 돋보인다. 모든 장면들이 인상깊긴 했지만 마지막 면회장면에서의 '미스미'와 '시게모리'의 면회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이 장면만 놓고도 할 이야기가 무척이나 많은데 그와 연결지점에서 전의 몇 차례 면회장면이나 마지막 엔딩에서의 장면이 더욱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게 한다.



'세 번째 살인'에서의 중요한 이야기는 '미스미'가 왜 진술을 번복하고 있으며 왜 진실을 말하지 않느냐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게모리'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점점 변화되는 인물인데 이 인물 역시 왜 하던데로 하지 않고 그토록 '미스미'의 진실을 찾으려 하냐는 것이다. '시게모리'와 '미스미'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인물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스미와 시게모리는 딸이 있는데 한쪽은 살인사건 때문에 딸과 부재를 겪고 있고, 한쪽은 이혼문제 때문에 딸과 부재를 겪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하나의 딸이 있다. 피해자의 딸인 '사키에', 사키에는 '미스미'의 의미론적인 딸이다. 중반까지 가게되면 '사키에'는 자신의 친아버지로 부터 근친상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근친상간을 당하기 시작한 나이는 14살이고 '시게모리'의 딸 역시 14살이다. 그러니 등장인물 주인공인 이 세 사람의 연결고리가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거기에 30년전 미스미가 재판을 받은 판사의 아들이 바로 '시게모리'이다.(영화를 보다보면 알게되지만 이 상황은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인다.)



진실의 벽이 높아 보이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을 깊숙이 들어가 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시게모리'는 '미스미'의 내면으로 들어가려는 유일한 사람이다. 태초 '시게모리'는 법조계에서도 유능하며 그 누구보다 시스템을 잘 이해하는 인물인데 가장 곡진한 변화를 느끼는 이유는 변호사라는 직업적인 특성도 일조를 했겠지만 바로 자신과 비슷한 '미스미'를 만났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모두 홋카이도 출신이기도 한데다 성격까지 닮아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고는 한명은 '변호사' 한명은 '범죄자'라는 특수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미스미'는 왜 진술을 번복하고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 걸까. 이는 유사 자녀인 '사키에'의 성폭행이 큰 발화점이 되었지만 마냥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미스미'는 어떻게 보면 '시게모리'보다 더 차갑고 회의론적인 인간일지도 모른다. 시대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는지 아니면 계급적인(가정환경)이유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첫 번째 살인에서 그는 확실한 범죄자 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유사 자녀인 '사키에'의 근친상간의 이야기를 듣게되고 이를 걱정과 분노로 생각했을 '미스미'는 그 아버지를 심판했을 지도 모른다.


그럼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두 번째 살인'이 아닌 '세 번째 살인'일까. 이는 '미스미'에 대한 살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것은 사회가 미스미에게 내리는 살인일 수도 있고, 법조계라는 부조리하고 모순 가득한 시스템이 내리는 살인일수도 있으며,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살인일 수도 있다. 영화의 제목을 마지막으로 읽게 되면 진술을 번복하고 엔딩에서 강하게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목소리 내었던 이유도 설명이 된다.



미스미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딸에 대한 미안함과 그전에 있었던 자신의 범죄에 대한 마음 속 깊은 응어리나 죄의식 같은 것이 깔려 있는것으로 보인다. 시게모리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사건 담당 판사였던 자에게 편지를 보낸 것도 '사키에'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 편지는 사건이 일어나기 5일 전에 보내진 것이니까. 그리고 미스미는 시게모리에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이 있다'는 말을 꺼내며 아무 연관이 없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언급을 넌지시 하게 된다. 그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지면 살인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미스미는 그렇다고 한다.


여기까지 보게되면 '시게모리'는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으며 혼란 스러워 할 필요가 없다. 그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즉, 미스미는 이 부조리한 사회와 법조계를 겨냥하며 나와 당신이나 별반 다를바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은유한다. 누가 누구를 구원하고 심판하느냐에 대한 칼날은 범죄자를 최우선으로 변호해야하는 '시게모리'에게 당혹스러울수 밖에 없다. 그 예로, '미스미'의 범인임을 부인하는 씬 이후 셋츠의 말을 보면 '법조계라는 한 배를 탄 상황이다'라고 언급한다. 누가봐도 사형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진실의 여부와 상관없이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것을 '시게모리'는 목도하게 된다.


진짜 진실은 무엇일까는 이 사람의 내면은 어떠한가와도 연결이 된다. 굳이 따지면 이 사건은 '미스미'가 살인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시게모리'의 상상씬도 있지만 초반 현장답사를 갈때 그 현장에 있었던 자는 다름아닌 '사키에'였다. 정황상 굳이 왔다갔다할 이유가 없었던 '미스미'가 죽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죽일 계획은 확실히 가지고 있었고, 의도치 않은 변수는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택시안에서 가솔린 냄새가 났다는 정황상 공장에는 들렀다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는 '사키에'가 죽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사키에'와 '미스미'가 같이 죽였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세 번째 살인'에서의 세 배우는 모두 인상적이다. 기무라 타쿠야 다음으로 최고의 톱스타인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이런 역할의 적역으로 보인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는 물론 올해 개봉했던 '분노'까지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여러 톱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히로세 스즈 역시 훌륭한 잠재능력을 가진 배우로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인상 깊었던 배우는 '야쿠쇼 코지'일 수 밖에 없다. 지난 20여 년간 일본을 대표한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였다면 배우는 '야쿠쇼 코지'일 것이다. 일본 배우중에서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한사람인데다 얼굴 자체에서 이미 설득력을 심어주고 있다. 여러 일본의 거장들과도 협업을 했던 '야쿠쇼 코지'는 장르영화 예술영화 막론하고 일본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이다. 대사에서도 나오는 '텅 빈 그릇 같다'는 말이 야쿠쇼 코지가 열연한 '미스미'를 보고있으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된다.


이 영화의 중요한 형식적인 성취 중 하나인 마지막 면회 장면은 가히 압권이라 앞에서도 언급을 하였다. 면회 장면이 나올때 마다 앞을 가로막는 유리 벽은 진실을 막는 유리벽일수도 인물의 내면을 은밀히 막는 벽일 수도 있다. 그러한 공간적 장소가 마지막엔 미스미와 시게모리가 오묘하게 서로 겹쳐지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정면에 보이는 미스미는 바로 앞에 있지만 벽에 막혀 있고 그 유리벽의 잔영으로 비치는 시게모리는 미스미의 얼굴과 겹쳐진다. 허나, 중요한 것은 이 두사람이 벽에서 조차도 완벽히 겹쳐지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잔영에 비친 시게모리가 점점 겹쳐지려 할때 미스미는 앞으로 옮겨 완벽히 겹쳐지는 것을 거부한다. 진실과 내면으로 들어갔던 '시게모리'는 결국 완벽하게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시게모리는 자기가 생각했던 미스미의 계획을 말하는 순간 미스미는 '좋은 이야기이네요'라고 말한다. 이 대사 하나로 그간의 의문과 진실이 풀리는 것은 아니지만 '시게모리'에게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지며 골똘한 응시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거리를 나와 중앙에 서있는 시게모리를 카메라가 부감 롱숏으로 찍게 되는데 이는 한 인간의 허망함과 탄식 그리고 혼란과 당혹감이 그대로 녹여져 있는 뛰어난 연출 장면이다.



이런 형식적인 성취 외에도 콘스라스트와 조명을 이용한 진실과 내면의 시각화를 뛰어나게 소화하고 있다. 어찌보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을 보는 것 같기도 하는데 '세 번째 살인'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것도 장르영화를 통해서 얼만큼 더 멀리가고 또 깊이 들어갈수 있는지 보여주는 뛰어난 연출 방식이다. 마지막 면회 장면에서도 미스미를 향한 햇빛이 유독 밝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과연, 진실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사회는 무엇이고 이 법조계는 어떻게 돌아가며 인간의 내면(진실)이 어떠한지도 모르는데 법이라는 체계로 인간을 심판하고 구원할 자격이 인간에게 있는 것인가(어떻게 보면 부분적으로 키에슬로프스키의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이 떠오르기도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은 전부 생각하고 묻는 것이었다. 어떤 영화가 좋으냐는 질문 중 하나의 답변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끊임없이 질문하며 생각하고 계속 곱씹어보고 여러사람들과 소통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이 바로 그런 영화들이다. 자신은 그간 성장해 왔는지 모르겠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정작 일본 영화계가 본받으며 성장해야할 본보기가 바로 이 감독에게 있다.




★★★★☆




정보 : 네이버 영화, 이동진의 라이브톡

사진 : 네이버 영화

매거진의 이전글 삼인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