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영 Feb 26. 2018

플로리다 프로젝트

환상과 현실의 무대 사이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본다.

(스포성 글이 있습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순간들은 일상들로 넘쳐난다. 전작 '탠저린'처럼 단순히 해프닝 코미디로 진행하는 것 같은 이 영화는 끝끝내 다 보고 나면 마법(혹은 마법의 성)으로 안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018년 올해 아마도 가장 사랑스러운 작품이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렇다고 모든 면이 사랑스럽다고 할 순 없다. 이 이야기에는 환상의 무대 말고도 현실의 무대도 있으니 말이다. 줄곧 '무디'를 포함한 어린아이들의 시선과 '핼리'와 '바비'같은 어른들의 시선이 교차하는 것 같은 촬영과 연출은 이윽고 영화가 꿈만 있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럼에도 사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아이들을 포함한 션 베이커의 연출이 큰 신뢰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영화 - '플로리다 프로젝트' 中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원래 디즈니에서 테마파크를 짓기 위해 만든 프로젝트의 가칭이다. 이 공간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디즈니 월드'라는 꿈과 환상의 나라가 있는 반면, 바로 건너편엔 '매직 캐슬'이라는 모텔이 있다. 매직 캐슬이라는 것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마법의 성'이라는 뜻인데 영화를 보다 보면 이는 이중적 표현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환상과 현실의 무대 사이 션 베이커 감독은 균형 잡힌 시선으로 조율을 해낸다.


균형 잡힌 시선과 조율이라는 것은 전작 '탠저린'처럼 이들에게 얕은 시선으로 동정과 연민을 불어넣지 않는다. '매직 캐슬'은 모텔이긴 하지만 저소득층이나 제대로 된 집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지내는 중장기 숙박업체와도 같은 곳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핼리'는 방값 38달러를 내기 위해 어린 딸과 같이 향수를 팔고 친구 '애슐리'에게 음식을 공짜로 제공받으며 말미에는 돈을 구하지 못해 성매매까지 하게 된다. 다른 영화들 같으면 이를 사회적인 모순이나 시스템으로 화살을 돌리거나 주인공(혹은 악역 캐릭터)에게 질타를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션 베이커'는 두 가지 모두 택하지 않는다. 설사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영화에서는 일절 판단을 투영시키지 않는다.


영화 - '플로리다 프로젝트' 中


어떻게 보면 '핼리'는 무책임하고 철없는 엄마라고 할 수도 있다. 모텔 근처에는 예전 마약이나 파티, 성매매를 하던 비어 있는 집이 있는가 하면 악어가 있을지도 모를 곳도 있고, 심지어는 '무디'를 욕조에서 목욕하게 놔두고 성매매를 하고 있었던 엄마이다. 분명, 교육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안전상으로나 아이들에게 위험한 요소가 가득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 '핼리'나 주위 사람들을 질타하지 않는다.


덧붙여 '매직 캐슬'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바비' 역시 의미심장하게 볼 필요가 있다. 모텔을 관리하고 수리하고 투숙하는 투숙객들 일일이 신경을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삶까지 흔들어 버릴 정도로 깊게 관여하진 않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까지 사람들을 도와주거나 윽박지르는 인물이다. 이는 아이들의 시선까지 들여다보면 또다시 다르게 보인다.


영화 - '플로리다 프로젝트' 中


형식적으로도 흥미로운 점은 스케치하는 정도의 일상을 여러 씬들로 보여주는데 얼핏 보면, '보이후드'의 형식적인 시도와도 비슷해 보인다. 의도 자체는 완전히 다르지만 이들의 시간이 어떻게 표현 되는지를 훌륭하게 잡아냄과 동시에 영화 전체를 다 보고 나면 나와 다른(혹은 같을지도 모를)이들의 삶을 상기시켜준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바로 이웃집 사람의 생활처럼 관찰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점은 클로즈 업과 롱 숏을 정반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사건을 겪은 '핼리'는 후에 '괜찮을거야'라며 위로를 받게 되는데, 다른 영화였으면 주인공 '핼리'를 감정적으로 울리거나 부담스러울 정도로 클로즈업을 한 뒤 한껏 강조하며 울어라고 했을지 모른다. 자신의 친구 '애슐리'를 한껏 패고 난 뒤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하는 장면에서도 클로즈 업을 사용하지 않는다. 거기에, 문으로 가려진 '핼리'가 울려고 하면 바로 끊어 다음 장면으로 넘겨버린다. 이번은 반대로 말미에 '무디'를 놓친 경찰관들과 기관 관계자들에게 '전부 나가!!'라고 할 때 얼굴을 클로즈 업 하는게 아니라 입을 커다랗게 클로즈 업을 하게 된다. 어디에서 맺고 끊어야 하는지 어떻게 인물을 표현해야 하는지를 션 베이커 감독은 신뢰감 있게 연출하고 있다.


영화 - '플로리다 프로젝트' 中


아이들을 표현하는 연출또한 상당히 뛰어난데 아이 특유의 재기발랄함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장난기, 환희, 활동 같은 것을 대단히 잘 담아내었다. 이 부분에서도 클로즈 업을 이상한 곳에 배치한다. 식당 혹은 고급 뷔페에서 음식 먹을 때 클로즈 업으로 잡아 아이들의 생기발랄함을 카메라로 포착해낸다. 반대로 롱 숏으로 처리해 생기발랄함을 잡는 경우도 있다. 션 베이커가 영화 촬영과 연출을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일 것이다 (한편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아이들을 표현한 연출 방식이 떠올려지기도 한다).


그 점에서 '브루클린 프린스'의 연기는 가히 대단한데, 시종 활동적이면서도 통통 튀는 이 어린숙녀는 향후 어떻게 변모할지 모르겠지만, 2013년 당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최연소 노미네이트 되었던 '쿠벤자네 왈리스'보다 더 압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적어도, 올해 최연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혹은 여우조연상)에 최소한 노미네이트는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노미네이트 되었다면 이 꼬마숙녀가 최연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어도 필자는 불만이 없다. 그 정도로 이 영화에서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이 나이대에 비견될만한 아역 배우는 '식스센스'나 'A.I'에서 보여줬던 '할리 조엘 오스먼트'와 '룸'에서 연기한 '제이콥 트렘블레이'정도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탠저린'때와 마찬가지로 조명을 거의 쓰지 않는 촬영 방식 또한 무척이나 흥미로운 선택이다. 한 예로, '바비'가 모든 일과를 끝내고 어두컴컴한 저녁이 되었을 때 한 모금 피는 담배가 그 자체로 고된 하루를 오늘도 잘 넘긴 바비의 모든 근심과 애환이 날아갈 것만 같은 인상을 심어준다.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2~3번 정도 나오는데 한 번은 '매직 캐슬'이 그를 위해 환하게 비춰 그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한 번은 잠깐의 빛을 뿜는 빨간 담뱃불이 그렇게 다가오기도 한다 (수영장에서 실랑이했던 투숙객에게 담배를 빌리는 장면 또한 연결해서 생각하면 흥미롭게 다가온다).


영화 - '플로리다 프로젝트' 中


형식적으로나 이야기로나 서로 밀접하게 맞닿아서 그들을 바라보았던 션 베이커 감독은 엔딩에서도 흥미로운 선택을 하게 된다. 극의 진행에서 장난과 생기발랄함으로 일관했던 '무디'는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친구 '젠시'에게 달려가 (어른들이 언제 우는지는 알지만) 펑펑 울며 이 상황을 고한다. 잠시 생각하던 '젠시'는 친구의 손을 잡고 냅다 뛰기 시작하는데 이윽고 도착한 곳은 디즈니 월드의 '마법의 성'에 도착하게 된다. 진짜 '마법의 성'에 도달한 두 친구를 보여주며 션 베이커는 박차게 엔딩을 고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디즈니 월드에 있는 '마법의 성' 역시 진짜가 아니다. 어린 두 친구가 달려간 곳은 꿈과 환상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들른 가짜 성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순수한 꼬마숙녀는 그런 것을 다 제쳐두고 가장 친한 친구를 위해 지금 당장 바로 건너편에 있는 디즈니 월드로 향했다. '디즈니 월드'에 갔다온 아이들은 후에 이별을 하게 되었을까, 아니면 '매직 캐슬'에 다시 살 수 있게 되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 모든 게 잠깐의 꿈이었을까.


중요한 것은 션 베이커 감독이 이들에게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얕게 연민을 넣지 않는 이 감독은 무관심하지도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는 위로를 건넨 뒤 관객들에게 곱씹으며 생각하게 만든다. 제목의 원제에 정관사 'The'를 떠올리면 마냥 '핼리'와 '무디'만의 일상 영화는 아닐 것이다. 그 안에는 '바비' '애슐리' '스쿠티' '젠시' 그리고 이사를 간 '딕키'까지 '매직 캐슬'에 머물고 있는 여러 사람들을 생각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션 베이커의 태도와 시선은 다음 영화에도 신뢰감을 주게 할 것이고 결국 이 영화를 사랑스럽게 볼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

매거진의 이전글 코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