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영 May 05. 2018

클레어의 카메라

우연의 변주. 카메라의 작동. 홍상수의 자문자답.

영화 - 클레어의 카메라 中

(스포성 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김민희, 이자벨 위페르, 장미희, 정진영 님이 출연하고

홍상수 감독이 연출한 '클레어의 카메라'를 보고 왔습니다.


이 작품 저에겐 정말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 입니다.

첫째는, 이전에 전혀 본 적 없었던 홍상수의
새로운 형식적인 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굉장히 튀는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보아왔던 이들이라면
위험해 보일 수도 있는 장면 입니다.

두번째는, 다시 공간의 변주로 돌아 왔다는 것입니다.
개봉은 '클레어의 카메라'가 뒤에 나왔지만,
'클레어의 카메라' 촬영이 끝나고 '그 후'를 촬영했다는 점에서
이는 다음 작품 '풀잎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올지 사뭇 궁금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세번째는, 이건 제 개인적인 견해이기도 한데
홍상수 감독의 분열적인 경향도 조금 보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이 영화는 홍상수가 질문하고
홍상수가 직접 답을 합니다.
(그 메세지는 영화 보신 분들이라면 알 것입니다.)

허나, 마지막 엔딩을 보게 되면
기이한 줌인과 클로즈업으로 엔딩을 선사하게 되는데,
이건 저에게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물론 '클레어의 카메라'가 홍상수의 실제 삶과 뗄레야 뗄수가 없지요.
이 작품은 스캔들 터지기 불과 얼마 전에 만들어 졌다는 것과,
홍상수 작품치고도 굉장히 짧고 빨리 만들었다는 점에서,
예술가로서 일종의 돌파구 처럼도 보입니다.

이 작품 이후 '풀잎들'에서도 변화가 일어날지,
아니면 단순한 변화일지 사뭇 궁금하게 합니다.



'클레어의 카메라'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와
공통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에 대한 쓸쓸함 감정이 짙게 담겨있고,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공간과 상황적인 변주를 사용하지요.

홍상수 작품이 늘 그렇지만 상징 끼워맞추기나
해석이 올곧게 되는 작품이 거의 없습니다.

처음과 끝을 제외한 그 중간이 사실상
이자벨 위페르가 작동시키는 카메라에 담긴
인물과 상황의 변화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이 상황들은 시간 별로 되어 있지 않고,
앞뒤가 맞지 않는 문맥에서 어긋나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순차적으로 배열하지 않는 홍상수의 화법은
그(녀)의 말대로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천천히 다시 쳐다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천천히 들여다봄으로써 홍상수는
자기 스스로 좀 더 깊숙이 들여다 보는 듯 느껴집니다.

또한, '클레어'는 사진을 찍은 후의 사람은
그 이전과는 변해 있을 것이라는 말도 하게 됩니다.

제게 이 영화에서 클레어는 '카메라' 그 자체로도 보이고,
상황의 조건처럼도 보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형식적인 변화라는 것은
이전까지도 본 적이 없었던 '플래시백 보이스오버'를 입힙니다.
이 변화는 홍상수 영화를 많이 본 분들이라면,
생뚱맞고 자칫 위험해 보일 수도 있는 시도 입니다.

홍상수 영화에선 시간이 중요하게 다뤄졌지만,
그것을 반복 변주하는데 이용을 했지
인물이 과거를 회상하거나 과거를 설명하는 장면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만약 그의 영화에 플래시백을 사용 한다면
내용과 형식에서 자신의 의도와는 많이 틀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장면이 완전히 전환된다기 보다는,
보이스오버만 입혀 만희가 그 소리에 답을 하는 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은 홍상수의 실제 삶과도 오버랩 됩니다.
완전히 분리 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깝지요.

어쩌면 변명일 수도 솔직할 수도 혹은 순수할 수도 있는
홍상수의 자문자답은 그 자체로 형식과 내용으로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것은 엔딩에서입니다.
일종의 수미상관처럼 배열되어 만희가 일하는 모습으로
끝맺게 됨으로써 기이하게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홍상수는 자문자답을 했고
천천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고 했는데

첫 장면에서 일하는 만희의 모습과
마지막 장면에서 일하는 만희의 모습은
사실상 같은지 달라졌는지에 대해 모호하게 표현합니다.

물론, 후자쪽이 조금 더 크게 다가오지만
마냥 달라졌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엔딩에서의 장면 역시 홍상수 영화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었던 카메라이기 때문이지요.

전보다도 조금 더 극단적으로 천천히
줌인 클로즈업하는 카메라는
이윽고 그 질문을 관객들에게도 되묻습니다.
(이점에서 제가 분열적인 면이
보인다고 한 이유입니다.)



촬영시기로 본다면 '클레어의 카메라' 후에
나온 작품이 '그 후' 입니다.

'그 후'는 반대로 시간이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었지요.

이 작품에서 보여준 홍상수 감독의 변화가
단순한 변화인지는 '풀잎들'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기상 '밤의 해변에서 혼자'와 '클레어의 카메라'가
쌍을 이룬거라면, '풀잎들'은 '그 후'와 더불어
시간을 다룰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만약 '풀잎들'에서 '클레어의 카메라'처럼 형식적으로도
내용으로도 변화가 생긴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무척이나 궁금해지네요.
(무척 좋거나 아니면 홍상수 영화를 보고
실망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부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