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덴 형제의 책임있는 유의미한 변화.
(스포성 글이 많습니다)
아델 에델이 출연하고
다르덴 형제가 연출한 '언노운 걸'을 보고 왔습니다.
벨기에 거장인 다르덴 형제는
지난 20여 년간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 중 하나일 것입니다.
'프로메제'에서 '언노운 걸'까지
유럽 사회 속에 힘들게 놓인 인간들을
연민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눈여겨보았던
그들의 영화가 늘 신뢰감과 깊은 인상을 심어 줬었지요.
장르의 외피로 '스릴러'적인 부분이 있다곤 하지만
(뭐, 그렇다고 전혀 없다고도 할 순 없습니다.)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으로 인한 불안함과 초조함에서
발생하는 작은 부분들이 영화에서 긴장감 같은 것을 주고 있긴 합니다.
(한 예로, 다르덴 형제의 작품 중 폭력적인 장면이
직접적으로 표현된 영화는 이 작품이 처음입니다.)
그러나, 다르덴 형제는 장르의 특수성은 별 관심이 없어 보이고,
오히려 한 인물의 행동과 의식을 더욱 또렷하게 보여주는 식으로
영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다르덴 형제에게는 작품에서 변곡점이 될만한
변화가 분명 있었습니다.
언제나 연민과 동정 어린 시선이 있었지만
직접적인 책임의식을 가지고 희망을 보여줬던 작품은
'자전거 탄 소년' 이후부터였습니다.
말하자면, 응원과 동시에 책임을 가지고
그 동력으로 격려와 희망까지 내비 쳤었다고 할까요.
대중적으로 보았을 때 이번 '언노운 걸'은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지만 분명 또 다른 변화는
장르에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물은 조금 더 적극적이고 귀 기울이며
행동으로 바로 옮겨 책임을 다해 일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죄책감으로 인해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제니'라는 인물은 원래 책임의식이 강한 여자입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임무 안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
환자를 위해 진료를 하고,
(직업의식을 제외해도 '제니'는 사적인 연정이
분명 드러나 있는 인물로 보입니다.)
인턴으로 있던 '줄리안'이
의사를 그만두려 하자 고향까지 찾아가 설득을 하며,
심지어는 하지 않아도 될 다른 사람의
잔 심부름까지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해주는 인물입니다.
즉, 누군가가 손을 뻗었을 때
이 인물은 바로 잡아주는 인물입니다.
물론 이것은 '소녀'의 죽음 이후에
행동이 바뀐 것 일수도 있습니다.
그때 자신이 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도
자존심 때문에 열어주지 않았다고 했지만
제니는 '환자들에게 휘둘리면 안 된다.'
'감정에 치우치면 안 된다.'라고 말한 인물입니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한 소녀 때문에
더 좋은 직장을 갈 수 있었음에도 외지에 남았고,
소녀를 위해 끝까지 행동하는 모습을 통해
한 사람의 의식과 행동으로 여러 사람의
의식과 행동이 변화될 수 있다는 점까지
다르덴 형제는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목의 '언노운 걸'이 의미하는 것은
'제니'와 '소녀' 그리고 스크린 바깥에 있는
여러 사람을 뜻하는 것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의사'라는 설정 또한
이 영화의 내용을 볼 때 아주 중요한 설정으로 보입니다.
의사의 행동과 선택으로 환자의 운명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다른 직업도 그렇겠지만
의사라는 직업은 그 직업윤리가
무척이나 중요한 직업 중 하나입니다.)
저에게 있어 다르덴 형제가 남긴
'언노운 걸'의 명확한 변화는 흥미와 의문
두 가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의문은 전달력이 강해지고 영화의 의미가
강해진 현재 다르덴 형제의 변화가 단지 의미만 남고
형체가 희미해 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이 있고,
흥미는 이러한 직접적이고 강한 변화 다음에
나올 차기작이 어떠할지 저는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타락천사'가 나왔을 때
사람들 반응이 전부 '중경삼림'의 반복이니
왕가위는 홍콩 누아르를 왜 이렇게 만들었냐느니
불만 아닌 불만이 많았었지만
그 이후에 나온 작품이 '해피 투게더'와 '화양연화' 였다는 점을
떠올렸을 때 그전 '타락천사'가 있었기에
두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왕가위 작품 중 호불호가 많이 갈리긴 하지만
저는 '타락천사'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가 다르덴 형제의 작품을 보며
내린 결론은 흥미 쪽이 더 강합니다.
(이것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간 만들어온
다르덴 형제의 영화적 태도와 예의를 저는 지켜보았기 때문에
아마 제가 가진 의문은 그냥 스쳐 지나갈 의문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언노운 걸'은 이러한 점에서
저에게 흥미롭게 다가오는군요.
다르덴 형제가 영화로 보여주는 것은
사회적 약자인 부류들이 기꺼이 손을 잡아 달라고 했을 때
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하고,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부터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다르덴 형제에게는 이 작품이
아마 처음으로 두 손 꼭 잡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식이 가장 강하게 비친 작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영화에서는 깊게 깔려 있진 않았지만
흑인 소녀를 통해 난민 문제까지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을 생각하면 앞서 말한 것이
더더욱 강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왕가위 감독의 '타락천사'가 그러했듯
다르덴 형제의 '언노운 걸' 역시
좋은 의미에서 유의미한 변화였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