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워라밸이 있었을까?

관리들의 일과 삶

by 모두의국사쌤

“조선에도 워라밸이 있었을까?”


이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워라밸'이라는 단어는 너무도 현대적인 개념이라, 관청의 아침 조회 풍경이나 사극 속 궁궐의 암투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료를 하나하나 들춰보니, 고요한 글 속에서 되레 더 균형 잡힌 삶의 향기가 풍겼다.


오전, 나라의 일. 오후, 나의 일.

조선의 관리는 흔히 ‘벼슬아치’로 불렸다.

하지만 그들의 하루는 단순한 정치 업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체로 조정의 회의와 결재는 오전 중에 집중되었고, 정오 이후부터는 각자의 독서, 시 짓기, 집필, 후학 양성 등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가능했다.


서울 근교에서 벼슬을 하던 관리들은 점심 이후엔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산책하거나, 기와 마루 아래 책상에 앉아 고요히 글을 읽었다. 나랏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모호했지만, 일정한 '리듬'이 분명 존재했다.


글을 쓰고, 자연을 벗삼고

정약용의 하루는 어땠을까?

유배지 강진에서 그는 새벽엔 경전을 필사했고, 오전엔 농사일을 도우며 마을 사람들과 어울렸다. 해가 중천에 오르면 대나무 그늘 아래에서 『목민심서』를 집필했다.


이처럼 조선의 선비와 관료들은 생산성과 여유, 자기계발과 쉼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안고 살았다.


과거 시험에 합격한 수재들도 막상 관직에 오르면 매일 회의에 쫓기기보다는, 지방 행정이나 학문 연구에 집중했다. 특히 지방 수령들은 고을의 수장으로서 백성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동시에 시문회를 열거나 지역 유생들과 토론을 즐기기도 했다.


주말은 없지만, 명절은 길었다

조선에는 '주말' 개념은 없었지만, 대신 명절과 제사, 국왕의 특별 휴일(휴가령)이 존재했다.


추석과 설날엔 3일 이상 공무가 중단되었고, 국왕이 특별히 내린 휴가령에는 온 나라의 관청이 문을 닫았다.

또한 장마철이나 큰 눈이 오는 시기엔 관아의 업무가 자연스럽게 줄었고, 이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마음의 여백을 지킨

물론 조선도 완벽한 이상향은 아니었다.

붕당 싸움으로 목숨을 잃은 이도 있었고, 억울한 유배를 떠난 이도 많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많은 이들은 자연을 벗삼고, 책을 벗삼고, 사람을 벗삼아 자신만의 삶의 무게를 조율해 나갔다.


워라밸이란, 결국 일과 삶의 경계를 어떻게 ‘선택적으로’ 조절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조선의 관리들은 어쩌면 지금보다 더 내면의 리듬과 관계의 균형을 중시했던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우리는 어디쯤 서 있을까.

기계처럼 돌아가는 시스템 안에서 '쉬는 법'을 잊어버린 우리는,

오히려 조선 선비들의 일상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다시 배워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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