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아플 땐 어떻게 치료했을까?

조선의 의료제도와 어의의 역할

by 모두의국사쌤

우리는 ‘조선의 왕’ 하면 권위 있고 당당한 모습을 떠올리지만, 그들도 결국은 사람입니다.

아프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병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기도 했지요.

하지만 왕이 아프다는 건 단순한 건강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한 나라의 중심이 흔들린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조선은, 오직 왕을 위한 아주 특별한 의료 시스템을 운영했습니다.

그 중심에 있던 기관이 바로 ‘내의원(內醫院)’이었습니다.


왕실 전담 병원, ‘내의원’

내의원은 궁궐 안에 설치된 왕실 전용 의료 기관이었습니다.

왕과 왕비, 세자와 후궁까지, 오직 왕실 구성원만을 위한 공간이었죠.

내의원에는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친 최고의 의원들이 배치되었고,

그중 가장 핵심적인 존재가 바로 ‘어의(御醫)’였습니다.

어의는 왕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사람으로, 실력은 물론 정치적 감각까지 필요했습니다.

왕의 병세를 잘못 보고하면 나라 전체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그들의 처방 하나는 곧 ‘국가적 결정’이었습니다.


진료도 ‘의식’처럼

왕에게 약을 올리는 과정도 아주 정교했습니다.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각에 맞춰 약을 달이고, 은쟁반에 담아 올렸습니다.

심지어 약재는 사전에 독이 없는지 철저하게 검사되었고,

시음용으로 미리 먹어보는 내관도 따로 정해져 있었죠.

궁중의 약재는 대부분 지방에서 조달되었고,

고려인삼, 녹용, 쌍화탕에 쓰이는 황기 등은 특별 관리 대상이었습니다.


세종대왕도 늘 아팠다

조선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히는 세종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눈병과 통풍으로 오랜 기간 고생했고,

이 때문에 온천 치료를 가기도 하고, 약재 연구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세종대왕은 병이 들었을 때 내의원의 어의에게만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경험 있는 의원들의 의견을 폭넓게 듣고, 백성들을 위한 의학서 편찬도 진행했죠.

대표적인 것이 바로 『향약집성방』입니다.

조선 각지의 약초 사용법을 정리한 이 책은 오늘날에도 전통의학 연구에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어의는 왕의 건강만 돌보지 않았다

어의는 왕의 주치의이자, 때로는 정치적 조언자이기도 했습니다.

왕이 병에 걸리면 대신들과 신하들까지 움직여야 했고,

중요한 국정이 멈추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었기에,

어의의 한 마디는 국정 운영과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의는 실력뿐 아니라 신중함, 언행의 절제, 정치 감각까지 갖춰야 했습니다.

단순한 의사 이상의 존재였던 것이죠.


지금과 다른, 그러나 같은

조선시대와 지금은 분명히 다르지만, 한 가지는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플 때,

그를 치료하고 보살피는 일은 곧, 공동체 전체를 돌보는 일이 된다는 점입니다.

궁중 한복을 입은 어의가 조심스레 약을 올리던 그 모습.

그 속에는, 조선을 지켜내려는 조용한 책임감이 담겨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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