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산성, 백제의 해상력, 신라의 외교술
삼국시대는 단순히 세 나라가 대립한 시기가 아니라, 각기 다른 환경과 문화 속에서 독특한 군사 전략이 발전한 시기였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는 모두 생존을 위해 강력한 방어와 공세 전략을 마련했지만, 접근 방식은 매우 달랐습니다. 이를 살펴보면 각 나라가 처한 지정학적 조건과 외교 노선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고구려는 험준한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산성(山城) 전략이 핵심이었습니다. 수도 국내성을 비롯해 압록강 유역과 만주 일대에 촘촘히 구축한 산성은 적의 기습을 방어하고, 장기전에 유리한 요새 역할을 했습니다. 장수왕과 광개토대왕 시기에 이런 산성망은 북쪽의 거란·말갈 세력, 남쪽의 백제와 신라의 위협을 모두 견제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죠.
백제는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해상력이 강점이었습니다.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수로와 선박 기술을 활용해 중국 남조와 활발히 교류했고, 일본 열도로 진출하여 정치·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특히 군사 원정이나 지원군 파견에 있어 해상 이동 능력은 백제가 단기간에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만든 핵심 무기였습니다.
신라는 상대적으로 내륙에 위치해 해상 접근성이 낮았기 때문에 외교술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초기에는 고구려와 동맹해 백제를 견제했고, 후기로 가면 당나라와 손잡아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외교 전략은 단순한 동맹 관계를 넘어, 국제 정세 속에서 유리한 쪽으로 세력을 재편하는 유연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고구려의 산성은 철통 방어를, 백제의 해상력은 기동성을, 신라의 외교술은 생존과 확장의 기회를 보장했습니다. 세 나라의 전략 차이는 오늘날로 치면 ‘육군 중심의 요새 전술’, ‘해군 중심의 원정 작전’, ‘외교 중심의 연합 전략’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각국이 선택한 길은 달랐지만, 모두 그 시대를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선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