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승리와 새로운 한반도 질서
7세기 중반, 한반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는 각자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전쟁을 거듭했고, 국경마다 성채가 솟아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치열한 경쟁은 결국 하나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삼국통일이라는 거대한 전환점 말입니다.
신라가 승리의 주인공이 된 배경에는 단순한 군사력 이상의 전략이 숨어 있었습니다. 진흥왕 이후 신라는 외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특히 7세기 들어 당나라와의 동맹은 승부를 가른 결정적 한 수였습니다. 백제와 고구려가 동맹을 맺고 신라를 압박하자, 신라는 당과 손을 잡아 양면전선을 타개했습니다.
660년, 백제 멸망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나당연합군은 황산벌에서 계백 장군의 결사대를 격파하고, 사비성으로 진격했습니다. 백제 의자왕은 결국 항복했고, 찬란했던 백제 문화는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고구려는 여전히 북방에서 강성했고, 연개소문의 철권 통치는 나당연합의 진군을 막아섰습니다.
668년, 연개소문의 사망과 내부 분열은 고구려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나당연합군은 압록강을 건너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포위했고, 보장왕은 결국 항복했습니다. 천년 강국 고구려의 깃발이 내려간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승리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당나라는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드러냈고, 신라는 당과의 나·당 전쟁에 돌입합니다.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해전에서 신라는 연이어 승리를 거두며 676년, 마침내 당군을 몰아냈습니다. 이로써 신라는 한강 이남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며 사실상의 삼국통일을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이 통일은 완전무결하지 않았습니다. 옛 고구려 땅 북쪽과 발해가 차지한 만주는 신라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그래서 이를 ‘남북국 시대’의 시작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삼국통일은 한반도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였습니다. 수백 년간 이어진 전쟁을 끝내고, 문화와 경제가 융합되는 토대를 마련했으며, 한민족의 역사 속에 ‘하나의 나라’라는 이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