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이름보다, 백성을 먼저 떠올렸던 사람
조선은 500년 넘게 이어진 긴 왕조다.
27명의 왕이 각각의 시대를 지나며 나라를 이끌었다.
그 중에서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왕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는 세종을 떠올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태종이나 정조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진짜 훌륭한 왕은 '왕의 이름'보다 ‘백성의 삶’을 얼마나 바꾸었는가로 평가된다는 점이다.
오늘은 그 기준에 따라,
조선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받는 왕—
바로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보려 한다.
가장 잘 알려진 업적은 단연 훈민정음의 창제다.
하지만 이것이 단지 ‘문자를 만든 일’이라고 생각하면, 반만 아는 것이다.
당시 조선은 한자를 써야만 글을 남길 수 있었다.
한자는 외래 문자였고, 매우 어렵고 복잡했다.
대다수의 백성은 문자를 알지 못했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거나, 법을 이해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다.
세종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백성이 말을 하는데도 글로 남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왕의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세종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던 결단을 내린다.
말의 소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소리를 담아낼 글자를 직접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훈민정음은 단지 '새로운 문자'가 아니었다.
그건 백성에게 목소리를 되찾아준 도구였다.
말하자면, 세종은 역사상 가장 조용한 ‘혁명’을 성공시킨 왕이었다.
세종이 위대한 이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철저히 백성을 중심에 둔 정치를 실천했다.
기후에 따른 농사 피해를 줄이기 위해 측우기를 만들었고,
농민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농법서인 농사직설을 편찬하게 했다.
전국의 농민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해,
‘현장의 언어’를 ‘나라의 정책’으로 바꾸는 시대를 열었다.
또한 세종은 의료 체계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의 의학서를 집대성해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고,
한방 치료법과 민간요법을 정리해 지방 백성들도 쉽게 건강을 돌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늘 물었다.
“어떻게 해야 백성이 덜 아플까,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정치는 법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신념이 그의 중심에 있었다.
전쟁이 아닌, 대화와 신뢰로 외교를 풀다
세종은 무력보다 언어와 외교를 통해 나라를 지키려 했다.
대표적인 예가 여진족과의 관계 개선이다.
세종은 단순히 성을 쌓고 군사를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과 신뢰를 쌓고 조선의 제도를 이해시켜 안정적인 국경선을 구축했다.
또한 일본과의 교섭에서도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실리 외교와 문화 교류를 통해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려 했다.
그는 평화를 전략으로 삼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군주였다.
세종은 흔히 ‘조선이 꿈꾸던 이상적인 왕’이라고 평가받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다스린 시대에는 단지 ‘나라가 발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조금 더 나아지고, 조금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자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기후를 예측해 농사를 지을 수 있었으며,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중심에는 '세종'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는 힘으로 지배하지 않았다.
그는 신뢰와 실력으로 백성 곁에 섰고,
백성은 그를 ‘성군’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에서 가장 훌륭한 왕, 가장 위대한 업적.
그 기준은 화려한 전쟁의 승리도, 거대한 건축물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정책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와 실천이었다.
세종은 그걸 해낸 사람이다.
말을 듣고, 묻고, 연구하고, 결국 길을 만들어낸 왕.
그의 업적이 오래도록 빛나는 이유는,
그 안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세종의 통치를 함께 만들어간 인물들,
집현전 학자들과의 협업이 조선에 남긴 유산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한 명의 위대한 왕 뒤에는, 더 많은 지혜가 모여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