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춘(回春)

백경 초단편집

by 백경

남규는 번화가 벤치에 앉아 물끄러미 상황을 지켜본다.

유난히 더운 그날 늦은 오후, 그곳엔 자신의 또래가 태반이었다.


딱히 갈 곳은 없지만 집에 있긴 싫은 이들이 지하철을 타고 나와 약속이라도 한 듯 모인다.

손에 부채를 하나씩 쥐어 흔들며 멍하니 앉아있다.

남규도 어제까진 그랬다.

오늘 그는 그들과 거리를 둔 채, 지켜볼 뿐이다.


어린아이들이 무리 지어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

아이들은 모여있었지만, 각자 폰을 보며 제각기 앉아 있었다.

남규는 그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왜 같이 있는데 따로 노는 거지?’


어린 시절 남규는 동네를 뛰놀았다.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잡기 등.

모이면 놀았고 엄마가 찾을 때가 돼서야 헤어졌다.


어린아이들이 떠나가고 교복을 입은 소년과 소년이 왔다.

소년과 소녀는 웃었고 떠들었다.

부끄러운지 슬며시 서로의 눈을 스쳐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풋풋함을 바라만 보아도 좋았다.


남규는 그 모습을 보고 아주 오래전 잊고 있던 보물상자를 연 것만 같았다.

첫사랑과 손을 잡고 걷던 골목,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었을 때 떨림.

그 시절, 그때 그 장소.


저녁이 되자 거리의 공기가 바뀌었다.

바람이 선선하게 살랑였고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남규 주변에 있던 또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남규도 평소처럼 몸을 일으키려다 말았다.


‘오늘은 조금만 더 있어볼까?’


오늘은 왠지 무언가가 그를 붙잡았다.

또래는 사라지고 나이 든 사람은 남규뿐이었다.

남규 주위로 젊은 이들이 모여들었고 남규도 그들과 똑같단 느낌을 받았다.


젊은 이들은 무리가 모이자 제 갈길을 갔다.

보아하니 술 한잔 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남규는 대학생시절 친구들과 없는 돈을 모아 짬뽕 국물에 소주 한잔 기울이던 그때를 떠올렸다.


‘비록 돈은 없었지만 푸르렀구나….’


시간이 더 흘렀고,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거리에 모였다.

각자의 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하는 그들.

누군가는 퇴근길을, 누군가는 회식을, 또 누군가는 그날의 노고를 씻어낼 혼술을 향한 걸음이겠지.


남규는 지난날을 떠올렸다.

과장으로 진급한 날, 아이에게 자전거를 사주고 뒤에서 잡아주던 날, 아내가 만든 김치찌개가 너무 짜서 밥만 몇 공기 들이켠 날.


‘그래, 그땐 가족 덕분에 살았지….’


모든 날이 쉽진 않았지만, 그땐 그때만의 낭만이 있었다.

어느덧 광장은 조용해졌다.

가로등 불빛이 길게 드리워졌고, 벤치 옆 자판기 불빛만 희미하게 흘렀다.

남규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오래 앉아있었던 탓일까, 무릎이 시큰했지만 마음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그는 서서 몸을 펴며 오늘 하루를 떠올렸다.


10대 때는 유년기의 자유로움을 그리워하고,

20대 때는 청소년기의 풋풋함을 그리워하고,

30대 때는 어설펐지만 찬란했던 청춘을 그리워했다.

40대 때는 앞만 보고 달리던 30대가 영원할 줄 알았고,

50대 때는 가족이 떠나가며 어색한 자유가 찾아와서, 가족과 아웅다웅 살았던 40대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60대 이후가 되어서 그 모든 시간이 찬란했음을 깨닫는다.

첫사랑의 얼굴도, 부모님의 젊었던 모습도, 자신의 청춘도 이제는 흐릿하지만 감정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몸은 겨울로 향해 가지만, 마음은 늘 푸르른 봄 언저리에 머문다.


남규는 드디어 발걸음을 돌렸다.

그의 마음 어딘가에 있는 소란스럽고 찬란한 ‘그날의 봄’을 향해. 남규는 번화가 벤치에 앉아 물끄러미 상황을 지켜본다.

유난히 더운 그날 늦은 오후, 그곳엔 자신의 또래가 태반이었다.


딱히 갈 곳은 없지만 집에 있긴 싫은 이들이 지하철을 타고 나와 약속이라도 한 듯 모인다.

손에 부채를 하나씩 쥐어 흔들며 멍하니 앉아있다.

남규도 어제까진 그랬다.

오늘 그는 그들과 거리를 둔 채, 지켜볼 뿐이다.


어린아이들이 무리 지어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

아이들은 모여있었지만, 각자 폰을 보며 제각기 앉아 있었다.

남규는 그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왜 같이 있는데 혼자 있는 걸?’


어린 시절 남규는 동네를 뛰놀았다.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잡기 등.

모이면 놀았고 엄마가 찾을 때가 돼서야 헤어졌다.


어린아이들이 떠나가고 교복을 입은 소년과 소년이 왔다.

소년과 소녀는 웃었고 떠들었다.

부끄러운지 슬며시 서로의 눈을 스쳐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풋풋함을 바라만 보아도 좋았다.


남규는 그 모습을 보고 아주 오래전 잊고 있던 보물상자를 연 것만 같았다.

첫사랑과 손을 잡고 걷던 골목,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었을 때 떨림.

그 시절, 그때 그 장소.


저녁이 되자 거리의 공기가 바뀌었다.

바람이 선선하게 살랑였고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남규 주변에 있던 또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남규도 평소처럼 몸을 일으키려다 말았다.


‘오늘은 조금만 더 있어볼까?’


오늘은 왠지 무언가가 그를 붙잡았다.

또래는 사라지고 나이 든 사람은 남규뿐이었다.

남규 주위로 젊은 이들이 모여들었고 남규도 그들과 똑같단 느낌을 받았다.


젊은 이들은 무리가 모이자 제 갈길을 갔다.

보아하니 술 한잔 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남규는 대학생시절 친구들과 없는 돈을 모아 짬뽕 국물에 소주 한잔 기울이던 그때를 떠올렸다.


‘비록 돈은 없었지만 푸르렀구나….’


시간이 더 흘렀고,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거리에 모였다.

각자의 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하는 그들.

누군가는 퇴근길을, 누군가는 회식을, 또 누군가는 그날의 노고를 씻어낼 혼술을 향한 걸음이겠지.


남규는 지난날을 떠올렸다.

과장으로 진급한 날, 아이에게 자전거를 사주고 뒤에서 잡아주던 날, 아내가 만든 김치찌개가 너무 짜서 밥만 몇 공기 들이켠 날.


‘그래, 그땐 가족 덕분에 살았지….’


모든 날이 쉽진 않았지만, 그땐 그때만의 낭만이 있었다.

어느덧 광장은 조용해졌다.

가로등 불빛이 길게 드리워졌고, 벤치 옆 자판기 불빛만 희미하게 흘렀다.

남규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오래 앉아있었던 탓일까, 무릎이 시큰했지만 마음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그는 서서 몸을 펴며 오늘 하루를 떠올렸다.


10대 때는 유년기의 자유로움을 그리워하고,

20대 때는 청소년기의 풋풋함을 그리워하고,

30대 때는 어설펐지만 찬란했던 청춘을 그리워했다.

40대 때는 앞만 보고 달리던 30대가 영원할 줄 알았고,

50대 때는 가족이 떠나가며 어색한 자유가 찾아와서, 바빴던 30대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60대 이후가 되어서 그 모든 시간이 찬란했음을 깨닫는다.

첫사랑의 얼굴도, 부모님의 젊었던 모습도, 자신의 청춘도 이제는 흐릿하지만 감정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몸은 겨울로 향해 가지만, 마음은 늘 푸르른 봄 언저리에 머문다.


남규는 드디어 발걸음을 돌렸다.

그의 마음 어딘가에 있는 소란스럽고 찬란한 ‘그날의 봄’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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