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신세계를 소개합니다

by 백경

장강명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세바시 강연을 통해서였다.

전업작가가 되는 363일간의 이야기 통해서 매력적인 작가라 생각했다.(기회가 되면 보길 강추한다.)

장강명 작가는 에세이, 기록문학, 범죄물, SF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읽어보고 싶었던 작품이 <한국이 싫어서>다.


난 비관론자에 불만론자였다.

그랬었다.

물론 그 본성이 어디 가겠느냐 마는.

지금은 긍정적인 사람이다. 그것도 지나칠정도로.

이렇게 변한 이유는 지독한 우울증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튜브에서 의사 선생님이 말하기론 이를 ‘외상 후 성장’이라고 했다.

아무튼 지금의 난 바뀌었다.


그럼 왜 이런 말을 하는가?(감이 오죠?)

난 한국이 싫었다.

한국인 특유의 강점이 있다.

바로 정이 강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 정이 경계를 허물고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 사회의 건축 구조만 보아도 그러하다.

우리는 대게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외부적으로 본다면 같은 모양의 건물이 반듯하게 자리하고 칸칸이 들어가서 산다.

모든 사람이 옆에 사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자세히 볼 수 있다.

쉽게 참견하고 한 마디씩 거들기도 한다.


정이 강해서 누군가를 돕기도 하지만,

정이 강해서 누군가를 괴롭히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이 싫었다.

종종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는가?


한류의 유행이 오기 전,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느끼는 해방감 같은 것 말이다.(욕을 하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이를 부정하지도 않지만.)

특히 나 같은 내향인의 경우 이럴 때 해방감을 더 느낀다.

그곳에서 마주하게 될 답답함과 고독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 더 해방감을 느낀다.


K-POP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이제는 K-POP 뿐만 아니라 음식, 드라마, 영화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가 세계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가슴 벅찰 일이기도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과연 한국인이 맞을까?’


흔히 외국인과 비교하는 말들이 있다.


‘외국에 나가서 우리나라에서처럼 술을 마시면 알코올중독자로 안다.’

‘흥이 많고 단합력이 좋아서 잘 뭉치고 멋지게 논다.’

‘한국 남자는 매너가 좋고 잘 생겼다.’


‘…….’


모든 말들을 부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인’이라는 상징에 빚대어 볼 때, 난 한국인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부동산을 지나칠 때면 가격이 얼마인지 확인한다.

매매가, 전세 보증금, 월세 등등.

특히나 눈에 들어오는 건 매매가였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페인트칠이 벗겨져 남루해 보이는 외관.

서울 집값은 왜 그리 비싼 건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동네에 걸린 집들은 이름값만큼이나 값이 나갔다.

어떤 집은 평생을 가도 살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했다.


이러한 현실을 겪는 건 나뿐이 아니었으리라.

구직 희망자의 희망 평균 연봉은 3,468만 원이라고 한다.

미취업 청년이 76%(19~39세 기준, 왜 19세를 표본에 넣어서 억지로 미취업 청년의 수를 늘린 지는 모르겠다.)라 한다.

이들 중 부모로부터 재산을 받은 이들이 아닌 이상, 초고가의 집을 살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은 외국 경제 유튜버가 분석한 것처럼 점점 지옥이 되는 걸까?



<한국이 싫어서>는 인서울 대학교를 졸업하고 금융회사에서 근무를 하다 호주로 떠난 20대 후반 여성, 계나의 이야기다.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도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이 두 장면은 계나가 왜 한국을 떠난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점점 심해진다.

재력, 학력, 외모 등은 부모에게 물려받아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일부는 허들을 넘고 넘어 쟁취하기도 하지만, 소수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양극화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사고방식 또한 양극화의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이슈가 터지고 댓글을 보면 가관이다.

기사거리마다 극명하게 주장이 갈리는 경우가 있으며 서로를 비난하고 치열하게 싸우기도 한다.


유물론과 관념론의 처절한 사투가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 우리는 신유물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를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기준이 돈, 사물, 인간, 기술, 감정, 환경 등으로 보인다.


‘무엇을 돈으로 살 수 없다면 그것은 돈이 부족해서이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 이야기에 뼈를 맞는다.

나 또한 돈이 많았으면 한다.

경제적 자유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돈을 많이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경계해 본다.(돈이 목적이 되어 이끌려 다니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이 대목에서 이런 상상을 한다.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경제적 풍요로움으로 한국에서의 불만족스러운 삶이 돈으로 극복가능했다면?


이야기는 소설에서 할 법한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책에선 이런 이야기를 한다.


매달 100만 원씩 들어오는 수입이랑 자산 7억 원을 같은 거라고 생각한대. …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자산성 행복’은 성취감으로 오랫동안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유형은 자산이자가 높다.

‘현금흐름성 행복’은 행복 금리가 낮아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순간순간 살아가면서 행복을 느낀다.


두 유형이 종종 발생하긴 하지만 한 유형이 전적으로 발동할 것이다.

난 ‘자산성 행복’ 형으로 보인다. 성취감이 오랫동안 유지된다. 다만 이런 유형일수록 과거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매번 목표를 세우고 성취감을 느껴야 한다.

소소한 것이라도 괜찮다. 나는 매번 성취감을 느껴야 하는 인간이다.



돈만 좇지 않기를 바란다.

각자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구태여 내가 아직 갖지 못한 것으로 남과 비교하며 불행하지 않았으면 한다.

난 춤을 잘 추지도, 노래를 잘 부르지도, 외모가 빼어나지도, 많이 먹지도(최근 쓸개를 제거해서 못 먹게 됐다.),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외국에 나가 살 마음은 없다.

여전히 한국이 좋고 여기에서의 삶이 좋다.

행복, 아주 소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마음을 먹기에 달렸다.


겨울이 좋았다 최근 들어 여름이 좋다.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장마가 오면 물에 잠긴듯한 찝찝함, 피부를 구울 듯한 따가운 햇빛, 온기를 머금은 바람.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름을 더 좋아한다.

옷은 한껏 가벼워지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더위가 풍미를 더해준다.


행복,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계나의 삶이 한국을 남은 이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에서 살기를 바라는 이들이, 치열한 경쟁과 비교 속에서 불행한 길을 선택하기보다 자신에게 진실되고 객관화되길 희망한다.

더 나이가 들었을 때, 그런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장강명 작가님은 연세대 공대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에 입사 후 11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2011년 장편소설 <표백>으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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