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건, 급류

신세계를 소개합니다

by 백경

박미경 작가님의 <어둠 속 기다림>을 표지로 한 책이 눈에 띈다.

휘몰아치는 급류가 날것으로 표지에 드러나있다.(다른 버전도 있지만 이 버전을 좋아한다.)


정대건 작가는 ‘투 올드 힙합 키드’, ‘메이트’를 연출한 감독이다.

지금은 감독이란 호칭이 어색하다고 하는데, 한 인터뷰에서 나눈 이야기를 통해 이유를 알 수 있다.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지, 시각화하는 것에는 큰 욕망이 있지 않더라고요.

-밀리의 서재, 리딩 케미스트리-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가 만들어낸 흥미롭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접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2022년 쓰였지만, 2024년 말부터 독자들의 눈에 띄여 역주행을 했다.

이 책은 왜 역주행을 하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손에 꼽는 것은 ‘몰입’이라 할 수 있다.

책을 펴는 순간, 다음 장면으로 기대감을 이끈다.


이 책을 처음 알았을 무렵, 나는 출판편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북리뷰를 한창 하고 있었다.

그때 정리했던 책 중 하나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난 다시 한번 더 이 책을 펼쳐 들게 되었다.

다시 한번 더 읽었을 때,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던 문제와 마주했다.


그건 바로 ‘사랑’이다.

작중 두 주인공, 도담과 해솔이 등장한다.

도담의 아빠와 해솔의 엄마가 진평강 하류에서 벌거벗은 채 시신으로 발견되며 사건은 시작한다.

하나의 사건으로, 같은 상처를 지닌 도담과 해솔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해 간다.

두 주인공의 성장, 트라우마 극복 그리고 사랑에 대한 주제가 펼쳐진다.


난 그중에서 ‘사랑’이라는 주제와 마주했다.

흔히 미디어에서 자주 다루는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이 전개되며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너무 남발해서일까?

남녀 등장인물의 러브라인이 없는 작품이 나올 때면 일각에서는 호평을 내리기도 한다.

억지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되어 셀링 포인트를 자극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급류에서 마주한 ‘사랑’은 좀 더 깊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남녀 간의 사랑이 등장하지만, 이는 자연스레 트라우마 극복이라는 주제와 연결된다.

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도 그려진다.


흔히들 말을 듣지 않는 자녀에게 부모는 ”나중에 너 같은 애 낳아봐야 안다. “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물론 난 아직 미혼에다 자녀도 없기에 부모의 마음에 공감할 수 없다.

다만 추측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일까?

진부하게 사전적 의미를 들이밀자면,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이라고 한다.


난 이 지점에서 늘 의문을 가졌다.

누군가와 사랑한다고 했을 때 내가 가진 농도와 그 사람이 가진 농도가 같을까?

다르다면 그건 어떤 식으로 볼 수 있을까?


직감적으로는 알 수 있지만, 현대 문명사회에 수치화된 사랑을 확인할 수는 없다.

(만약 이런 장치가 생긴다 하더라도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이 될 것 같다.)


우리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신’과 같은 위치에 올려둔다.

절대불변할 것처럼 떠들다가 헤어질 땐 언제 그랬냐는 듯 털어내기도 한다.

연인이 서로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

온전히 같은 마음이 아니란 기괴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이 든 건 급류에 나오는 한 장면 덕분이다.


도담은 예지가 그렇게 사랑을 최고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아직 사랑에 충분히 당하지 않아서라고 믿었다.


이 표현이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고민하던 사랑의 다양성이라 생각한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선에 해당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지독한 것이기도 하다.


각자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 타고난 기질 등에 의해 우리는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받아들인다.

사랑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의 내리기 힘든 것 같다.




본문에 나오는 두 문장이 가슴을 후벼 판다.


그때 깨달았어. 사랑한다는 말은 과거형은 힘이 없고 언제나 현재형이어야 한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다.

부모가 되지 않아서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했고,

완전한 타자가 되지 못해서 타자의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급류를 읽고 한 가지는 깨달았다.


아직도 내가 사랑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할 그날이 오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내 방식대로 사랑하고 싶다.

미워하고 질투하고 욕하는 일도 분명 있겠지만, 그 끝에는 결국 사랑하고 싶다.

그 대상엔 나 자신도 포함된다.

그러니 가장 소중한 방식으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랑을 마음껏 하면 좋겠다.


급류란, 내게 위로를 건네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일깨워준 책이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