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도키오

신세계를 소개합니다

by 백경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 소설작가이다.

그의 작품을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접한 덕에 『도키오』도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다.


도키오는 미스터리물이기는 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다.


레이코는 ‘그레고리우스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우연히 만난 다쿠미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의 청혼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레고리우스는 X유전자병으로 운동신경을 서서히 잃다 결국 뇌기능이 정지되고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실제로 있는 병인줄 알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만든 가상의 질환이다.)


다쿠미는 레이코와의 결혼을 포기하지 않았다. 처음엔 자식 없이 둘이서 행복하게 지내자고 했다. 그 덕분에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갑작스럽게 부부에게 아이가 생긴다. 레이코는 병의 두려움 때문에 아이를 지우려 했지만, 이번에도 다쿠미는 레이코를 살살 타이른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 ‘도키오’가 태어난다.


레이코가 걱정했던 부분처럼, 도키오는 중학생 3학년 졸업 직전 병이 발현하고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다쿠미는 도키오에게 마지막으로 전할 말이 있었다. 꼭 묻고 싶었다.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 행복했는지 아니면 우리를 원망했는지.


그리고 다쿠미는 레이코에게 20년도 전에 도키오를 만났던 과거를 말해준다.


이야기는 23살의 다쿠미와 17세의 도키오의 SF적인 만남을 그린다.

23살의 다쿠미는 미래가 없는 사람이었다. 안 풀리면 주먹이 먼저 나가기도 했고, 거슬리면 일 따위 쉽게 그만두었다. 젊은 시절의 다쿠미는 막무가내인 사내였다. 의문의 사내인 도키오가 등장하고 다쿠미의 복잡한 과거사가 풀려 나간다.

이야기의 중심은 다쿠미의 연인이었던 치즈루가 갑자기 쪽지만 남기고 사라지면서 그녀를 찾으러 가는 것이다. 긴 호흡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흥미롭게 진행된다.


미래에 사는 아들이 젊은 시절 아빠를 만나면서 위기를 극복한다. 도키오를 읽으면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부모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꽤 들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최근 꽤 오랜 시간 동안 어머니의 삶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인물의 이야기를 듣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이다. 좋은 기회를 얻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젊은 시절 엄마를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도키오’를 읽으며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막무가내 다쿠미는 책 초반에 나오는 성숙한 어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괴리가 어떻게 좁혀질까도 꽤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우린 우리의 사람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여전히 알아가야 할 일들이 많다. 특정한 사건이야 기억하는 일이 있지만, 내 기억력이 그렇게 좋지 못한 지 추억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그런 일도 있었어?’라며 깜짝 놀라기도 한다.(함께 한 추억인데도 말이다.) 그럴 땐 낡은 책장에 먼지묵은 책을 한 권 펼쳐드는 기분이다. 물론 타인의 과거를 톺아보는 일 또한 그렇다.


나의 아버지는 어떤 청년이었을까?

나의 어머니는 어떤 소녀였을까?


이런 호기심은 이야깃거리를 자극시킨다.

하지만 아쉽게도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소소하고도 확실한 타임리프가 존재한다.

영업비밀인데, 독자님들에겐 특별히 알려주도록 하겠다.


우울증과 불안증으로 꽤 오랜 기간 고생했다.

운이 좋게 상담기법 중 하나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면아이’를 끌어안아주고 치유해 주란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지금은 우울증과 불안증으로부터 완전히 떠났다.

하지만 힘든 상황이 올 때면, 여전히 ‘다시 병에 걸리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찾아온다.

정신이 건강할 때, 상처받은 내면을 어루만진다.


어린 시절 난 어떤 아이였을까?


그때 상처받고 결핍된 그 아이를 온전히 끌어안아본다.

도키오가 히가시노 게이고식 타임루프라면, 이건 백경식 타임루프가 아닐까?


긍정적인 힘으로 살아가지만, 때론 상황 때문에 힘에 부칠 때가 있다.

그럴 땐 과거의 나를 만나러 간다.

실수했던 나를, 좋은 기회를 놓쳤던 나를 만나러 간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나라도 말이다.

그 아이를 끌어안아주고 다시 일어서라고 손을 뻗어본다.


과거로 돌아가서 로또 일등 번호를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임을 안다.

상처와 결핍된 내면아이를 끌어안을 때, 어쩌면 미래를 위한 로또 일등이 이것은 아닐까 싶다.


내일만이 미래가 아니라고요.


도키오가 했던 말이다.

우리는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에 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거창한 미래를 꿈꾸기도 하지만, 오늘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다쿠미가 그토록 묻고 싶어 하던 말은 도키오에게 닿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다쿠미 씨, 나는 말입니다. 태어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연한 계기로 이 글을 읽게 된 당신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중이라면 내가 말한 타임리프를 해보길 추천한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도키오』도 읽어보길 추천한다.(현재는 『아들 도키오』로 재발간 되었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도 뒤돌아보면 낮은 울타리일 수 있다. 때론 넘어가지 못할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것을 넘어서거나 부수고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결국 우리 모두가 마음에 품었으면 하는 문장처럼 느껴진다.


도키오는 죽은 게 아니야. 새로운 여행을 떠난 거야. 조금 전에 그걸 확인했잖아.




히가시노 게이고 1958년생.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작가이다. 등단 후 14년 동안 무명작가에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40세가 되던 1998년 『비밀』이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면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용의자 X의 헌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방과 후, 악의 등의 작품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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