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솔뫼, 미래 산책 연습

신세계를 소개합니다

by 백경
부산역에서 차이나타운을 지나 중앙동을 걷다 광복동 남포동을 향하면 국제시장 근처에 용두산아파트가 있었다.


부산역에서 내려 국제시장으로 향하면 동광동, 광복동, 남포동이 나온다. 천만영화 <국제시장> 인근 동네다. 『미래 산책 연습』은 이 동네들과 다리 건너 영도를 산책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서울에 살면서 남포동 일대에 관심이 많아 부산을 자주 들리는 화자와 어린 시절 ‘윤미 언니’와 함께 살았고 광주에 함께 다녀온 수미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나온다. 윤미 언니의 출소 장면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초반부 무슨 사건 때문에 윤미 언니는 교도소에 다녀왔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이재모 피자 본점 근처에는 미문화원이 자리 잡고 있다. 미문화원 방화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으로 등장하는데, 윤미 언니는 이 사건의 주동자 중 하나로 묘사된다. 미문화원 사건과 광주 민주화운동이 교차하며 역사적인 사건들이 개인의 기억과 현재의 산책에 포개져 나타난다. 역사와 개인,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독특한 서사다.


이 소설의 매력은 동네를 산책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난 몇 해를 소설에 나오는 동네에서 보냈다. 산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처음 동네에 자리를 잡았을 때 기분을 상기시켰다. 내가 다녔던 길, 가봤던 건물, 구경했던 부산의 전경 등 관광객이 아닌 그곳에 ‘머무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바라본다. 하지만 화자는 온전히 부산에 터를 잡은 사람이 아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산책을 즐기고 몇 안 되는 주변 인물들과 교류를 한다. 이 부분에서 다른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화자도 결국 그곳에 ‘사는 사람’이 아닌 ‘머무는 사람’이다.


영도에서 남포동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성당에 앉아서 미문화원 계단을 떠올리던 것처럼 몇 달 전 그곳에 갔던 것을 생각했다.
사실 이전에도 몇 번 그곳에 들른 적은 있었다.
길을 걷다 오래된 건물이 보였고 고풍스럽고 튼튼해 보이는 그 건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좀 더 천천히 그 건물을 살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부산에서 진행되는 전시에서 옛 미문화원 건물인 부산 근대역사관과 관련한 원고를 의뢰받았기 때문이었다.




『미래 산책 연습』은 뚜렷한 기승전결을 따라가는 소설이 아니다. 대신 두 개의 목소리가 교차하며 독자를 이끈다. 현재 부산을 걸어 다니는 화자와 어린 시절 윤미 언니와 함께 광주에 갔던 경험을 기억하는 수미 이야기다. 같은 공간, 같은 도시 위에 놓여 기묘하게 포개진다. 마치 한 장의 사진 위에 다른 사진을 덧대어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빛난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산책이라는 행위가 단순한 걷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부산의 오래된 건물과 거리, 이미 사라진 장소를 걸을 때마다, 현재의 풍경과 과거의 기억이 겹쳐지고 잊힌 사건들이 다시 호명된다. 산책은 역사를 되살리는 매개이자 시간을 가로지르는 연습이 된다.


박솔뫼 작가의 문장은 빠르면서도 느슨하다. 특유의 리듬과 반복이 중첩되며 독특한 울림을 건넨다. 어떤 대목에서는 일상적인 문장이 역사적 사건과 맞물리며 강렬한 대비를 만들어낸다. 독자는 그 느슨함 속에서 깊은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읽고 나면 부산의 거리와 바다, 오래된 건물들이 단순한 공간이 아닌 시간이 켜켜이 쌓인 기억의 장처럼 느껴진다.


『미래 산책 연습』은 독자에게 쉽게 길을 내주지 않는다. 조금만 정신이 흐트러지면 길을 놓치기 쉽다. 하지만 발맞춰 천천히 걷다 보면 현재와 과거, 개인과 역사의 직조하면서 생각의 깊이를 더한다.


다른 도시를 여행할 때, 맛집이라든지 핫플레이스를 검색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줄이 아무리 길더라도 끝내 그곳에 입장해 보란 듯이 사진을 찍고 올린다. 여행을 즐기는 흔한 방식이다.

때로는 미래 산책 연습처럼 다른 시선에서 찬찬히 훑어보는 건 어떨까? 부산에 가기 쉽지 않지만 천천히 산책하며 과거의 사건과 현재를 만나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해본다. 결국 우리 삶도 미래를 향한 산책 연습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다른 시간을 살 수 있었다. 미래를 살고 와야 할 것을 살아낸다면 미래를 기억이 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을 미래를 기억이 되도록 살아가고 있을 때 어느 날 그것이 보인다면 그럼에도 그것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미래로 우리 앞에 벌어지는 일이 될 것이다.




박솔뫼 작가


2009년 『을』로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

우리의 사람들, 고요함 동물, 영릉에서 등의 단편집과 장편이 있다.

특유의 문체와 문장이 울림을 준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