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별인사

신세계를 소개합니다

by 백경

화자인 철이는 평양의 한 연구소 휴먼매터스에서 지내는 소년이다. 소년은 과학자인 아버지와 함께 그곳에서 지냈으며 세 마리의 고양이와도 함께 했다. 고양이는 갈릴레오, 칸트, 데카르트다. 데카르트는 로봇 고양이다. 그렇다. 그곳은 인공지능 로봇과 휴머노이드가 함께하는 연구소다.


어느 날 노을 지는 오후, 철이의 아빠 최 박사는 철이를 집에 두고 혼자 산책을 가려한다. 철이는 함께 나가고 싶어 했지만 최 박사는 극구 만류했다. 갑자기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에 철이는 우산을 들고 마중 나간다면 아빠가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전에도 그랬으니까. 철이는 우산을 챙겨 소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현악사중주단의 연주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나기가 내리고 있어 관중은 없었다. 그때 누군가 철이의 어깨를 툭툭 쳤다.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이었는데 그들은 리모컨 비슷한 장치로 철이를 스캔했다. 그러곤 말했다.


어, 등록이 안 돼 있는데?


그들의 말로는 철이가 등록되지 않은 휴머노이드라 말했다. 철이는 그들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자신으로 인간이라 했다. 그들은 현악사중주단을 장치로 스캔하며 인간은 H로, 등록된 휴머노이드는 파란색 R로 뜬다고 했다. 철이는 붉은색 R이었다. 그들은 반항하는 철이를 제압하고 플라잉캡슐에 던져 넣었다. 플라잉캡슐은 철이를 싣고 어디론가 향했다.


눈을 떴을 때 철이는 무등록 휴머노이드가 갇혀있는 수용소에 있었다. 그들은 무등록 휴머노이드 단속법이 발효되어서 이곳에 왔다고 알려주었다. 그때 자신이 인간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말에 전투용 휴머노이드들이 그 아이의 배를 때리고 왼손을 잡아당겨 뜯어버렸다. 팔은 인형 팔처럼 쑥 뽑혀 나왔는데, 피 같은 것과 인공섬유가 삐져나온 것이 보였다.


과연 철이는 이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작별인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출간된 책이다.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구 년 만에 나온 장편소설이다. 언젠가부터 그의 장편소설이 나오길 바랐다.

『작별인사』의 초반부를 읽어 넘길 때만 해도 SF적 설정이 방해되었다. 내가 기대한 내용이 아니란 생각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제목만 보고 섣불리 판단한 내 고정관념이 문제였다. 책이 중반부를 지나갈 때, 난 무릎을 탁하고 쳤다. 역시 믿고 보는 김영하 작가님이었다.



어릴 적 수련회 같은 곳에 가면 모든 것이 불편했다. 예민함 때문에 새로운 환경을 격하게 거부했다. 첫날밤 저녁 눈을 감을 때마다 했던 기도가 있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집에서 아침을 맞이하기를.


하지만 살면서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

몸이 먼저일까, 정신이 먼저일까.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도,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육체라는 말도 맞는 말이다.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물음에 모든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반박 시 당신의 말이 맞다.)


육체가 없는 삶을 상상해 보긴 했지만 긍정적이고 좋은 쪽으로만 생각해 보았다. 고통 없는 세상, 늙음이 없는 상황이 오리라고만 상상해 보았다.

외모로 남을 판단하지 않고 누구나 열린 정보를 받아들여 지식의 바다에서 실컷 모든 것을 향유할 수 있는 세계, 그런 세계만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긍정적인 미래만 보여주지 않는다. 김영하 작가 특유의 흥미로운 상상력이 재미있는 미래 사회를 엿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 없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의 소중함을 느낀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모험기를 통해서 이걸을 또 한 번 느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행복했던 추억들을 온전히 붙잡을 수 없다는 건 서글픈 일인가.

나이가 든다는 건 잃어버림의 연속이지만 동시에 새로움의 시작이 아닐까. 아직 섣불리 말하기는 어려운 나이지만 어렴풋이 그렇다고 상상해 본다.

몸은 서서히 낯설어지고 기억이 희미해지는 대신 마음은 점점 더 깊어진다.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는 그런 변화의 과정을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철이는 인간이 아니지만, 사색하는 인간 같은 존재다. 그는 고통을 이해하려 애쓰고 상실을 견디며 자신에게 주어진 의식을 끝까지 품으려 한다.


이 소설은 기술과 인간, 육체와 정신,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작별하며 배우는 존재다.

기억과 감정 그리고 상실의 흔적들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오즈의 마법사』의 허수아비가 인간들은 참으로 번거롭겠다고 불평했던 바로 그것들이 나한테는 귀한 선물이었다.


막상 몸이 사라지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몸으로 해왔는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몸 없이는 감정다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볼에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이 없고, 붉게 물든 장엄한 노을도 볼 수가 없고, 손에 와닿는 부드러운 고양이 털의 감촉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 여기서부터는 스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등장인물에 따른 관계를 구태여 나누어 보자면, 최 박사와 철이 / 선이와 달마 / 철이와 선이의 관계에서 볼 수 있다.



싱가포르 시절, 최 박사에게 뇌를 백업하고 영생하지 않겠냐고 권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미 많은 인간이 그렇게 하고 있을 때였지만, 그는 단호히 거부했다. 여전히 육신이 없는 영생을 바라지 않는다고, 인간의 존엄성은 죽음을 직시하는 데에서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육신 없는 삶이란 끝없는 지루함이며 참된 고통일 거라고도.



최 박사는 철이를 사색하는 수도승과 같은 휴머노이드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의 목표는 인간의 감정을 모방하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감정을 초월해 깨달음에 다다르는 존재였다. 최 박사는 철이를 단순한 휴머노이드가 아니라 아들처럼 생각한다. 그는 스스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영원히 살 수 있도록 데이터를 백업하는 것도 완강히 반대한다. 그러나 철이와의 관계에서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는 철이에게 자신의 신념을 투영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폭력적으로 변한다.



달마는 개별적인 의식은 모두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했고, 선이는 어차피 우리는 모두 우주정신으로 돌아갈 것이니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이야기를 완성하라고 했다.



달마는 재생휴머노이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적 상징을 짙게 지닌 인물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개별적인 의식은 모두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선이의 ‘우주정신’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달마의 세계관이 ‘하나로의 귀결’을 향한다면, 선이의 우주정신은 ‘연결된 다수의 존재가 서로의 고유성을 인정하며 공존하는 세계’다. 달마가 흡수와 통합이라면 선이는 공존과 대화에 가깝다.

이 차이는 철학적 논쟁을 넘어 인간다움의 정의에 대한 대립으로 확장된다. 달마는 완전함을 추구한다. 그는 불완전한 감정을 지워버리고 오류 없는 집단의식을 이상으로 삼는다. 반면 선이는 불완전함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잠깐이지만 우주의 아름다움을 엿보고 갈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이걸 다시 보려면 억겁의 시간을 기다려야 할 거야.


선이는 철이가 수용소에서 만난 소녀다. 선이는 다른 존재들과 어우러지는 능력이 특출 나다. 수용소에서 전투용 휴머노이드와 애완용 휴머노이드 간의 관계를 중재한다. 우주정신이라는 개념으로 살아있는 동안 고유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그것이 인간이든 휴머노이드든.

수용소에서 탈출한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게 된다. 몸을 잃어버린 철이는 데이터가 되어 정신세계에서 살아가며 때로는 고양이 로봇 데카르트의 몸을 빌려 뛰논다. 이후 이야기를 더 적고 싶지만 완벽한 스포일러가 될까 봐 말을 줄이겠다.



달마와 선이의 철학적 논쟁에서 관심을 크게 가졌고 후반부에 갈수록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 하며 선이의 우주정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휴머노이드를 통해 인간다움이라는 주제를 생각하게 해낸 것이 매력적이었다.




김영하 작가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등의 많은 책을 냈다.


소설과 에세이뿐만 아니라 번역을 하기도 한다.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친근한 작가이며 동시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꾼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