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를 소개합니다
검찰청입니다. 등기를 보내야 하는데 14시에 받을 수 있나요?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깜짝 놀랐다.
서둘러 시간을 조정했다.
검찰청에서 도대체 뭘 보낸 걸까.
난 무슨 잘못을 한 걸까.
무엇을 보냈냐니까 유선 전화상 알려줄 수 없단다.
본인이 받아야 한다는 말에 인터넷으로 확인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었으나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래서 재차 물으려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검찰청이란다.
어디 검찰청이냐고 하니 서울 검찰청이라 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본인 방문하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곧 인터넷 검색을 했다.
역시나 보이스 피싱이었다.
내가 좀 더 집중해서 전화를 받았더라면.
사이트 주소를 단번에 기억했다면.
피해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 사실을 주변인에게 알렸다.
다들 위험할 뻔했다고 하며 날 다그친다.
‘사건’은 발생했고 ‘관계’는 이어지지 않았다.
작은 해프닝으로 상황은 일단락됐다.
서점에 갔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건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이다.
그중 눈에 들어온 하나의 책이 「스토너」였다.
바로 사서 읽지 않았다.
아쉽게도 당시에는 큰 끌림이 없었다.
돌고 돌아 어느 날,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던 중.
서점에서 봤던 「스토너」가 떠올랐다.
그 순간 강렬하게 읽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다만 스토너의 표지가 은은하게 내게 파고들었겠지.
「스토너」는 한 사람의 삶을 잔잔하게 풀어낸 듯한 소설이다.
윌리엄 스토너의 삶에 조각 중 내 삶을 보기도 하고,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의 인물을 보기도 한다.
어딘가에서 살다가 떠난 실존하는 사람의 삶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총 1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시작은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지만,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서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도입부에서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의 시작이 떠올랐다.
장례식으로 시작되는 장면과 겹쳐 보여 몰입이 금방 되었다.
(몰입은 됐지만 순간이었다. 사실 유튜브에 중독돼서 11일 만에 완독 했다. 3일 가까스로 몰입해서 오늘 새벽에 다 읽었다. 이 얼마나 낭창한 고백인가.)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대가 변한 걸 알고 그의 부모는 스토너가 대학에 가길 바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학에 가서 농사에 대한 지식을 쌓은 다음 빼어난 농부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문학에 눈을 뜨고 진로를 바꾸게 된다.
그는 영문학 개론 강의에서 셰익스 피어의 소네트를 읽다가 슬론의 눈에 띄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이 부분이 내겐 큰 울림을 주었다.
한 번도 작가가 이야기를 통해 세월을 초월해서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상상은 해보지 않았다.
모르겠나, 스토너 군?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정말이십니까?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합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졸업식 날 먼 곳에서 찾아온 부모는 교육자의 길을 선택한 아들의 말에 당황하지만 동의해 준다.
이후 부모는 고향에 내려가서 농사를 지었고, 그는 고향을 찾는 일이 적었다.
다시 고향에 갔을 때에도 그는 흙을 보고 이전에 느꼈던 것들을 느끼지 못한다.
이전 삶과의 완전한 단절이 일어났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는 학사 학위에서 석사 과정으로, 그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가르치며 동료들과 친분을 쌓게 된다.
어느 파티에서 이디스라는 여성을 만나 타오르는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이 결혼은 행복으로 나아가는 듯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둘 사이에 그레이스라는 딸이 생긴다.
스토너는 부인과는 맺을 수 없는 연대를 딸에게서 느낀다.
부녀 사이는 끈끈하게 되지만, 이디스에 의해서 단절되게 된다.
스토너는 다시 메마른 가지처럼 살아간다.
그의 곁에는 늘 문학이 있었다.
그러던 중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과 사랑에 빠져 외도를 하게 된다.
이후 이 관계는 소문에서 소문으로,
학교에서 가정으로 스며든다.
부인 이디스에게 말을 듣고 스토너의 외도는 끝이 난다.
「스토너」는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다.
여기서 주목한 부분은 ‘사건’과 ‘관계’다.
소설의 특성상 한 사람의 1분 1초를 다루지는 않는다.
그의 일상을 다루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그에 얽힌 관계를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낸다.
첫 챕터에서 스토너의 삶은 비루해 보이지만,
그의 삶을 톺아보면
사랑,
친밀함과 친교,
가식,
무정함,
적개심과 포용,
그리움
등 관계에서 오는 다양한 감정을 볼 수 있다.
내가 리뷰한 부분은 ‘사랑’ 부분의 일부이다.
현실에서는 어떨까?
우리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더 많은 관계가 생기고 없어진다.
그 관계 중 질기고 두꺼운 관계도 있고
스쳐 지나가고 이미 잊힌 관계도 있다.
「스토너」가 몰입감이 있는 이유는 사건과 관계를 응축해서 인생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책에서 작고 큰 사건이 엮여 작은 일들이 나비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의 삶도 별 것 아닌 것으로 넘어가는 일들이 나중에 도움을 주거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스토너」에서는 역사적 사건도 사용하는데 전쟁과 관련이 깊다.
스토너는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다.
전쟁에 참전한 주변인들을 통해 생존자의 시점에서 겪어야 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이는 인간의 삶 중 관계에서 오는 파괴적인 사건이 전쟁과 닮아있어서가 아닌가 싶었다.(전쟁은 등장인물 중 누군가의 죽음을 초래하기도 한다.)
상실과 부재로 인해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고 관계가 미묘하게 변화된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내 삶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까.
사건에서 어떤 관계가 얽혀있고,
관계 안에서 어떤 감정이 관계를 변화시키는가.
거기서 난 무엇을 발견했고,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의 물음은 결국 책을 읽는 사람을 관통한다.
우리는 어떤 삶을 기대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1956년에 쓰인 「스토너가 70년이 흐른 뒤에 한국에 사는 내게 닿았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들이라면 시간을 내서 읽어보길 바란다.
분량이 많고 표현이 세밀한 만큼 긴 호흡으로 읽기를 추천한다.(리뷰 압박 때문에 빨리 읽어서 다시 한번 더 읽어볼 생각이다.)
존 윌리엄스 작가의 목소리가 70년이 지나 그대들에게도 닿기를.
그래서 그대들의 삶에도 울림을 주기를 바라본다.
존 윌리엄스 작가
1922년 미국 텍사스 클락스빌 출생
「오직 밤뿐인」, 「도살자의 건널목」, 「스토너」, 「아우구스투스」를 집필했다.
다섯 번째 작품인 「이성의 잠」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1994년 사망
1965년에 출간된 「스토너」는 거의 50년이 흐른 뒤에야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아우구스투스」로 전미도서상까지 수상했지만, 2000년대 재출간되면서 뒤늦게 화제가 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