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걸 잡으려면 쥐고 있는 걸 놓아야 된다

백경 에세이

by 백경

이솝우화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를 아는가.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해 납작한 접시에 수프를 내자, 두루미가 먹을 수 없었다.

며칠 뒤 두루미가 여우를 초대해 긴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대접하자, 짧은 주둥이의 여우는 먹을 수 없었다.


이 이야기가 떠오르면 생각나는 문구가 있다.

‘새로운 걸 잡으려면 쥐고 있는 걸 놓아야 된다.’는 문구다.


교훈은 서로 다르지만, 왜 두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하고 싶은 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런 건 아닐까 싶다.


새로운 것을 잡으려면 쥐고 있는 걸 놓아야 한다.

이 말이 옳다면 왜 나는 매번 그러지 못했을까.


천성이 욕심이 많은지라 하나를 포기하는 게 쉽지 않다.

이걸 하면 저것도 하고 싶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 한다.

결국 그 끝은 무언가 하나만 선택해야만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왜 난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인 건가.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유치원생 정도 됐던 것 같다.

볼풀장에 가서 노는데 어머니가 손수건을 목에 묶어주었다.

신나게 놀다 보니 손수건이 보이지 않았다.

울상인 표정으로 놀이는 그만둔 채 손수건을 찾으러 다녔다.


찾고 또 찾고 또 찾아도 고무공 사이에 손수건은 보이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으로 어머니께 달려갔다.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어머니는 직감적으로 안 듯했다.

손수건을 잃어버렸는데 찾지 못한다는 말을 전한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지려 했다.



그냥 가서 신나게 놀아.
손수건은 없어져도 괜찮아.



그날의 마지막 기억은 흐릿하지만, 결국 난 신나게 놀지 못했던 것 같다.

손수건과 놀이 중 손수건을 선택했고,

결국 둘 다 제대로 잡지도 못 했다.


물건에만 애착을 가지는 게 아니다.

내 것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내 것이 된 것에는 애착을 가진다.

버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잘 정리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지금도 내 책상은 오와 열을 맞춘 물건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이 습관은 강박에 가깝게 인이 박혀 있다.)


언젠가부터 완벽한 정리는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기숙사 생활을 했다.

어느 날, 동기의 방에 들어갈 일이 있었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간단한 침구류 세트, 옷 몇 벌과 전공 서적.

끝이었다.

그는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었고

잘 정돈된 내 방보다 더 잘 정돈되었다.(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여 년 지나,

유튜브에서 미니멀 유목민 채널을 알게 되었다.

미니멀리스트.

최소한의 것을 소유한 채도 행복감을 느끼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날부터 많은 것들을 정리했다.

평소 잘 입지 않는 옷들을 버렸다.

그렇게 잘 모으던 피규어를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쓸만한 제품을 여기저기에 주었다.

책들을 중고 책방에 팔았다.(아직도 이 일은 후회한다.)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나니 짐이 단출해졌다.

비움으로써 새로운 것들이 채워졌다.

비록 그것이 물질적이 아니더라도 행복하다.



아직도 무리하게 스케줄을 짤 때가 있다.

여전히 난 욕심이 많은 사람이고

쥐고 있는 걸 놓기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헬스를 하고 싶으면서도,

헬스 갈 시간을 빼는 걸 두려워한다.

늦잠을 자는 자신이 싫으면서도,

밤늦게까지 유튜브 보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도 최근에 유튜브 대신 밤독서로 옮아가고 있다.)


난 여전히 잃어버린 손수건에 미련을 가져 지금 얻을 수 있는 추억에 만족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 내 욕심들 때문에 헝클어진 일들을 두고, 그때 하나만 선택해서 최선을 다 해 볼 걸이라며 후회하지는 않을까.


그래도 알고 있다.

어느 순간이면 딱 하나의 선택만 해야 한다는 것을.

새로운 것을 잡고 싶다면 쥐고 있는 걸 놓아야 한다는 것을.

내 인생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어머니다.

욕심을 부릴 때면 어릴 적 기억이 소환된다.


“그냥 가서 신나게 놀아. 손수건은 없어져도 괜찮아.”


무엇을 취하는 것도,

무엇을 버리는 것도 그때의 내 선택일 뿐 정답은 아니다.

지금은 비움으로써 만족감을 얻고 있지만,

비워내는 욕심은 남아있다.

결국 더 중요한 건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쥐고 있다.

놓는 법을 안다고 믿으면서도.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