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정김 Nov 20. 2020

빌딩 숲에서 진짜 숲을 봅니다

하늘은 별다른 힌트가 되지 못한다


 순전히, 모든 건, 하늘때문에


그런 날이 있다. 별생각 없이 올려본 하늘이 너무 완벽해서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날. 복권이라도 사야 하나 싶을 정도로 이런 하늘이, 이런 날씨가 곧 있을 어떤 행운의 계시같이 느껴지는 날. 그냥, 단지, 모든 건, 순전히, 하늘 때문에 기분 좋은 그런 날 말이다. 나도 그런 하늘을 만난 적이 있다. 필터라도 씌운 것 같은 하늘색에 잘 뭉쳐진 구름 두어 조각, 그 아래 살랑이는 나뭇잎까지 모든 배경이 비현실적으로 완벽했다. 길을 나서기 전까지는.


여기서 약간의 정보를 더 보태자면 계절은 8월의 여름, 시간은 오후 3시였다. 그러니까 무지하게 더웠다는 말이다. 여름의 하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 거다. 그게 얼마나 보기에만 좋은지. 창밖을 보며 감탄하다 홀린 듯 문밖을 나와 에어컨의 보호에서 벗어나 순간, 깨닫는다. 여름엔 하늘보다 에어컨이 더 최고라는 사실을.


그날의 나도 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하늘 아래를 열심히 걷고 있었다. 외근을 가던 길이었는데 장소는 회사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깔끔하게 멀면, 그냥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된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장소는 걷기에도 대중교통을 타기에도 애매하다. 대중교통을 타면 걷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고, 그렇다고 한여름이나 한겨울엔 걷기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택시를 타면 될 일 아닌가 싶지만, (이제는 왜 그랬나 싶지만) 그 당시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회사일에 (쥐꼬리만한 내 월급=)사비를 쓴다는 건 생각도 안 했다. 기본 요금 거리의 택시비를 법카로 긁는 건 더더욱 생각조차 못 했고.


태양이라는 이 거대한 자연의 조명, 온몸을 달아오르게 하는 한여름의 뜨거운 온도. 흥건한 땀이 만들어내는 습도. 완벽한 불쾌지수 100% 이조온습. 거기에 8차선 도로에 꽉 찬 차들이 내뿜는 매연에, 4계절 공사의 나라답게 끊임없이 등장하는 공사판 흙먼지까지.


잠시 가로수 그늘에 서서 더운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좋을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고개를 들어 올렸을 ,  완벽한 하늘을 봤다. 어쩌면 종종 봤을 테지만, 그때 처음으로 진짜 봤다.  오늘 너에게 싱그럽다는  뭔지 보여주겠다 작정한 듯한 그런 풍경. 완벽한 싱그러움. 완벽한 상쾌함. 완벽한 아름다움. 완벽한 힐링. 남의 고통일랑 상관도 없다는  천진난만한 표정의 완벽한 하늘이었다.


와, 지금 내 한 몸 걸어가기도 너무 힘든데, 하늘은 이렇다고?


‘그래. 힘들 땐 멋진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며 쉬어가는 여유를 가지자! 읏-쌰!’ 그런 청춘 드라마 같은 마음이었다면 좀 더 아름다웠겠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현실은 원래 그렇지 않으니까. 더 짜증이 났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커다란 창이 난 고층 건물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 에어컨 바람을 쐬며, 아 오늘 하늘 되게 예쁘네, 감탄이나 하고 있겠지.


그런데 그런 상상을 하고 나니 하늘이 꽤 좋아지는 거다.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듯한 열기에, 매캐한 매연과 공사판 먼지로 가득한, 찝찝한 땀으로 흥건한, 가야 할 길이 아직 한참 남은 현실만 현실인 줄 알았는데 미처 보지 못한 어딘가에 비현실적일 만큼 완벽한 현실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이 완벽한 하늘은 힘들 때도, 힘이 안들 때도, 기분 좋을 때도,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어느 순간에도 내 머리 위에 있었다. 그리고 모두의 머리 위에 늘 똑같이 있었다. 물론 폭우가 쏟아지고 태풍이 몰아치는 날의 하늘도 어느 순간 누구에게나 늘 똑같이 주어지겠지.


그게 좋았다. 하늘은 모두에게 늘 공평하다는 걸 알게된 날, 그때부터 하늘을 자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늘은

 어느 날에도 별다른 힌트가 되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그랬다. 내 기억에 하늘이 유난히 예뻤던 영화나 드라마로 남아있는 건 멜로 같은 게 아니다. 영화 ‘시카리오’는 정말 말도 안 되게 끝내주는 하늘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끝내주는 하늘 아래서 갑자기 썩어가는 수십 구의 시체들이 쏟아지고, 폭탄이 터지고, 무차별 총질이 난무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 ‘덩케르크’의 하늘은 또 얼마나 청량했는지. 영화 ‘노예 12년’에서는 노예들이 일하는 목화밭과 그 뒤의 하늘이 얼마나 눈부셨는지 기억할까. 노예 제도의 참상을 깨닫기는커녕 하마터면 저리로 여행이나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뻔했다. 모든 막막한 일은 그렇게 표현할 길 없이 아름다운 장면 속에서 벌어졌다. 어느 드라마 속 장례식 장면도 기억난다. 길게 늘어진 장례 행렬 뒤로 보이는 맑은 하늘과 흐드러진 나뭇잎과 햇빛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꼭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게 아니라 탄생을 축복하는 거리 같았다. 하지만 죽기 좋은 날도, 태어나기 좋은 날도 없으니까.


하늘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전혀 다른 수십억 개의 일들은 언제나 똑같은 하늘 아래서 생겨난다. 한없이 맑고 티 없는 하늘을 보며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창밖의 스산한 하늘에 괜히 불길한 기분을 떨칠 수 없지만, 사실 하늘은 어느 날에도 별다른 힌트가 되지 못하는 거다.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 누군가는 사람을 해치기도 하고, 음산한 하늘 아래서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하늘은 모든 일에 똑같다. 하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다. 그 사실이 왠지 힘이 됐다.


하늘뿐 아니라 모든 자연이 그렇기도 하다. 그래서 하늘이 좋아서 하늘을 생각하다가, 바다를 생각하다가, 바람을 생각하다가, 나무를 생각하다가, 그런 모든 것들을 자주 생각하고 보다가 찍기 시작했다. 기분 좋을 때도 보고, 기분이 안 좋을 때도 보고, 시간이 없을 때는 생각나면 종종 보고, 시간이 많을 때는 작정하고 찾아다니며 보고 찍었다. 고개 한 번 꺾으면 내 주변에 늘 이렇게 비현실적인 현실이 있는 게 좋았다. 지금도 좋다고 생각한다.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자주 둘러보다 보면 종종 완벽하게 아름다운 장면을 보게 된다. 보게 되기보다는 찾게 된다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정말 별로인 날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별로인 장소라 생각했는데 그 속에서 꽤 괜찮은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오늘도, 이곳도 꽤 나쁘지만은 않구나,라는 생각이 아주 잠시 짧게라도 든다. 그게 나를 대단히 긍정적인 사람으로까지는 만들어 주지 못하더라도, 아주 조금은 기분 좋아지는 방법을 스스로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처럼.


그렇게 수수숲이 시작됐다. 일상에서는 일상대로, 여행에서는 여행대로 주어지는 장면 속에서 각자가 볼 수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모두가 다 챙겨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게 아주 일상적인, 하지만 대단한 기분좋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결국 우리는 우리가 보는 걸 보게 되어 있으니까.



[ 수수숲 @soosoo.soop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