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 듯 닿지 않는 지붕들 사이에서
높은 곳에 올라 뷰파인더로 서울을 내려다볼 때마다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프레임 속 세상은 숨 막힐 듯 빽빽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앞집의 창문, 층층이 겹쳐진 옥상들,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선 삶들.
위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이웃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울 정도로 가까이 붙어살고 있다.
1미터의 거리, 100마일의 마음
하지만 카메라를 내려놓고 현실의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 물리적 거리는 무색해진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을 자고 밥을 먹지만, 우리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낯선 눈동자가 어색해 황급히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리는 도시. 우리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둥지 안에 함께 살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철저히 혼자다. 사진 속 저 빽빽한 지붕의 밀도만큼, 우리의 관계도 촘촘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박 한 통의 기억
셔터를 누르다 문득, 내가 뛰어놀던 그 시절의 '산동네' 풍경이 겹쳐 보였다. 지금보다 집은 더 허름했고 골목은 좁았지만, 마음의 평수는 지금보다 훨씬 넓었던 시절.
여름밤이면 약속이나 한 듯 골목 평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것 좀 먹어봐" 하며 투박하게 썰어 내온 수박 한 통에 온 동네의 더위가 식곤 했다. 김장철이면 그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쌈짓돈을 모아 배추를 절이고, 서로의 입에 막 버무린 김치를 넣어주던 붉은 손길들.
그때 우리는 '옆집 사람'이 아니라 '식구'에 가까웠다. 반찬 그릇이 담장을 넘나들 때마다 정도 함께 넘나들던, 가난했지만 외롭지는 않았던 날들.
다시, 인사를 건네다
물론 안다. 그 시절의 낭만만을 고집하기엔, 우리는 너무 바쁘고 개인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걸. 서울은 여전히 차갑고, 함부로 곁을 내주기엔 조심스러운 도시다.
하지만 흑백의 사진 속, 저렇게나 꼭 붙어 있는 지붕들을 보고 있자니 작은 다짐 하나가 생긴다.
거창한 나눔이나 김장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혹은 골목 어귀에서 마주칠 때. 피하지 않고 옅은 미소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이 빽빽하고 차가운 도시의 온도를 1도쯤 올리는 건, 어쩌면 그 가벼운 인사 한 마디면 충분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