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덕꾸러기가 된 평화의 상징, 어쩌면 도시를 지키는 수호자일지도 모른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 잿빛 도시의 배경 위로 우뚝 솟은 가로등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꼭대기 위태로운 자리에 비둘기 한 마리가 조각상처럼 앉아 있었다. 그 순간, 잊고 지냈던 옛 기억 속의 촬영 여행 중 한 장면이 겹쳐 보였다. 바로 마을 어귀를 지키던 '솟대'였다.
아주 오랜 옛날, 삼한시대에는 신성한 공간인 '소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 높은 장대를 세우고 북과 방울을 매달아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그것이 솟대의 기원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유력하다. 긴 장대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통로였고, 그 끝에 앉은 나무 새(주로 오리나 기러기)는 인간의 간절한 소망을 하늘에 전하는 전령사이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지켜주는 수호신이었다.
현대의 도시에선 나무 장대 대신 차가운 금속의 가로등과 전봇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는 나무 새 대신 살아있는 비둘기가 앉아 세상을 내려다본다. 묘하게 닮은 꼴인 이 풍경이 퍽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과거 '평화의 상징'이라 불리며 환영받던 비둘기는 이제 도시의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닭둘기'라는 오명 속에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존재, 피해 다녀야 할 부랑자 취급을 받곤 한다. 솟대 위의 새가 경외의 대상이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처지다.
하지만 저 높은 곳에서 미동도 없이 앉아있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엉뚱하고도 유쾌한 상상 하나가 스쳤다. 어쩌면 저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 도시를 지키고 있는 건 아닐까? 옛날 솟대가 마을의 액운을 막아주었듯, 매연과 소음으로 가득 찬 도시의 혼탁함을 저들 나름의 방식으로 정화하려 애쓰는 '도시의 수호자'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상상 말이다.
길을 걷다 보면 종종 따가운 시선을 감내하며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캣맘들을 마주친다. 그리고 드물게는 비둘기에게 모이를 나눠주는 이들도 있다. 누군가는 그 행동을 비난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모습에서 아주 작은 '틈'을 본다. 삭막한 도시에서 나 아닌 다른 생명과 공존하고자 하는, 함께 살아가 보자는 아주 작은 염원의 틈새를.
가로등 위의 비둘기가 정말 도시의 솟대 역할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저 회색빛 새를 향해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을 품어본다. 어쩌면 녀석은 저 높은 곳에서 우리에게 무언의 안부를 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팍팍한 도시의 삶 속에서도 부디 평안하라고, 서로에게 조금만 더 곁을 내어주며 살아가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