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봅니다

우리가 잊고 지내는 머리 위의 계절

by MOYA


하늘을 봅니다.


내 사진의 첫 시작은 고3 봄,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가난과 복잡한 집안 사정으로 남들보다 한참 늦게 미대 입시를 알아보던 때였다. 상담을 가는 학원마다 “미대 준비는 더 일찍 시작했어야 했다”며 난색을 표했고, 막연하게 품었던 꿈이 조각조각 부서져 내리던 시기였다.


거울매장앞 거울에 비친 하늘


그때 나보다 먼저 사진을 하고 있던 예체능반 친구가 툭 던진 한마디가 나를 이끌었다. “너는 그림을 잘 그리니, 지금부터라도 사진을 시작해 보는 건 어때?”


그 길로 무작정 친구가 다니던 사진 작업실을 찾아갔다. 열심히 하면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나는 미술과 그리 멀지 않은 ‘사진’을 붙잡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작업실에서 처음 받은 ‘코닥 T-MAX 400’ 필름 한 롤이 내 인생의 첫 셔터가 되었고, 어느덧 상업 사진으로 밥벌이를 하는 지금까지 20년 넘게 카메라를 놓지 않고 있다.

회사앞 건물에 비친 하늘


처음 필름을 받아 들고 낡은 수동 카메라를 쥐었을 때, 무엇부터 찍어야 할지 몰랐던 열아홉의 나는 주구장창 하늘만 찍어댔다. 지금 와서 그때의 옛 필름들을 꺼내 보면, 의미 없이 찍힌 하늘 사진이 참 많기도 하다.


문득 고3 그날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갈 때면, 나는 여전히 습관처럼 하늘을 담곤 한다. 지하 스튜디오에서 반짝거리는 인공 조명 아래 갇혀 있다 보니, 몸이 본능적으로 탁 트인 곳을 찾아 카메라를 돌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등산로의 굴뚝과 구름


차가운 도시의 빌딩 숲 사이에서 그나마 마음 놓고 하늘을 보는 순간, 그 찰나가 어쩌면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유일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들었던 “바쁘고 힘들 때일수록 하늘을 자주 보세요”라는 말을, 나는 렌즈를 통해서나마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늘은 이유가 있어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보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평일 상업 사진 전선에 서 있는 내가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늘을 올려다볼까 생각해보면 처참하기 그지없다. 아마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사정이 비슷하겠지.


어느 등산로 꼭대기의 어떤 풍경


여전히 나는 종종 하늘을 찍는다 20년 전 막막했던 소년에게 하늘이 유일한 해방구였듯,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도 하늘은 변함없는 위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뷰파인더 속 사각의 프레임 안에서, 하늘은 누구의 것도 아닌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오늘 하루가 너무 무겁다면, 당신도 잠시 고개를 들어보길. 그곳에 꽤 괜찮은 위로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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