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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화 Jul 24. 2020

남편에게도 방학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니는 형부가 언니를 아기 다루듯 잘해주잖아."

동생의 시선엔 내가 남편한테 사랑받고 사는 모습이 그렇게 비쳤나 보다.


남편은 동생과 친하게 지내는 언니 소개로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의경이었다. 대학교에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의경 복무를 하던 중이었다. 스포츠머리에 숫기가 없었던 그와의 첫 만남은 사실 뜨뜻미지근했었다. 두 번째 만나면서 순수함에 끌렸고 세 번째 네 번째 만남이 이어지면서 진실하고 착한 심성에 더 끌리게 되었다. 그렇게 둘이 손을 잡고 그 소개해 준 언니와 동생 앞에 떡하니 나타났었다.

우리가 돌아간 뒤 소개해준 언니가 동생한테 하는 말이

"쟤들은 친구로 지내라고 소개해줬더니 벌써 사귀는 거야?"

금방 친해져서 손을 붙잡고 나타났으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알아가기에 바빴다. 의경은 휴가 나올 때만 만날 수 있기에 그 시간이 귀하고도 아쉬운 시간이었다. 가끔 만날 수밖에 없어서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다. 아니 이 남자는 친절한 것도 모자라서 편지는 왜 이렇게 잘 쓰는지, 글씨는 또 왜 그렇게 잘 쓰는지. 서로를 알아가게 되면서 친근함이 형성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는 제대하게 되었다. 복학하기 전까지 몇 개월의 시간이 있어 일자리를 구하더니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신문 배달, 식당 서빙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참 믿음직스러웠고 멋있었다. 책임감, 생활력 있는 모습이 든든했다. 본인의 삶은 본인이 책임지고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이 그 시절엔 내게 큰 부분이었다. 무책임했던 아버지를 보며 살아왔기에 그의 그런 모습은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그는 복학하게 된다. 한 학기가 끝난 후 그의 아버지께서(지금은 시아버지) 결혼을 제안하셨다. 아직 학부생인데 왜 그런 제안을 하셨지? 지금도 의문스러운 부분으로 남아있다. 우리들은 서로 사랑했으니 아버님의 뜻을 따랐다. 갑자기 상견례를 한 후 결혼식을 준비하게 되었다. 학부생이니만큼 모든 것을 소박하게 준비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남편의 자취방에서 우리의 신혼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그는 대학생이면서 얼떨결에 가장이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다. 나 또한 한복 의상실에 취직했고 결혼생활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덜컥 결혼하여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편은 젊음을 불태우며 놀아본 적도 없이 학생인 상태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버렸다. 결혼 후 이듬해 5월 첫 아이가 태어났다. 남편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고 시댁에서 경제적 도움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던 남편은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학업을 그만두고 취업의 전선에 뛰어든다. 약 20여 년 전에 그렇게 들어간 회사에서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어느 날 남편이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너는 한 번도 달리는 기차에서 내려본 적이 없잖아."

그 말을 들었던 남편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곱씹어 보니 본인의 인생이 뭔가 처량해 보였나 보다. 그 말을 듣고 가장 가슴 아팠던 사람은 나였다.

너무 힘들었던 사람을 만나 21년의 결혼생활 동안 끊임없이 배려해주고 보듬어주며 경제적인 부분까지 부족함 없이 채워주기만 했으니 지칠 때도 된 것이다. 아니 오래 버텨준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자기야, 회사 당장 그만둬. 할 만큼 했어. 충분해. 이제부터 내가 다 책임질게.'였지만 나는 남편보다 돈을 더 벌어올 자신이 없었다. 그저 들어주는 것이 전부였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이런 무능한 내가 싫어서 남편에게 미안하고 미안했다.


남편이 혼자 있고 싶다며 휴가를 냈다. 진심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지쳤던 마음을 추스르기를 원했다.


연애 시절부터 쉼 없이 달리기만 했던 남편.

변함없이 사랑해주고 아껴줬던 남편.

언제나 가족이 우선이었던 남편.

늘 양보만 해주던 남편.


떨쳐버리지 못한 우울증에 시달리느라 천사 같은 남편의 마음을 돌보지 못했던 나.

두 아들 키우느라 정신없다는 핑계로 남편의 마음을 돌보지 못했던 바보 같았던 나.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남편이었는데 더 늦기 전에 남편의 마음을 챙겨야 했다. 진정으로, 달리는 기차에서 한 번도 내려본 적이 없는 남편이 한없이 애처로워 보였다. 결혼해서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나는 충만했었는데 그 충만함은 남편의 희생과 사랑의 결정체였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지 못했다. 남편이 지쳐버린 것이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아 더 괴롭고 마음이 아팠다. 가장으로 살게 하는 것도 모자라 원 가족으로부터 가져온 우울증을 결혼생활 내내 달고 살면서 징징거렸던 나를 챙겨달라고만 한 것 같아 한없이 미안했다.


남편을 너무 힘들게 했다는 죄책감에 남편이 휴가 가고 없는 동안 눈물이 흘렀다.

'난 참 나빴었구나. 난 참 못됐었구나.'

남편이 돌아오면 남편이 나를 사랑해 줬던 것보다 내가 훨씬 더 많이 남편을 사랑해줄 것이다.


돌아온 남편이 하는 말이

"쉬면서 좋은 곳을 자꾸 가고 싶더라고.  그런 거 보니 내가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정말 잘 쉬다가 왔어. 나름 만족해."

잘 쉬고 와준 남편이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사실 가슴이 철렁했었는데 무엇보다도 정말 잘 쉬다가 왔다는 남편한테 뽀뽀를 백번도 더 해주고 싶었다. 나는 남편이 휴가 다녀온 이후로 곁에 더 붙어 있었고, 더 혀가 짧아졌다.


달리는 기차에서 내려 쉴 수 있게 남편에게도 방학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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