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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화 Aug 07. 2020

춤 테라피

마음 챙김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독서만 해도 좋은 시간이었을 텐데 돌이켜 보면 끊임없이 뭔가를 찾아 헤매었다. 집에 조용히 머물러 있으면 불안해서 또 다른 해야 할 것을 찾아다니곤 했다. 늘 내면의 치유를 추구하며 오늘보다 더 괜찮은 내일을 위해 바쁘게 지내려 애썼다. 뭔가에 빠지게 되면, 나를 괴롭히는 여러 가지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아도 되기에. 그래서 늘 끊임없이 움직이고만 싶었다.


"괜찮은 강좌가 있어. 같이 해보지 않을래? 네가 바로 떠올랐어."

친한 언니는 그 강좌의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오더니 내가 떠올랐나 보다. 아마도 언니가 바라본 나는, 치유가 필요해 보인 모양이었다. 요가를 해볼까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춤 테라피라고 하니, 운동 겸 춤도 배우고 치유도 할 겸 잘 됐다 싶어 고민해본 후 수락했다. 그렇게 코로나로 실내 수업이 불가능해 거리 두기 하면서 할 수 있는 '춤 테라피'라는 야외수업을 하게 되었다.

춤 테라피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몸짓으로 내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움직임과 동작을 말한다. 나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나만의 움직임, 리듬, 소리를 자유로이 표현하면서 타인에 대한 시선이나 기준을 의식하지 않고, 어색함을 넘어 나의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출처] http://blog.daum.net/ksanss/16143532


아이솔레이션(isolation)이란

신체의 분리 운동으로 몸의 일부분으로부터 일부분으로 독립된 동작, 몸의 일부분을 움직이기 시작하여 전체를 움직이는 동작, 춤을 추기 위한 가장 기본기를 말한다.                                      

[출처] 댄스 아이솔레이션(dance isolation)과 스트레칭의 효과



드디어 첫 수업에 참여했다. 코로나로 시청에서 직원이 직접 파견 나와 체온과 마스크 착용 여부를 점검해주셨다. 초록이 무성한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곳,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그날따라 하늘빛은 얼마나 곱고 선명하던지 첫 수업을 하늘도 응원해주는 듯했다. 나무 그늘 잔디밭에는 중년의 여성들이 모여 있었다. 10명의 수강생은 동그랗게 큰 원을 그리며 색색의 천을 펼쳐서 깔아 놓은 후에 그곳에 앉았다. 선생님은 첫인사를 하신 후 자기소개, 자연으로 닉네임 짓기, 그 자연 이름에 맞는 춤 고안하기, 그 춤을 표현해보기라는 미션을 주셨다. 자신이 고안한 춤을 표현하면서 타인의 닉네임을 부르며 지명하면 그 지명받은 자가 본인의 춤을 표현하고 지명할 타인의 춤을 다시 표현하면서 또 타인을 지명한다. 그렇게 릴레이 형식으로 몇 바퀴를 돌고 나면 그것만으로도 숨이 헐떡거리고 땀이 났다. 나의 닉네임은 '나무'이고 다른 분들의 닉네임은 '바람', '구름', '꿀단지', '꽃무릇' 외 다양했다.


부담스러움 속에서 통나무 같은 몸으로 자연의 느낌을 따라 표현해보고.

음악에 다시 맞춰 느낌을 따라가 보고,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도전해보는 몸짓.

그 몸짓은 자연, 음악과 함께 흐르고 땀에 흠뻑 젖은 옷과 젖은 머리카락, 땀으로 젖은 얼굴.


모두의 상기된 표정만큼은 생기가 돌고 있었다.

 

그렇게 몸풀기가 끝난 후 선생님은 춤의 기본 동작인 '아이솔레이션'이라는 춤에 대하여 설명해 주셨다. 목, 어깨, 가슴, 골반 순서로 각각 따로 분리해서 추는 춤이면서 다시 그 동작을 연결해서 추는 춤으로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따라 해 보았다. 목, 어깨를 지나 가슴과 골반 부분에서 통나무가 되었다.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것이 도통 웨이브가 되지 않았다. 내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통째로 움직여졌다. 통나무처럼 뻣뻣한 것이 웨이브는 도저히 내 영역이 아니었다. 비단 나만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곳에 온 모든 분이 그러했다. 그것만으로도 폭소를 자아냈다.


한바탕 몸을 움직이고 나서 잔디밭에 누웠다. 하늘을 보며 명상시간을 가졌다. 자연 위에 누워서 바라본 하늘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격렬한 움직임 뒤에 찾아온 고요함. 흘러가는 흰 구름. 바람에 흔들리며 나무 끝에 달린 초록 잎들. 자연으로부터 생기를 얻는다. 명상시간이 끝나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돌아가면서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저마다 뿌듯한 마음으로 첫 수업의 강렬한 느낌들을 꺼내놓으셨다. 자연 속에서 바람을 타고 오는 나무 향기, 풀향기를 맡으며 춤을 춘다는 것은 마음에 새 바람을 불어 다 준 색다른 체험이었다.


다시 두 번째 수업, 주제는 '용서'였다. 자연의 이름을 불러주고 춤을 추며 몸을 푼 다음 아프리카의 춤을 각각 돌아가며 생각나는 대로 표현해보는 새로운 시간이었다. 그 춤을 돌아가며 춰 보고 다시 음악에 맞춰서 춰 보았다. 이어서 지난 시간에 배웠던 아이솔레이션을 하는 시간. 몸이 따라주지 않는 시간이었으나 어떻게 해서든 그 웨이브를 만들어 보려고 애썼다. 선생님은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춤의 기본이 되어있을 거라고 하셨다. 


한바탕 춤을 추고 난 후 선생님은 줄에 걸려있던 실크 천을 하나씩 들고 각자 천천히 움직이며 자유롭게 표현해 보라고 하셨다. 온몸으로 천을 하늘에 날려도 보고 흔들어도 보고, 모두는 살풀이춤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음악 또한 춤과 어우러져서 감정은 이미 차분한 상태로 젖어들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멈춘 다음 누워보라고, 그리고 천으로 얼굴을 가리며 덮으라고 했다. 선생님은 누운 곳이 관이라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곳이 관이라 생각하니 실크 천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나무는 보일 듯 말 듯 희미했다. 알 수 없던 인생길, 그 길을 걸어왔고 지금 이 순간이 생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상상하니 먹먹했.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해야 할 과업이 남아 있는데. 복잡한 감정 속에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누워있다가 일어나 다시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돌아가면서 그날의 소감, '용서'와 관련하여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각자의 삶 속에서 풀리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힘들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수용할 수 있음으로 방향이 바뀐 듯했다. 나는 여전히 용서가 참 어려운 일이라고, 그런데 내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이 오만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춤 테라피 수업은 긍정의 마음을 갖게 했다. 그렇게 자신들의 내면을 표현하며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으로 수업이 마무리되었다.


수업 장소는 잔디밭이다. 잔디밭에 나무 그늘이 있지만 맑은 날에는 그늘의 범위가 작아서 햇빛을 피해 근처의 소나무 숲에서 했고 흐린 날에는 잔디밭에서 했다. 세 번째 수업은 흐려서 잔디밭에서 했다. 잔디밭에는 개미가 많아서 발을 타고 올라와 돌아다녔다. 개미와 함께 그날의 수업을 시작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이 되어 온몸으로 표현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마무리 춤은 아이솔레이션으로 하고 다시 앉아서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돌아가면서 소감을 말하는데 어느 분께서 "아까 누워있을 때 감정이 북받쳤어요. 나는 왜 내 인생이 없을까. 먹고 사느라 바빠 여유 없이 살아온 지나간 세월이 생각나 눈물이 났어요." 생업을 뒤로하고 그날 하루만큼은 오로지 자신만의 시간이 되어 그렇게 춤으로 치유하면서 울컥해지신 것이다.


또 다른 분은

"제가요, 예전에는 느낌이 좋으면 하루에 시를 열 편씩 썼었는데 요즘에는 하루에 한 편도 못 쓰고 있어요. 그런데 오늘은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제목은 '개미의 애무'에요. 오늘 써서 단체 이야기방에 올릴게요."

모두 한바탕 웃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분은 본인이 문학소녀였다며 수줍어하시면서

"오늘 이 시간 덕분에 앞으로 일주일은 너끈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도 갱년기가 지나가고 있는 듯했다. 그분의 색다른 나눔이 재미있으면서도 뭔가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다.


몇 번의 '춤 테라피' 수업은 분명 막혔던 에너지를 뚫어준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또한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모두, 그리고 나에게 바란다. 이 수업을 통하여 얻은 생기로 계속 움직이기를. 부디 그 생기를 잃지 않고 삶 속에 고이 간직하기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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