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살았다고 하면, 다른 지방 출신의 일본인들이 꼭 묻는다. 힘들지 않았냐고. 처음엔 무슨 뜻으로 묻는지 몰랐다.
교토는 헤이안 시대(794년~1185년) 약 400년 간 일본의 수도로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후 가마쿠라 막부→무로마치 막부→에도 막부가 들어서면서 실질적 권력은 이동되었지만, 형식적 수도는 교토로 간주되었다. 교토는 ‘천 년의 수도’ 라 불리며 일본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인지 교토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자부심이 크다. 그리고 예절과 품위를 중시한다. 그런 점이 말투나 태도로 드러나서 타 지역 사람들에게는 냉정하거나 배타적인 느낌을 준다고 한다. 대화할 때도 직접적인 표현을 삼가고 에둘러 말하는 경향이 있어서 본심을 알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다른 일본인들이 느끼는 그런 어려움을 느낄 능력 자체가 없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언어가 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본은 교토가 처음이라 비교 대상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때는 행동반경이 좁아서 이웃들과 보육원 선생님들, 학부모, 일본어 학교 선생님들이 그나마 가깝게 지내는 일본인들의 전부였다. 게다가 우리 이웃들은 냉정하거나 배타적이기는커녕 너무 잘해줘서 탈일 지경이었다.
가장 가깝게 지낸 이웃은 묘지 건넛집의 반노 씨 부부였다. 50대로 보였고, 노모와 20대의 차남 그리고 미사 짱이라는 시베리안 허스키와 함께 사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장남은 닌텐도에 다닌다며 자랑스러워하셨다.
남편이 홀로 묘지 옆집에서 지냈던 며칠간, 밤마다 여자의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려서 동네에 귀신이나 정신질환자가 있는 줄 알고 정말 무서웠단다. 며칠 뒤 반노 씨 부인이 음식을 들고 찾아와서, 남편 분의 장애에 대한 얘기를 하셨는데, 겸사겸사 비명 소리에 대해 물었더니 “우리 집 개예요”라며 미안해하시더라고.
남편 분은 키가 훤칠하고 훈남이셨다. 일본 대기업의 간부로 독일에서 수년간 근무해서 독일어와 영어도 하셨다는데, 몇 년 전 큰 교통사고로 언어 중추에 후유증이 남아서 말씀이 어눌하고 엉뚱한 단어를 쓰실 때가 있었다. 예를 들면, 비가 내리는 것을 ‘하늘에서 물이 온다’ 같은 식이다.
부인은 늘 쾌활하고 활달했다. 내가 전이나 김밥 같은 걸 드리면 꼭 답례로 맛있는 음식을 주셨고, “내 교토 사투리를 배우면 안 되는데”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때 교토 사투리를 배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좀 고급스러운 척하면서 주변을 웃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반노 씨는 까마귀 박사였다. 쓰레기 수거가 있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이면 쓰레기 더미가 쌓인 건너편에 의자를 두고 앉아서 계속 감시활동을 하셨다. 그 덕에 까마귀의 습성에 대해서 여러 가지 관찰한 바를 설파하시곤 했다. 남편은 그런 반노 씨를 좋아했다. 쓰레기 수거날이면 그 옆에 서서 두어 시간 함께 수다를 떨었다. 자기와 일본어 수준이 잘 맞는 것 같다며 말이다.
아마도 외국생활 경험이 있어서 우리를 더 각별히 챙겨주셨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살기 전에는 미국인 가족이 우리 집에 살았었다며, 아기를 봐줄 테니 둘이서 데이트도 하고 오라고 하셨다. 그 미국인 가족은 종종 그랬나 본데 우리는 왠지 그럴 용기가 나질 않았다.
반노 씨 부부는 테니스를 즐겨 쳤다. 집 앞의 길 건너편에 학교 소유의 테니스 코트가 있었고 거의 매주 일요일이면 테니스 친구들이 반노 씨 집에 모여 팟럭 파티와 함께 테니스 경기를 했다. 우리도 가끔 불러주셨는데, 안 되는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 가며 좌불안석이었던 기억이 있다.
반노 씨의 또 다른 취미는 채소 가꾸기였다. 묘지 담벼락 아래에 플랜터를 죽 줄지어 놓고 파, 피망 등의 야채를 심어 가꾸셨다. 가끔 수확을 해 가져다주시면서 맘대로 따다 먹으라고 하셨지만 그런 염치없는 짓은 하지 못했다.
첫 해 10월 25일, 기타노텐만구(北野天満宮)라는 신사가 근처에 있다며 차로 데려다주셨다. 경내에는 소가 앉아 있는 동상이 있는데 소의 머리를 만지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해서 열심히 만졌다. 이 신사는 학문의 신사로 유명하여 입시철이면 수험생들과 학부모 참배객이 많다고 한다. 매달 25일에는 덴진이치(天神市)라는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이었고 유명한 신사도 볼 겸 초대해 주신 것이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본 벼룩시장 중에는 제일 볼거리가 많았다.
살면서도 늘 신세만 지고, 말을 못 해서 감사도 제대로 못 전했는데,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센베츠(餞別)’라고 쓰인 봉투에 2만 엔을 넣어 주셨다. 전근, 퇴직, 이사, 유학 등으로 헤어지는 경우에 금전이나 물품을 전하는 풍습이란 것을 나중에 알았다. 한국에 돌아가 답례로 뭔가를 보내드렸던 것 같다.
반노 씨 댁에 늘 사람들이 붐비는 걸 보면 정말 특이할 정도로 친절하고 좋은 교토인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