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의 3년은 나의 결혼 생활 중 가장 ‘불쌍했던 시기’였다. 살림은 옹색했고, 가꾸지 않아 촌스러웠고, 그냥 모든 게 궁상스러웠다. 그때는 사는 데 정신이 없어서 부정적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어서인지 그런 줄 몰랐다. 얼마나 천만다행인가? 마치 ‘미션 임파서블’ 같았던 날들을 보내면서도 행복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인생은 불가사의해서, 오히려 살만하다.
새내기 엄마였던 나는 천 기저귀를 썼다. 아기 옷과 기저귀 등을 매일 삶았다. 새하얀 기저귀를 2층의 좁은 테라스에 가지런히 널어놓고, 계단 중간쯤에 서서 바라볼 때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나의 자부심이 햇볕을 받으며 바람에 하늘하늘 나부끼는 것 같았다.
모유 수유가 잘 되지 않아 분유를 먹였는데 우유병도 매일 삶았다. 난 부지런하지도, 민첩하지도, 요령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러니 하루가 얼마나 바쁘던지…. 게다가 딸아이는 우유 5ml를 먹는데 30분이 걸렸다. 한번 먹이려면 약 2시간을 먹여야 했다. 생후 1개월 때의 어느 날은 우유를 전혀 먹지 않고 잠만 자서 병원에 달려가기도 했다.
교토에서 3년 간 두 가지 병을 얻었다. 하나는 어깨 결림 및 등골 통증, 또 하나는 창피하지만 치질. ‘등골 빠진다’, ‘등골이 휜다’라는 표현이 어떤 것인지 이때 몸으로 제대로 체험했다. 포대기도 썼지만, 아기띠를 많이 써서 인지 어깨도 많이 결렸다.
그리고 다른 한 병은 찬 바닥에 아기를 앉고 오랜 시간 앉아 있었던 게 원인인 것 같다. 다다미 위에 카펫도 깔았지만 역시 찬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친정 이모가 ‘샤워기 요법’을 알려 줬는데 정말 효과가 좋았다. 요즘은 대부분 워시렛(비데)을 설치해 자동 세정을 하지만 그때는 일반적이지도 않았고 낡은 우리 집에 있을 리 없었다. 샤워기 요법은 수동 세정 요법인 셈이다.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는 집을 보면 명확하다. 묘지 옆 집인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지만, 생활하기는 몹시 불편한 위치에 있었다. 아기가 있는데 차가 없으니 도보 생활권 안에 슈퍼마켓, 병원, 교통 등의 생활 편의 시설이 갖춰진 집을 찾는 게 상식에 맞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학교에서 가깝고 주택가라 조용하고 치안 상태가 좋다며 덜컥 계약을 했다.
사실 이 집은 연구실 직원 소유의 집이었다. 남편이 급한 마음에 그에게 집 문제를 상의했는데 이런저런 조언 끝에 이 집 얘기도 나왔고, 우리는 부동산을 통해 다른 집을 구할 생각도 안 한 채, 묘지만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린 것이다. 덕분에 나는 시내에 쇼핑을 다녀올 때마다 아기를 앞에 메고, 아기 물건을 넣은 배낭을 등에 지고, 양손에는 무거운 쇼핑백을 들고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수 백 미터를 걸어와야 했다. 이런 날은 더 등골이 휘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유모차나 보행기, 장난감 등 필요한 것들이 늘었다. 이웃에 젊은 사람이 없는 동네다 보니 정보를 얻을 만한 곳이 없었다. 하루는 유모차를 사러 시내 백화점에 갔다.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엄마에게 어설픈 일본말로 유모차 판매 코너를 물었다. 유모차를 일본에서는 ‘베비카’라고 하는데 그 단어를 몰라서 아는 단어와 몸짓 언어까지 총동원했다.
그런데 그 엄마 표정이 좋지가 않았다. 우리가 뭔가 실례를 했나 싶어서 인사하고 돌아서려는데 우리를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백화점은 비싸니까 ‘아카짱혼포’라는 아기용품 전문점이 이 근처에 있으니 그곳에 가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유모차 판매 코너 근처에서 그녀를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물어물어 도착한 ‘아카짱혼포’는 아기와 관련된 모든 물건들이 있었고, 저렴했다. 자사 브랜드가 중심인데 물품에 따라서는 다른 유명 브랜드도 있었다. 이후 나는 이곳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남편도 바쁜 가운데 육아를 많이 도와주었다. 아기 목욕이나, 기저귀 애벌빨래, 장보기 등은 거의 남편의 몫이었다. 특히 초기에는 말 못 하는 나를 대신해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남편은 꼼꼼한 성격인데 가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를 때가 있어 평생의 놀림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혼자 일본에 와서 소아과 병원을 수소문할 때의 일이다. 남편도 일상 회화로 고생할 때였다. 대형 몰 근처에서 소아과가 어디에 있는지 사람들에게 물었는데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하더란다. 그중 한 분이 머뭇거리며 슈퍼마켓 안에서 찾아보라고 해서 잘 납득이 안 됐지만 일단 가서 둘러보니 ‘코니카’라는 카메라 필름 현상소가 있더라고.
소아과(小児科)의 일본어 발음은 ‘쇼니카’다. 그런데 한자의 작을 '소' 발음이 ‘코’와 ‘쇼’ 두 가지였는데 남편은 사람들에게 계속 ‘코니카’가 어디 있냐고 물어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것도 혼자 일본에 와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우편함 안에 광고지 같은 것이 잔뜩 들어있길래 고심하다가 쓰레기 통에 버렸단다. 며칠 후 옆집 아주머니가 오셔서 회람이 어쩌고 저쩌고 하시는데 아마도 버린 것이 광고지가 아니고, 우리 집 용을 한 부 빼고 다음 집으로 돌려야 하는 지역 정보지였던 것이다.
이렇게 말도 못 하는 사고뭉치의 새 이웃을 늘 따뜻하게 챙겨주고, 살펴주고, 배려해 준 우리 동네 주민들은 평생의 은인이다. 일본 생활 26년 중 가장 폐를 많이 끼쳤던 분들이라 더욱 각별하게 기억되는 이웃들. 그분들 덕에 우리의 교토 3년 간이 머리에 가슴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깊이 각인될 수 있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