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맘 Feb 16. 2021

푸드트럭, why not?

이천만 원으로 창업전선에 뛰어들다

무슨 일 해요?
- 귤을 팝니다. 추억도 함께요

귤을 팔기 전에는 경력단절 여성들의 창업을 돕는 일을 했다. 어깨너머로 배운 점들이 고스란히 내 안에 스며있었는지, 곧 경력단절이 될지도 모르는 나의 창업을 구상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아이에게 소홀하긴 싫고, 그렇다고 내 안의 속삭임도 마냥 못 들은 체할 수 없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던 중, 뭐라도 시도해보자는 마음으로 은행 대출을 받았다. 나이 서른이 훌쩍 넘었는데도 내 신용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 싶은 금액이었지만, 살면서 처음 만져본 큰돈, 이천만 원.

사진 하는 남편과 스튜디오로 쓸만한 공간을 찾아다녀도 이천만 원으로는 권리금도 부족했고 카페라도 해볼까 싶어 남편네 귤밭 옆에 작은 창고를 리모델링하려 해도 그 돈으로는 택도 없었다. 방법이 없을까 하던 때, 문득 푸드트럭! 생각이 났다. 그러고는 뭐에 홀렸는지 다음날 바로 푸드트럭 업체와 미팅을 잡고, 그 자리에서 계약금을 지불해버렸다. 사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사실 후회도 했다. 저지르고 보니 고려해야 했던 수많은 문제들이 떠올랐고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몰려들었다.
‘애는? 애는 어떻게 해 누가 봐?’

-내가 업고 할게

‘차도 없으면서 어떻게 할 건데?’

-푸드트럭이잖아 어떻게든 끌고 가볼게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울 텐데 어쩌려고 그래?’

-더우면 선풍기, 추우면 난로
‘애는 무슨 죄야. 그냥 애나 볼 것이지’

-애 보려고 하는 짓이야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의 오만가지 걱정을 떠안고, 제작 의뢰한 푸드트럭이 도착했다. ‘이게 뭐야’ 생각했던 것보다 차는 훨씬 작았고, 심지어 시동은 걸리지만 시속 30킬로도 나오지 않아 도로에는 올릴 수도 없었다. 기존 우리나라에서 많이들 하는 다마스나 트럭을 개조한 게 아니라, 철판으로 박스를 만들고 그 안에 핸들 등의 자동차 부품을 달아놓은, 그야말로 푸드트럭이라 볼 수도 없는 2평 남짓 허접한 철판.

차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어댔다. 이게 뭐냐 아들내미 장난감이냐- 이거 가지고 뭘 한다고 그러냐.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여러 번 났지만 꾹 참고 쓸고 닦고 나름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건 아니지만..’, ‘아.. 제가 그땐 잠시 미쳤었나 봐요 하하..’ 괜히 내가 저지른 일이 부끄러워진 나는 이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내가 미쳤지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냥 맘 편히 애나 키울 걸.. 하며 자책도 후회도 많았지만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GRAND OPEN!


​하나씩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공간을 채우다 보니, 철판은 어느새 나를 위한 방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소 안에서 나는 가만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새소리를 듣고, 바람을 맞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 돈도 자존심도 부차적인 게 된 것이다. 새로 시작한 이 일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던 남편에게 딱 금토일 삼일 간, 12시부터 5시까지만 나를 위한 시간을 달라며, 아니! 나 그런 시간 가져야겠다며 투쟁한 끝에 공식적인 나만의 시간을 나만의 공간에서 보낼 수 있게 됐다.

​메뉴는 감귤을 활용한 음료 서너 가지, 그리고 귤. 사람이 지나가면 반갑게 맞이하고, 사람이 없을 땐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나만의 방이 지금은 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공간이 되었다. 금토일이면 도로를 가득 메울 만큼 차들이 나만의 방을 찾아온다. 이렇게나 좋아해 줄 일인가.. 싶어 의아하던 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귤을 사러 왔는데 추억을 담아주시네요’
지난 몇 달간의 마음고생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결코 내가 이상하기만 했던 건 아니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 좀 더 확신이 생겼다. 나에게 있어 의미 있는 성취는 타인이 원하는 걸 내가 해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낸 길을 따라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았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숱한 장애물들을 만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해냈을 때라야 비로소 ‘의미’ 있는 성취로 각인되는 것이 아닐까.

사실 개복치 과인 나는 지나가던 사람이 툭 뱉은 침에도 침독이 오를 만큼 예민하기 때문에 타인의 평가는 쥐약이다. 그런 이유에서 포기하고 탓하고 또 후회하는 일들도 참 많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해서 후회하더라도 일단 하자고-


Why not?
요즘 가장 좋아하는 단어다. 내 앞에 새로운 길이 펼쳐질 때면 주저 없이 미국 제스처와 함께 ‘why not~?’을 외치는 내가 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