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건 글이 아닐까.
얼마 전 아이에게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던 날. 피치 못할(?) 상황에 맞닥뜨릴 때면 휴대폰 화면을 흑백 버전으로 바꿔가며 엄마로서의 죄책감을 덜어보곤 하는데, 한 번은 영상을 보여주고 다시 바꾸기가 귀찮아 그대로 쓰게 된 날의 이야기다. 급하게 은행 앱을 사용할 일이 있어 잠금화면을 해제했는데 순간, 아이콘들이 너무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 카카오 뱅크가 이 폴더에 들어있었는데 어디 있더라?’ 하며 여기저기 열어가며 아이콘 찾는데만 한참 애를 먹었다. 그때야 내가 글자가 아닌 색깔로 어플을 찾아왔구나. 눈으로 보고 읽은 글자를 뇌로 보내 이해하는 게 아니라, 시각적인 이미지가 이해를 건너뛰고 즉각 판단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시스템인가. 한 때 sns계를 주름잡던 페이스북이나 블로그가 주춤하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로 옮겨가게 된 데에도 영향이 있는 걸까? 하며 혼자서 이상한 논리를 펼쳐보았다. 바쁜 현대인들 맞춤으로 나날이 발전하는 디지털이지만, 언제나 시대를 뒤늦게 뒤쫓아가는 나로서는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도 보태가면서 말이다.
그런데 정작 장사를 시작해보니,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홍보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미지가 내리 꽂히는 힘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일단 보이는 것이 호감이어야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다! 는 일차원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조금이라도 더 예뻐 보이게 사진을 찍는다. 거기에다 흔히들 인스타 감성이라 부르는 감성 가득한 영상들을 게시하며 사실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살고 있다. 근데 6개월 정도 그런 방식으로 sns 계정을 운영하다 보니 문득 회의감이 드는 것이다. ‘이게 맞나..? 일회성으로 잠깐 하고 말 장사가 아닌데 이렇게 해서 계속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얕은데서부터 시작된 걱정과 함께, 지금 나아가는 방향이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과 나란한지 하나하나 대조해보는 것까지 생각이 불어났다.
블로그는 이미 돈을 주고받으며 사고파는 상업적 글로 가득하다.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로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면 할수록 관련 해시태그 인기 게시물의 상단을 독점할 수 있는 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남편 말로는 무슨 알고리즘이 있다고 하는데 그 절차가 꽤나 까다롭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돈을 들일수록 힘은 덜어지는 시스템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돈으로 매수한 피드는 단박에 티가 난다. 나 또한 이쪽 업계에서는 초보에 불과하지만, 고객의 입장으로 어디에 방문할 때나 물건을 살 때 그 정도는 가려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 이렇게 돈으로 매수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일 년 내내 정성을 다해 농사를 짓고, 맛 좋은 열매를 수확하고, 공간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사람들이 쌓아가는 추억과 감정의 질, 이런 진심으로 사람들을 붙잡는 홍보는 힘든 걸까. 이런저런 고민의 꼬리는 ‘고객의 시선을 붙잡는 건 시각적 아름다움과 감성의 공략이라고 한다면, 그들의 발걸음을 다시금 찾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등으로 점차 뻗어나갔다. 매력적인 콘텐츠? 꾸준한 노출과 도배? 친절? 정성? 끊임없는 공간의 변화? 등의 질문을 던지며 고객 입장에서 나를 분석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시간을 들여 찾아가는 카페들은 무슨 컨셉을 갖고 있는지, 나는 어디 숙소에 다시 찾아가 머무는지, 식당에 간다면 어떤 식사가 나를 만족케 했는지, 인테리어는 어디가 마음에 들었는지 등. 낯선 곳에서라면 나 또한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홍보, 그리고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는 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워낙 믿을 수 있는 후기나 홍보가 없다 보니 이건 급할 때 쓰는 방법에 불과하고, 시간을 두고 찾아볼 여유가 있을 때엔 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계정에 들어가 사진이든 글이든 몇 개씩이고 클릭하며 읽어보곤 했다. 그러다가 나와 결이 맞는 문구나 사진을 만나면 팔로우를 하기도 하고, 캡처나 저장 기능을 쓰기도 하면서 기록해두는 것이다. 치밀한 분석까진 아니지만 이로써 내린 결론은 맛과 컨디션은 기본, 인테리어는 물론 친절과 매력적인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다시 찾는 장소는 공간과 나와의 스토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너무 돌아왔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고민들이 나를 글쓰기라는 길 위에 올려놓았다. 사람을 붙잡는 것, 그리고 그들의 발걸음을 다시금 찾게 하는 건 진심을 나누는 소통, 진정성이라는데 생각이 닿자, 이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은 글이라고 판단했다. 나를, 나의 공간을, 나의 작업을 소개하고 전할 수 있는 방법에는 사진, 영상, 말 그리고 글 등 여러 언어가 있겠지만, 안에 담긴 스토리가 전해지길 바란다면 그건 아마도 글이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글쎄. 클럽하우스가 자리매김하면 또 달라지려나)
농사를 짓는 과정도 판매도 홍보도, 정성을 담아 지은 농사가 맛있는 열매를 맺고 진실된 홍보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두 번 세 번 붙잡듯이, 진정성 있는 글은 매혹적인 이미지처럼 단번에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해도, 그들의 발길을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담아 쓰는 글로, ‘여기 궁금해, 제주에 가면 꼭 가봐야지, 이 사람이랑 대화 나눠보고 싶어.’ 등의 궁금증에 더불어, ‘이 농장 믿고 구매하는 곳이지, 나와 이런 추억이 담긴 곳이었지 이번에 또 가봐야지’ 하는 믿음을 이끌어내고 싶다. 모든 인연이 짧은 연으로 스쳐 지나가는 곳이 아닌 단단하고 길게 이어지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