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작은 관심과 애정에서부터, 식물도 사람도
어제저녁 아이의 열이 내리고서야 오래간만에 베란다로 나와봤다. 화단을 들여다보니, 올리브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잡초부터 잎이 다 상해버려 빛바랜 꽃대까지 한동안 무심했더니 아주 가관이었다. 그 사이에서 내 이름 붙여둔 나의 올리브 나무만 잡초도 없이 잘 자라고 있는 것이 민망했다. 특히 남편의 올리브나무에 잡초가 무성했고 아이의 식물이라며 아이가 태어난 해에 집에 들인 페페도 상처 난 잎이 많아 때아닌 자기반성 타임을 좀 갖게 됐다.
‘내가 한동안 무심했지, 미안해-’ 하며 한참을 쪼그려 앉아 잡초를 뽑고 상한 가지들을 잘라냈다.
아이가 아프기 며칠 전, 어린이집 선생님과 통화를 하던 중,
“어머니 다음 달 18일에는 선생님들 코로나 백신 접종이 있어서요, 어린이집을 하루 휴원 하게 될 것 같아요. 혹시 가정보육 가능하실까요?”
_아.. (남편은 촬영이 있고, 난 가게를 오픈해야 하는데 어쩌지.)
“죄송해요 어머니. 아무래도 영아반 아이들은 담당 선생님이 자리에 없으면 보육이 좀 힘들어서요 하루만 좀 부탁드릴게요.”
_우선은 방법을 찾아볼게요 선생님, 저희 아이는 요즘 어떤가요? 잘 적응했나요?”
“혹시....”
조심스럽게 입을 뗀 선생님으로부터 요즘 아이가 엄마랑 보내는 시간이 적냐는 질문을 받았다. 왜인지 한동안 잘 적응해왔는데, 요즘따라 잘 놀다가도 담임선생님이 안 보이면 불안해한다는 아이. 요즘 들어 아이가 내게 보이던 분리불안의 행동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도 한다면 선생님이 힘들 텐데, 괜히 엄마로서 받아주어야 할 행동을 내가 받아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함이 일었다. 통화를 끊고는 괜스레 울적해져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혹시나 새로이 시작된 내 일로 인해 아이가 혼란스러워진 거면 어쩌나, 역시 일은 무리수였나, 근데 또 먹고는 살아야 되는데, 다른 워킹맘들은 별 문제없어 보이던데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어떻게 해야 가장 좋은 선택일지에 대해 털어놓았다. 남편은 그래도 우리 아이를 위해 일요일도 장사를 쉬지 않느냐고, 평일에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있지 않느냐는 위로를 건넸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작은 고민에 걱정과 걱정을 쌓아 올릴 뿐.
“많이 안아주세요”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내가 아이를 안아주지 않았던가..
일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말라버린 모유, 그럼에도 쉴 새 없이 품에 안겨 젖을 물던 아이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게 아이가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러던 때에 요 며칠 미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던 아이가 열이 심해졌다. 여느 때처럼 오르다 말겠지 하며 일을 하던 중이었는데, 자던 아이가 끙끙대길래 이마를 짚어보았더니 39도가 넘었다. 돌치레 이후로 이런 열은 처음이라 어찌할지 몰라 허둥지둥. 다락방 창고에 있던 ‘삐뽀삐뽀 소아과’ 책을 찾아 목차를 뒤졌다. 열이 날 때! 수십 번을 읽었던 페이지인데도 머릿속이 하얬다. 잠들어있는 남편을 깨워 미지근한 수건으로 몸을 닦이고 해열제를 먹여도 열은 40도 가까이에 머물며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응급실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안함으로 밤 시간을 견뎠다. 주말이라 당장 병원으로 달려갈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지금 아이에게 가장 필요로 했던 건 나의 품, 나의 냄새, 나의 손길이 아닐까 싶어 만지고 주무르고 물고 빨고 포-옥 안아주었다.(당연히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고 나았겠지만 그래도..)
애초에 아이와 붙어 있으려고 시작한 일인데 정말 말도 안 되지 일이 이렇게 커져 미안한 마음이 덩달아 크고, 때아닌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이가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그 마음도 이해가 되고, 또 뭐가 그리 급하다고 서둘렀는지 나 자신도 후회스럽고.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흘러가는 통에 남편도 얼마나 버거울지 안쓰럽고. 여러 생각이 뒤섞여 깊은 잠에 들지 못했나 보다. 새벽에 문득, 사랑이라는 단어가 잠을 깨웠다. 사랑.. 눈앞의 일만 보고 달리느라 너무 내 생각만 하며 살았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고.
답답한 마음에 베란다로 나왔더니 어제까지만 해도 거무죽죽하던 꽃들이 오늘은 새파랗게 활짝 피어났다. 그 모습을 보자니 괜히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밝아오는 새벽의 빛보다 더욱 푸르른 빛깔에서 생명력이 전해져 왔다. 나는 그저 저들의 머리카락 조금 다듬어줬을 뿐인데 고작 그게 무슨 도움이 됐다고 저리 파릇하게 살아난단 말인가.
괜히 마음을 담아보기도 하고 지금 상황에 대입해보기도 하다 보니 날이 훤히 새 버렸다
오만 잡생각 다 집어치우고 아침 밥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