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에서 휴게음식점, 용도변경은 쉽다면서요!
사주팔자를 보고 왔다.
어지간히 답답했구나? 싶으면서도 무슨 답이라도 내려주길 내심 기대하며 내 발로 찾아간 철학관. 생판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몇 시간을 떠들고 또 그 사람의 견해를 그만큼 들어야 했다. 하나만 더 여쭤봐도 되냐며 집착 아닌 집착을 보이는 나를 그곳에서 꺼내오기까지는 꽤 힘든 여정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떤 답을 들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많은 말이 오갔는데 남아있는 말이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꽤나 가벼워졌음을 알아차렸다.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하지? 건강검진을 받고 진단명이 나오기까지 별의별 걱정에 휩싸이는 것과 같이, 나 또한 벌려놓은 일들을 손에서 내려놓기 위한 떳떳한 핑계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운 때가 좋지 않군요. 욕심을 부리지 마세요’라는 추상적이면서도 무책임한 이 말이 도대체 뭐라고 이렇게나 마음이 가벼워진단 말인가 하하.
마음이 조급할 땐 앞뒤 가릴 것도 없이 내달려 찾았던 곳인데, 다녀와 마음이 편안해지고 보니 찝찝한 마음에 여기저기 후기를 찾아보게 된다. 생각보다 많은 돈을 쓰고 돌아와, 아휴 내가 이 정도까지 무너졌나- 싶은 생각에 노트와 펜을 집어 들었다. ‘하던 대로 하자. 돈도 안 들이고 내 마음 다 들어주는 이가 여기 책상 앞에 있는데 말이지’ 하며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다.
생각해보면 사주팔자, 철학, 역학 이런 것도 상담의 일종이겠구나 싶다. 타로점, 오늘의 운세와 같이 상담자가 하는 말들은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해석하기 나름일 테고, 내담자는 결국 듣고 싶은 것만 들어 취할 테니 말이다. 또 심리상담에 비하자면 한 3회기 정도?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나면 잠시나마 가벼워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미술치료, 사진 상담, 문학치료 등 다양한 상담의 도구들처럼, 사주 또한 한 가지 도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그냥 속에 있는 걸 마음 편히 털어놓을 이와 객관적인 조언이 필요했던 거라 판단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엄마와 남편이 아니고서는 누군가에게 말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나니까. 최근 들어, ‘000에게 전화해볼까? 아냐 바쁘잖아. 000은 어때? 아냐 공감하지 못할 거야.’ 하며 휴대폰 연락처 목록을 뒤적거리는 때가 많았지만 결국 아무에게도 전화 한 통 걸지 못했다. 차라리 얼굴 보고 소주잔이나 기울이면서 하는 거면 몰라, 아무래도 나 힘들다는 말들로 상대편마저 수화기를 붙잡고 있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쓰고 쓰고 또 써서 휴지통에 버리면 되는데 최근엔 그런 시도조차 하지 못했고 그만큼 풀리지 않는 일들의 연속으로 인해 무기력의 늪에 빠져있었다.
지난해 10월 말부터 준비해오던 신축공사와 카페 용도변경. 건축설계사와 11월에 계약을 맺었으니 벌써 5개월 차에 접어들었는데도 진행된 사항이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되나. 나는 5개월 가까이 두 발 뻗고 편안하게 잠을 자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온실 콘셉트의 카페를 구상하고 있던 나는 건물 디자인에서부터 설계사와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림엔 크레파스 똥만큼도 소질이 없는 내가 건물 모양을 그리고 창문을 그려 넣는 등 갖은 애를 써도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나무로 뼈대를 세웠다가 무너지면 누가 책임을 지려고 그러냐, 건축주님은 동화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네요..’ 하며 설계사는 자꾸만 앞으로 뛰어가려는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마디,
“건축주님이 원하시는 디자인은 해본 적도 없고 자꾸 도면을 수정할 수 없으니, 출입문에 손잡이 위치까지 상세히 그려서 보내주세요.” 이 말에 치가 떨려 디자이너 분을 섭외했다.
‘오케이. 이제 이건 디자이너의 몫, 그럼 카페 리모델링에 용도변경부터 하자!’며 용도변경에 뛰어들었더니 이 또한 쉽지 않다. 정화조 공사는 자신의 소관이 아니니 알아서 진행하고 서류만 제출해달라는 건축설계사. 지인의 도움으로 손쉽게 정화조 업체를 통할 수 있었지만, 서류는 설계사의 일이니 그쪽에 말하라는 정화조 업체. 하하. 서로 자기 일이 아니라는 두 사람 사이에서 한참을 치이다 결국 제삼자인 정화조 제작업체에 작게나마 수고비를 드리고서야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면은 설계사, 시공은 시공자, 접수는 정화조 업체 이렇게 다 따로 일을 하고 있으니 속도는 물론 중간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애를 먹었고 그러다 보니 고작 정화조 하나 완성하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용도변경은 열흘도 안 걸린다며, 걱정하지 말라던 애초에 설계사가 했던 말과는 너무도 다르게 말이다.
‘아우 하기 싫어!’ 라며 발버둥 치는 듯하던 용도변경 서류를 겨우 시청 담당자 책상에 접수해두고, ‘주무관님 바쁘실 테지만 실사 좀 서둘러 부탁드려요. 저희가 급해서요.’ ‘주무관님 죄송하지만 저희 정화조 준공은 문제없이 되었나요’ 하루에 몇 번씩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또 확인했지만 바쁘고 조급한 건 내 마음뿐,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은 천하태평인 것만 같아 야속한 시간들이었다.
결국 이것만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참고 참아왔던 단어, ‘계약 파기’를 내 입으로 꺼내고서, 뒤로 한 발 물러서니 일이 일사천리로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운이 없대. 여보가 맡아야 한대- “ 하며 지금껏 끌고 오던 것들을 모두 남편에게 인수인계했다. 왜인지 모르게 미련이 남기도하고 홀가분하기도 한 양가감정이 한참 머물러있었다.
작은 일이지만 사업은 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인복도 운이라면 말이다.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지지리도 인복이 없다고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 근데 또 운 탓을 할 수 만도 없다, 여러 건축사 중에 내가 선택했으니 그 몫은 내가 감당하는 게 맞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