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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맘 Sep 22. 2021

부부사이 잠시멈춤, 가족적 거리두기

우리는 지금 몇 단계를 지나고 있는 걸까?


같이 사네 마네 이런 말들이 오간지는 꽤 됐다. 무슨 이유에선지 우리 사이에 이해와 사랑이란 단어는 점차 자리를 잃고 짜증과 분노, 섭섭함과 같은 감정들이 곳곳을 꿰차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잦아진 다툼에 남편은 자꾸만 상황을 벗어나려 하고, 나 또한 끝없는 반복에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해하고 또 포기해야 할지 모른 채 기로에 서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년이란 시간 동안 임신으로 시작해 이어진 결혼, 출산, 이사, 그리고 장사까지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싸우진 않았다. 연애기간이 짧은 게 득이 된 건지 실이 된 건지는 알 수 없다. 남들은 파혼까지 간다는 결혼 준비나 신혼집을 합치면서는 의견 충돌이 전혀 없었는데 출산 이후 각자의 가족문화에 적응하면서부터 조금씩 삐걱거리던 것이 맞벌이를 시작함과 동시에 활활 타올랐다. 고작 내가 찾아낸 답이라는 건 ‘지쳤다’ ‘지칠 수밖에’라는 것뿐. 우선 나의 무지했음을 인정한다. 한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게 이토록 희생과 노력이 따르는 일인 줄은 생각도 못한 채 혼자 살 때처럼 일을 벌여대다니. 막연히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지금껏 잘해왔으니까 우리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빠져 미리 조언을 구하기는커녕 ‘뱃 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아’, ‘누워있을 때가 편한 거야’ 라던 선배 엄마들의 말을 흘려들은 탓이 크다.


작년 이맘때 장사를 시작할 무렵에만 해도 솔직히 잘 될 거란 기대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저 아이 업고, 아니 업히기 싫어하면 아기의자에 앉히고, 그것도 불편해하면 남편에게 맡겨두고서 일주일에 하루 이틀 서너 시간, 책을 읽던 바깥바람을 쐬던 해야지- 라는 참으로 안일하고도 철딱서니 없는 생각으로 시작한 소꿉놀이였다. 돈? 사실 경제활동에 대한 압박이 없었던 건 아니다. 육아휴직급여를 받는 중이었지만, 괜히 눈치 보일 때가 있는가 하면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도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때가 되면 돌아갈 직장이 있었기에 외면하고 또 외면했다. 살아오면서 돈의 가치를 '먹고 살만큼만'으로 매겨왔던 나로서는 기저귀 값도 아니다 출퇴근 기름값 정도 버는 거면 충분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함께 고생했던 남편과 아이에게는 미안한 말이긴 하지만, “돈도 벌게! 대신 그만큼 내 시간을 줘!” 라며 이기심을 합리화해 벌인 일이기도 하다.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쉬겠다는 건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지만 그땐 그저 사람이 고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가다 멈춰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좋고, 누군가 사진을 찍으면 그 마음이 고마워 같이 귤을 나눠먹던 내 모습은 환했으니까. 그렇게 소소한 음료에 만족하는 사람부터 나와 소꿉놀이 취향이 비슷한 사람까지 점차 찾는 이들이 늘어나더니 서너 달 뒤엔 고작 귤과 음료 다섯 가지 파는 상점에 줄을 서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인지 어안이 벙벙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를 봐주던 남편이 일을 돕기 위해 합류하고, 어느샌가 아이는 시어머님 손에 맡겨져 있는가 하면 시아버님께 마당 한 켠만 빌리기로 했는데 화장실에 창고까지 점차 그 면적이 넓어지고 있었다. 점점 여기저기 신세를 지게 되면서 더 이상 나 혼자만의, 우리 가족만의 일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여기까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신경증적인 요소들이 하나씩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원하던 그림이 아닌데.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에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나로서는 시댁에 폐를 끼치는 것에 안절부절못했다. 게다가 찾아오는 손님들을 웃음으로 맞이하는 만큼 내 아이에게 웃어줄 시간이 부족해지는 것에도 마음이 타들어갔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물이 들어왔으니 노를 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양가감정이 싹트기 시작했고 하나씩 일을 벌이기도 하고, 그만큼 늘어나는 부담감에 불안해하고 괴로워하며 보낸 날들의 연속이 시작됐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가 소꿉놀이를 하겠냐 물어온다면, 이제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할 자신이 있지만 이미 늦었다.




그런 시기를 지나 1평 남짓 작은 상점은 10여 평, 아니 정원까지 100평의 공간으로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었다. 그리고 정식 오픈을 한 달 앞두고서 우리 부부는 심리상담소 앞에 다다랐다. 상담소에 가면 보통 첫날은 심리 검사를 진행하는데 각자의 결과지를 받아보고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지는 우리를 극도로 긴장된 상태와 불안, 거기서 비롯된 무기력함, 각종 중독이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해주었다. 육아와 장사, 금토일이면 세 식구가 함께 출퇴근을 해야 했던 물리적 어려움, 그리고 코로나까지. ‘지칠 수밖에’라는 말로 서로를 다독였다. 우리에게 부부상담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닌 필수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부부로서 엄마 아빠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부지런히 상담에 임했다. 상담 덕분인지 바이오리듬이 타이밍을 잘 맞춘 이유인지 다녀오면 조금씩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장사 준비나 메뉴 개발이 겹치는 시기가 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곤 했다. 결국 가게 오픈과 동시에 바쁘다는 핑계로 상담소로 향한 발길이 끊겼고 그렇게 또 하나의 계절이 지났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또 한 번,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다시 나를 상담소로 이끌었다. 상담을 앞두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으르렁대던 우리는 금세 평온을 되찾았고 남편의 ‘요즘 괜찮은데 상담 갈 거야?’라는 질문에 ‘그럼 가야지.. 언제 또 시작될지 모르잖아’라고 답했다. 상담실에서도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나 : 도저히 풀어나갈 자신이 없어 연락드리고 예약을 잡았는데, 그 이후로 다시 평온해졌어요. 남편은 굳이 왜 가냐고 하지만 저는 두렵습니다.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도대체 저희 부부 왜 이럴까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주변 사람들이 저한테 예민하다 까탈스럽다 성격이 모났다고들 말하던데 제가 정말 정신병이 있는 거면 어쩌죠? 고칠 수 있는 거라면 제가 고칠게요. 고쳐서 평온해질 수 있다면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요.

상담사 : 싸움이 왜 일어날까요? 누구 하나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잖아요. 많이 힘드시죠, 아이가 어리니 두 분 다 잠도 잘 못 주무실 텐데 장사까지. 몸과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다면 누구든 비슷한 상황에 처할 거예요. 두 분은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하고 계시잖아요. 이 것만으로도 저는 두 분의 앞날이 희망적일 거라 봅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지금은 당연히 그럴 때에요. 이 모든 일들을 겪고 어느 누가 평온한 상태일 수 있겠어요. 정신병이 아니고 신경증적인 요소들이에요.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분명 개선될 거예요. 그때까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요.

상담사의 마지막 말을 듣고서 상담소를 나오는 내 발걸음은 가벼웠다.


하지만 우리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하루하루 서로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듯한 기분이랄까. 남은 연료도 얼마 없는데 +10 해놓으면 금세 -10, 그러니 매번 고갈되고 마는 것이다. 다투더라도 잠깐씩 찾아오는 평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충전한 에너지로 겨우 버텨내곤 했는데, 이제는 그 울타리가 흔들리는 것 같아 두렵고 외로운 순간이었다. 자꾸만 어디로든 혼자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혼자서 떠날 수가 없는 상황이고 아이를 데리고 다녀오자니 체력적으로 자신이 없고. 그럼 내가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친정뿐인데 그때 알아차렸다. ‘내가 그 정도로 힘들구나’. 고향에 사는 게 숨 막혀서 독립에 독립을 거듭하고, 자발적 고립을 택해가면서까지 제주로 떠나왔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다니. 더 이상 이곳이, 남편의 품이 안전 기지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잠시 멈춰야 하나 계속 가야 하나 고민만 하다 한 달, 두 달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또 한 번 계절이 바뀌었다. 잠도 못 자고 끼니도 못 챙기고 아이와 남편, 그리고 나마저도 케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버텨왔는데 이걸 멈춘단 말인가. 거기다 장사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일주일 내내 열어야 된다, 쉬면 안 된다, 손님 끊긴다 양가 어른들의 이런 말들이 떼려는 발걸음마다 자꾸만  발목을 잡았다. 팽팽하게 꼬여있는 실타래를 나 혼자 안간힘을 다해 붙잡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별 것 아닌 한마디, 사소한 상황들이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을 빼놓더니 결국은 툭- 놓친 건지 놓아버린 건지 걷잡을 수 없이 풀어져버렸다.

같이 사네 마네를 넘어서서, 같이 살 거라면 살고 싶다면 살기 위해서라도 잠시 멈춰야 한다고 판단했다. 장사도, 돈도, 사람들 이목도, 체면도 다 필요 없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이니까. 그렇게 우리의 거리두기는 시작됐다. 서로 이 가정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과?

대단한 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 작은 기대마저 민망하고, 멈추기 직전까지 거대했던 고민 덩어리에 비하면 너무도 초라한 결말이다. 달라진 건 없다. 나는 그를 내려놓지도, 나를 바꾸지도 못했다.  열흘간의 거리두기 이후 하루 만에,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우리는 또 다투고 화해하기를 반복하고 괴로워하는 중이다. 누구는 말한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그게 살 길이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이해하라고, 이해의 폭을 넓히라고. 포기든 이해든 모두 내가 변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가 변해주길 바라지만 그는 그럴 마음이 없고, 내가 타인을 바꾼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그럼 이해를 해야 하는데 같이 사는 날만큼 이해해야 할 것들도 매일 하나씩 늘어나는 것 같고 그렇다면 당장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만이라도 참는다? 이 또한 임시방편일 뿐 참고 참다 보면 결국 또 폭발할 테고, 그렇게 마지막은 놓아버리게 되는가 보다.. 아직은 포기가 안 되는 걸 보면 아직 싸울 힘이 남은 건지 아님 놓아버릴 정도까진 아니란 건지, 결국은 오늘 하루 또 영양제 먹듯 하나 더 이해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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