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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맘 Mar 06. 2022

잃어버린 영혼을 만나다

환자분은 자기만의 어떤 장소를 찾아 편안히 앉아서 영혼을 기다려야 합니다

 바람이 불어도 이렇게 불어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부는 통에 종일 정신이 산만했다. 출근 전 창 너머 들어오는 봄볕에 속아 옷을 얇게 입고 나왔더니,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몸서리가 쳐질 수밖에. 바람은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잦아들었고 미세먼지도 함께 날아갔는지 하늘에는 푸른빛이 돌아왔다. 저도 온종일 갑갑했던지 지는 해는 또 어찌나 강렬한지. 퇴근 시간이 다되어 이제는 포토존이 되어버린 작은 버스에 올라 화분을 들이고, 창을 닫았다. 하나 둘 창을 닫고 보니 바람소리가 하나도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적막인데 그건 아름다운 고요였다. 창 밖엔 바람에 햇살이 일렁이고 풀들이 비비적거리는데 여기까진 그 소리가 닿지 않으니 시간이  멈춘 듯했다.


‘이 버스에 앉아 마주하는 장면들 바라보던 걸 참 좋아했었는데..’ 하며 언젠가 치워버린 의자가 그리워졌고, 벌써 2년이나 지나버린 시절에 아쉬움이 일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스스로의 경력보다는 아이에게 집중하고픈 마음이 커 복직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자영업의 장점이라고는 오로지 하나, 아이에게 내 시간을 맞출 수 있다는 것 하나에 기대어 내린 결정이었다. 물론 그때도 매일을 살아내는데 분주하고 치열했지만 지금보다야 여유로웠단 걸 새삼 느낀다. 비가 오면 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비가 그치면 벚나무로 날아든 새소리에 귀 기울이고, 바람 불면 흔들리는 나뭇잎들에, 해 지는 풍경에, 찾는 이 하나 없어도 지루할 틈이 없던 그때.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눈에 담고 기록하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장사마감하다 말고 뜬금없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어느 샌지 모르게 나는 지금 여기에 와있고,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어서 어리둥절하기만 요즘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요 며칠 자꾸만 지난 한 해, 뭔가에 홀려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나라고? 내가 아는 나 맞아? 하며 묻고 싶을 만큼 믿을 수 없는 자신의 모습들을 만나왔다. 이 세상 힘든 일은 다 내가 하는 거 같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것 같고, 심지어 도와주겠단 사람 마음은 의심이 먼저 일고, 내 잘못도 잘못인데 당신이 이렇게 만든 것만 같고,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고,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고 내가 왜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은 불평불만투성이의 나.


몰아치던 바람소리에 문득 날아든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다. 혹시 내가 너무 바쁘게 달리느라고, 지금 이 바람에 떠밀려 날아오느라 영혼을 놓친 게 아닐까.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큰 혼란이 벌어져요. 영혼은 머리를 잃고, 사람은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거죠. 영혼들은 그래도 자기가 주인을 잃었다는 걸 알지만, 사람들은 보통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환자분은 자기만의 어떤 장소를 찾아 편안히 앉아서 영혼을 기다려야 합니다. 분명히 환자분이 이삼 년 전쯤 갔던 곳에 환자분의 영혼이 있을 거예요. 기다리는 데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몰라요. 제가 드릴 다른 약은 없습니다.”

잃어버린 영혼 _요안나 콘세이요

서로를 잃어버렸던 사람과 영혼이 만남으로써 그들이 머문 방이 푸릇푸릇해지던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이 떠올랐다. 당시에만 해도 이제 다시는 영혼을 잃어버릴 리 없다며 장담을 했었는데 나는 또 놓치고 만 것일까.


바쁜 계절이 지나고, 시즌 마지막 날 동료들과의 회식이 아닌 나를 위한 휴식을 택했다. 오랜만에 아이도 남편도 없이, 이박삼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조용한 숙소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심심하면 책을 읽고, 가끔은 글을 쓰고 산책하며 내안의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날을 계기로 어둡던 마음이 걷히고, 한 걸음씩 내딛는 내 발걸음에 날개가 달렸다. 기꺼이, 심지어 즐겁게 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뭐야? 사람이 어떻게 한 순간에 변하지?’ 싶어 의문이 들었지만 그저 반기기로 했다. 변화한 스스로가 기특한 마음도 잠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밀려온다. 고맙게도 곁에 남아준 사람들은 들어주느라 얼마나 힘들었을 것이며, 떠난 사람들에게는 또 얼마나 꼴 보기 싫은 모습을 보였을까 싶어 못난 자신을 후회하기도, 이해하기도 했던 날들.  


숨 쉴 틈 없이 달려온 날들이었기에 휴식으로 주어진 하루 이틀의 그 시간이 참 중요했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그때 너를 이곳에 두고 왔구나,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는데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이후로도 수시로 짬을 내서 나에게 시간을 내어준다.태풍처럼 몰아치던 바람이 지나가고 버스에서 고요함을 만난 오늘과 같이, 가만히 그를 기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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