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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맘 Jul 14. 2022

한 잔 두 잔 그리고 마지막 잔

그래도 수유는 해야 하니까.

"여기 앉으면 안 될까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4인석 자리를 가리키며 물었지만 점원은 단호하다. 예약이 되어있다며 다시금 가장 구석진 자리의 2인석으로 고개를 돌린다. 몇 분이세요?라는 질문에 한 명이예요라고 답하는 것도 그리 쉬이 나온 말은 아니었거늘, 왜인지 모르게 누군가에게 초라한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구석자리로 향하는 발걸음을 소극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삼십 센티도 떨어지지 않은 옆 테이블에는 고기와 소주를 주식으로 할 것만 같은 장정남 둘이 앉아있다. 흡! 하고 숨을 참아가며 할 수 있는 한 허벅지 둘레를 좁혀 주어진 테이블에 앉는다. 하필 메뉴는 또 옆 테이블 가림판에 붙여져 있어 들여다보고 있자니 옆에서 하는 말소리, 그들의 힐끗거리는 시선이 자꾸만 가림판을 넘는다.


"부속고기 작은 거 하나, 무알콜 맥주 한 캔 주세요"

"네?"

"부속고기 작은 거 하나, 무알콜 맥주 한 캔이요!"

 뱉을 일이 없어 잠겨있던 소리가 목구멍을 뚫고 터져 나온다. 갑작스러운지 매끄럽지 못하다. 내가 앉은자리의 정반대 편 테이블, 그곳만 제외하고는 매장 안이 빼곡하다. 사람들은 먹느라 마시느라 말하느라 듣느라 분주하다. 오로지 나만이 멈추어있다고 생각했으나 아니다, 나 또한 보느라 바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테이블이 채워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맑은 국, 물방울이 군데군데 맺힌 상추, 구절판에 얹어진 듯 종류별로 가지런히 놓인 고기, 그리고 0.00% 무알콜 맥주.


"수저는 없을까요?"

"뒤에 있어요."

 누가 열어보기는 했을까 싶을 만큼 굳게 닫힌 수저통을 열어 한 사람분의 수저를 꺼내고서 티슈로 한번 홈친다. 수저를 내려놓는 시선에 작은, 아주 분주하고도 작은 하얀 벌레가 들어오고 나는 곧장 손을 들어할 말이 있음을 알린다.


"소주 한 병 주세요. 참이슬이요."

 소독이 필요하다는 건 핑계요, 좋은 건수를 핑계 삼아 종업원이 건네는 소주를 받아 든다. 고깃집 구석자리, 혼자 고기에 소주 한 잔. 사실 이 조합도 머쓱하기 충분하나 가방에서 노트와 펜까지 꺼내 거들라는 내면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술기운을 빌리지 않고서는 도통 할 수가 없을 테니,라는 생각은 잠깐 끓어오르는 낯뜨거움을 무시하기에 충분한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노트를 보는데 왠지 씁쓸해진 나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은 맞은편 자리에서 시작해 빈틈없이 빼곡한 가게 안의 테이블들을 쭈욱 훑어본다.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조금 서글프지만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은 것도 결국 자신이라는 아이러니함을 인정한다. 곧이어 서글픔은 작은 물음표가 되어 남는다.


"왜 혼자 있니?"

 혼잣말로 조용히 읊조렸다. 머릿속 족쇄를 풀고 또 한 번 마음의 빗장을 연다. 에라 될 대로 돼라 외치는 마음으로 들이킨 첫 잔, 해방감. 연이어 생각한다. 소주가 달다고 이러면 큰일이라며 두 잔. 넘기다 보니 어느새 광대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달아오름을 느낀다. 눈도 풀리고 이제 남들은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먼저 시킨 무알콜 맥주만이 맞은편에 앉아 한여름 더위에 땀만 삐질삐질 흘리는 중. ‘가끔은, 아주 가끔은’하며 빈 종이를 자유롭게 휘갈긴다.


‘영혼이 맑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기를 참고 술을 멀리하려 애쓰지 말고. 티브이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그냥 사람 사는 대로 살면 어떨까. 추억 속 내가 울고 웃고 떠들던 그때처럼 살고 싶기도 하다. 그 시절, 잘 지내려나. 영혼이 메말라서 지금보다 더욱 목말라했던 그때의 나와 친구들아 잘 지내냐고. 꽤나 밝아지고 또 건강해지고 그럭저럭 잘 지낸다 지금의 나는’

한 잔, 두 잔 그리고 마지막 잔.


그래 몇 시간 뒤에라도 수유는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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