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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맘 Jul 07. 2022

오늘은 마쌀로 불리고 싶어서

하루에도 몇 시간씩 들여다보는 인스타그램, 이 사람 저 사람 파도 타며 들어갔다가 우연히 한 피드에 멈추어 섰다. 7월부터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다는 내용의 글. 지난 수개월 동안 온라인으로나마 오래된 지인들과 글쓰기 모임을 이어오던 중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모임의 한계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글쓰기보다는 반가움에 더해지는 이야기로 흘러 가는 분위기에 잠시 쉬어가겠다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또 하나, 엄마들이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온라인 모임에도 참여해볼까 고민이 많았지만, 온전히 글쓰기에 집중하고픈 마음이 컸던 걸까. 마음이 이리로 이끌었다.

드디어 7월이 됐다. 한 달 전부터 예약을 했던지라 사실 그때의 마음이 가물가물해지기 직전이었고, 마침 7월 7일 목요일에 몇 년째 얼굴도 못 본 남동생네가 제주에 내려온다고 하질 않나, 태어나 한 번도 안아보지 못한 조카까지 안고 온다니 가? 말아? 마음속에서 갈팡질팡 했던 건 사실이다. 그래도 글을 쓰겠다는 내 안의 게으른 작가 세포가 이겨냈다. 남동생네와의 식사는 금요일로 미루고, 마감도 동료에게 미룬 채 헐레벌떡.



한 달 전인가, 아침에 눈뜨자마자 잘 때까지 사탕 타령을 하는 아이를 달래려 무설탕 사탕을 사러 초록마을로 가는 길이었다. 내비게이션 안내를 따라가는데 파티쉐리 뷔쏭이라는 작은 간판을 만났다. 이 동네에 이런 빵집이 있었구나 싶어 들어갔다가 블루베리 생크림 케이크를 포장해 나왔다. 음 아무리 동네 장사라지만 가격이 저렴하네, 케이크도 작은 사이즈라지만 이 정도 퀄리티에 7천 원을 받는다니, 내가 파는 빵은 손님들에게 죄송해야 마땅하네 하며 자기반성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던 작지만 강렬한 공간.


스틸 네거티브 클럽, 지난달 동네에 가볼 만한 카페를 검색하며 찾아다니다 우연히 들른 곳. 한 때 사진을 취미로 했던지라 이름부터 신선했다. 실내는 필름 카메라, 필름, 그리고 필름 카메라로 담은 사진과 소품들이 주를 이루는 카페. 엽서와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바라보았다. 한지에 프린트된 분홍빛 겹벚꽃 사진을 들었다 놨다, 수박과 우유, 그리고 빛이 담긴 여름의 사진을 꺼냈다 말았다, 쓰임이 다한 플로피디스크를 활용한 엽서를 살까 말까 숱한 고민 끝에 모두 내려놓았다. 에이, 사진 찍을 때 왔더라면 필름이라도 구매하는 건데.. 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음료만 주문하려던 찰나, 카운터 옆에서 작은 사이즈의 낯익은 사진을 발견했다. 아까 한참을 고민했던 수박 사진. 판매대에 있지 않았기에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혹시 이 작은 사진도 판매하시나요?”

-아, 네 하시게 되면 이 사이즈의 다른 사진들과 같은 값으로 드릴게요.

(오예)

그리고 지인이 전시 준비를 하고 있기에, 필름 스캐너와 프린트 사양을 짧게 물어본 뒤 카페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큰길을 찾아 나오니 초록마을이 보인다. 집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이 동네로 이사온지 일 년이 넘었으니 아쉬울만하다. 오늘 스틸 네거티브 클럽에서 만난 사진은 내 방 책상 옆에 붙여두었다. 보고 있자면 시원해지는 사진, 그날 이후로 책상에 앉아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계절은 무더운 여름으로 들어섰다.


지난주, 지인들이 나의 생일 축하를 위해 서귀포에 오기로 한 날. 언니들이 정해주는 코스대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정원카페에서 만났다.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감탄사와 동시에 몸을 수그리고 일어날 줄 모르던 우리. 한참을 들여다보고 조잘거리다 배가 고파 가벼운 브런치를 먹었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예요?”라는 나의 물음에 ‘뷔쏭’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 얼마 전에 다녀온 곳이라며 블루베리 생크림 케이크가 맛있었다 말했다. 뷔쏭으로 자리를 옮기며, 이 근처에 스틸 네거티브 클럽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며 두리번거렸지만 찾지 못했고, 사진을 하는 지인에게 말해줄까 하다가 정확하지 않은 사실에 입을 다물었다. 나오는 길에도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찾지 못했다.


그리고 어제 받은 문자,

안녕하세요, 1회 모임이 드디어 내일로 다가왔어요
7/7(목) 저녁 6시 30분 스틸 네거티브 클럽으로 와주시면 되어요. 시원하게 만나요!


한번 가봤던 곳이라고 조금 더 반갑달까. 코로나 이후로 처음 가져보는 오프라인 모임이라 들뜬 걸까, 어떤 모임일까 무슨 글을 쓰게 되려나, 오늘은 책을 읽을까 글을 쓸까 다들 글을 쓰려나 책을 읽으려나? 퇴근하고 달려오는 길이 꽤나 두근거렸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들어오는 길, 익숙한 초록마을 간판이 보인다. 어? 이 길이면.. 하는데 파티쉐리 뷔쏭이 나타난다. 블루베리 생크림 케이크와 잊을 수 없는 산딸기 에이드. 우리에게 여름의 시작을 알려준 뷔쏭에게 반가운 웃음을 전하자마자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내비게이션. 그렇다 스틸 네거티브 클럽은 뷔쏭의 한 블록 다음이었던 것. 아쉬운 마음에 지난주 지인과의 만남이 떠올랐다. 분명 좋아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과 들뜬 마음 사이를 오가다 들어선 스틸 네거티브 클럽, 그리고 자리에 앉아 인사를 나누기 시작한 글쓰기 모임. 조금 늦어 놓친 동료들의 닉네임, 무*, 구**, 라***, 소**를 전해 듣고서 내 차례가 돌아왔다.

불리고 싶은 닉네임이 있나요?

(뭘로 하지? 달맘? 영마쌀? 무슨 이야기를 쓸 거지?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 휙 휙 선을 그려가다가 결심했다. 그래 여기서만큼은 다시 마쌀로 돌아가자!) 하는 마음으로,

“영마쌀이에요, 마쌀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말하는 순간 10여 년 전 스스로를 영마쌀이라 부르겠노라 다짐하던 귀엽고 어린 내가, 지단한 삶을 적어 내리며 공감받고 싶어 하던 나밖에 모르던 내가 떠올랐다. 써 내려가는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실실거린다. (그래, 너 오래 참았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차선으로 미루고 미루며 모른 체해서 미안해) 하고 말하니 마쌀이가 마음 안에서 요동친다.

“제 닉네임은 영마쌀입니다”

“역마살?”

“왜 역마살이에요?”

“그럼 좀 더 붙여서 영맛살이라고 하지”

등등 제주에 와 여러 차례 들었던 질문, 그리고 제주에 와 잠잠해진 내 역마 기질. 나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조금조금씩 뻗어나가며 단단해지는 이곳 제주. 타의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아야 했던 지난 이십 년, 자의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기를 택했던 지난 십 년. 그리고 지금 여기 제주.



7:00 pm - 8:00 pm 글을 쓰는 시간 한 시간, 뭘 써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 노트를 펼쳤다. 가끔의 일기와 메모와 계획들이 스쳐 지나가고 마지막 페이지 다음 하얀 백지, 머릿속도 하얀 백지. 뭘 써야 하지 고민하다 끄적인 단어들, ‘인연, 스틸 네거티브 클럽, 팡송, 드숑’ 이름이 뭐더라? 하며 휴대폰 내비게이션을 뒤적거리다 추가한 글자, ‘뷔쏭’. 어색하다 이렇게 밝은 곳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도, ‘엄마! 여보!’ 하며 나를 찾지 않는 낯선 공간도. 달이라는 아이를 품고서부터 새로이 갖게 된 닉네임 달맘, 정말 오랜만에 낯선 곳에서 그 이름을 내려놓았다. 앞으로 매주 목요일, 오늘은 마쌀로 불리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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