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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Dec 29. 2020

#1. 꿈을 꼭 빨리 가질 필요는 없다.

충분히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나의 어린 시절을 아는 지인들은 내게 늘 말한다.


" 넌 좋겠다. 꿈을 이뤘으니까. "


글쎄. 물론 어릴 적 다짐을, 결심을, 꿈을 이루었으니 어찌보면 좋은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끔은 "과연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꿈을 이뤘으니 배 부른 소리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꿈을 굉장히 빨리 찾은 케이스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PC가 보급되거나 가정용 게임기가 넘쳐나던 시대는 아니였다.

올림픽을 앞 둔 시점이었고 국민들은 대부분 가난했지만 경제 호황기를 누리면서 한창 개발 열풍이 불던 경제 성장의 정점에 있던 시대였다. 맨날 통닭만 먹다가 처음 KFC를 맛 보았을 때 느꼈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면 꼭 게임을 만들어야지.


난 7살 때 내 꿈을, 아니 진로를 결정해버렸다. 매일같이 오락실을 갔지만 정작 돈은 없어 구경만 하다 집으로 털레 털레 걸어가곤 했지만 그래도 오락실로 향하던 내 발걸음은 언제나 경쾌했고 신이 나 있었다.

당시에 오락 한 판의 비용은 50원. 어쩌다 100원이 생기면 쭈쭈바 하나를 입에 물고 오락실로 신나게 달려가곤 했다. 많은 게임 개발, 기획자들이 저마다 하나의 인생 게임들이 있듯 내게도 그런 게임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더블드래곤이라는 게임이 재미있어서 게임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던 건 아니였다.

마지막 보스를 물리치고 BGM과 나오는 Ending credit 때문이었다. 쭉쭉 올라가는 개발자들의 이름이 얼마나 멋지던지 나는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게임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지만 당시에, 그리고 조금 더 성장했을 때에도 내가 뚜렷히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했던 건 없었다.


그때만 해도 게임 개발이라는 직종도, 가르쳐 주는 학원이나 학과도 없었으니 말이다. 게임 개발사의 직원이 정확히 어떤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지조차 몰랐으니 준비하고 말 것도 없었다.

그저 막연히 "어른이 되면 게임을 만들거야."라고 생각만 간직할 뿐이었다.




20대 초반 게임 개발사 입문, 30대에 웹 분야로 40대에 블록체인에 도전하다


처음 입사 했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기획자로 IT 분야에 처음 입문했다.

그리고 다양한 게임 개발에 참여를 했고 국내는 물론 해외로 나가 근무도 했었다. 경력이 쌓이면서 급여도 오르고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수 많은 밤샘, 흥행 실패에 대한 압박감은 사람을 지치다 못해 피폐하게 만들었다.

가장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건 "게임 하나만으로는 내가 먹고 살 수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서였다.


국내에서 직종, 분야를 바꾼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같은 IT 분야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웹과 게임은 별개의 영역이었고 게임 기획자가 웹기획으로 이직하는 건 말처럼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해외로 눈을 돌려 웹사이트를 만드는 개발사로 옮기는데 성공했다. 해외로 나가니 오히려 게임을 제작했던 이력은 플러스 요인으로 인정받았다. 한국에서는 "왜 갑자기 분야를 바꾸려고 하죠?"라는 질문들이 꼬리표처럼 이어졌지만 외국 개발사들은 "게임을 만들 줄 아니 우리 사이트에 연동되는 게임도 좀 해줄 수 있겠군요."가 됐다. 내 판단은 적중했다. 30대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국내 게임 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해외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다. 나와 같이 게임을 시작했던 기획자 동료들은 모두 아예 다른 일을 찾아 떠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는 여전히 IT 업종에서 기획자로 돈을 벌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웹에이전시 출신이 아니다 보니 전문적으로 사이트 제작을 해본 것도 아니고 독학으로 배우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았고 매번 프로젝트를 맡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상당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다.

하지만 내 기획서에 대해 그 어떤 개발자들도 "이게 무슨 기획서에요?"라고 문제를 삼은 적은 없었다.





웹과 앱을 만들면서도 또 하나의 생각에 빠졌다. 역시나 "이것만으로는 불안한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떤 기술 분야에 뛰어들어야 안정적인 40대를 준비할까에 대해 또 진지한 고민이 시작됐다.

VR에 도전할까? AR? 아니야....그냥 웹툰 작가가 될까?

그러던 중 블록체인이 떠올랐다. 블록체인을 잘은 모르겠지만 어차피 블록체인에 대해 전문가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언젠 뭐 알고 시작했나. 일단 해보자."


만들던 사이트와 게임을 서둘러 끝마친 뒤, 대표에게 찾아가 블록체인에 도전하자 설득했다.

대표는 블록체인이 뭔지도 모르던 사람이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모르는 건 배우면서 하면 되고 남들이 안 할 때 시작하는게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블록체인 분야로 뛰어들었고 큰 성공은 아니지만 가능성을 인정받는데 성공했다.

나는 이제 40대에 접어들었지만 본격적으로 블록체인 개발사에서 주요 책임자로 근무를 하고 있다.




꿈을 빨리 찾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지금의 결정에 후회는 없지만 너무 인생의 길을 빨리 정한 듯


내가 꿈을 빨리 갖거나 찾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7살 때 내 미래를 결정지은 것이다. 게임 외엔 그 어떤 직업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때는 "남자가 한번 결심한 것에 도전하는 게 멋진 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굉장히 멋진 일이지만 인생의 전반전을 살고 보니 너무 서둘러 내 미래와 인생의 길을 선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다른 분야를 생각했다면, 또는 다른 분야에서 일을 했다면...

과연 지금의 연봉, 지금의 집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일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또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곤 한다.


만약 지금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리고 아직은 잠재 가능성이 충분한 청소년들이라면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의 인생은 충분히 길진 않지만 그렇다고 매우 짧지도 않다.

하던 일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으로 제 2의 삶을 살거나 더 잘 사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한번 정한 진로를 바꾸는 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취미가 직업이 됐든 마지못해 하는 직업이든 어차피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은 똑같이 힘들고 어렵다.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면 굉장히 좋을 것 같지만 때론 혼자 심심하게 기다려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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