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어른이 된다는 것, 그리고 다시 ‘나’로 돌아가

by 자라바우

“아버지께서 다급하게 전화가 왔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으면 얼른 집으로 오라는 전화였습니다.”

말년 휴가 나온 아들 녀석을 데리러 공항에 있던 제게 날아든 한 통의 전화였습니다. 차로 십 분 거리. 아들을 태우고 급하게 핸들을 꺾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화장실에 엎드려 계셨고, 집안은 치매 환자가 한바탕 휩쓸고 간 듯 엉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떡을 드시고 갑자기 설사와 구토를 연이어 하신다며, 몸을 가누지 못해 옷에 실례까지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큰일이라도 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아들 녀석. 군대 말년이라 그런지,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어서 그런지, 적극적으로 저를 돕겠다며 나섰습니다. 하지만 차마 속옷이 벗겨진 채 변기에 엎드려 온몸에 변이 튀어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 할아버지를 도와드리라고 한 뒤, 저는 어머니 곁으로 향했습니다. 샤워기로 어머니의 몸을 씻어내기 시작했습니다. 흐느적거리는 몸을 겨우 변기에 앉힌 채 토하고 설사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은 제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소식을 듣고 누나와 매형이 도착했습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누나의 도움을 받아 함께 어머니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습니다. 설사가 멈추지 않아 급하게 아들에게 부탁했습니다. "마트에 가서 어른용 기저귀를 좀 사 와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아들은 번개처럼 마트로 뛰어갔다 돌아왔습니다.

덤덤하게 119를 불러야 한다고 말하는 매형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돈어른의 뇌출혈로 여러 번 119를 불렀고, 최근 의정 갈등으로 병원을 헤매던 경험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망설임 없이 119를 '명령조로' 외쳤습니다. 그의 말대로 저희가 직접 병원으로 갔더라면, 얼마나 기다렸을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구급대원들이 어머니를 체크하고, 병원을 수소문하는 긴박한 시간. 드디어 가까운 종합병원에서 받아준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누나와 매형, 그리고 저는 정신없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든 것이 너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다행히 급성 장염 내지는 식중독이라는 진단이었습니다. 어머님께서 드신 떡에 식중독균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몇 시간 동안 링거를 맞고 약을 투여하며 진정시킨 후, 밤 아홉 시가 되어서야 저희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건강해지신 어머님의 모습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습니다. 이제 팔순이 되신 어머니와 아버지를 앞으로도 계속 보필해야 할 시간들.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저는 누구보다 빨리 결혼하여 아버지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 되기를 꿈꿨습니다. 든든한 가장으로서 두 아이의 아빠 역할도 부족함 없이 해냈다고 자부합니다. 그렇게 20여 년을 훌쩍 넘겨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슬슬 가장이 아닌 ‘나’라는 개인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자유로운 홀가분함… 그것이 얼마나 멋진 단어입니까?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목을 잡혔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부모님께 말입니다. 솔직히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제 자유로운 삶의 발목을 부모님께서 잡으실 줄은 말입니다.

50이 넘으면 말입니다, 그동안 어깨를 짓누르던 책임감과 의무에서 좀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 저만 그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남녀를 불문하고 다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예전에 못 해봤던 것들을 실컷 해보면서 진짜 '나'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다른 지역에 가서 살아볼까, 해외에서 몇 달을 지내볼까, 아니면 하와이에서 우쿨렐레를 일 년 넘게 배워볼까? 이런 로망이 꿈틀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팔순이 훌쩍 넘으신 저희 부모님께서 말입니다, 항상 제 '자유의 발목'을 꽉 잡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없으면 병원에 모시고 가기도 힘들고, 무슨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쉽게 도움받지도 못하는 '불쌍한 노인'이 돼버리는 것이지 않습니까? 가까이에 아들 딸이 있어서 저희 부모님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만 이런 상황인 것은 아닙니다. 누나도, 매형도, 며느리도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50이 넘은 저희들은 어느덧 '부모 부양'이라는 책임감, 아니, 자식으로서의 도리라는 끈에 다시 묶여버린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서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게 빈다면 그것이 나중에 고스란히 저에게도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부모님께서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자식이나 다 똑같지 않겠습니까? 복잡한 마음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생의 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결국 저도 부모님처럼 팔순 또는 구순, 아니 어쩌면 100살이 넘는 시대까지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 부담을 제 자녀들에게 넘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불안하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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