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존재의 역사를 오래도록 즐길 수 있도록.

<미키 17> 봉준호, 2025

by 시간
on7A1aPWL36xId1ohAJUwod0lWB.jpg <미키 17> 봉준호, 2025 / 일러스트레이터 최지수 작가

미키의 상처와 죽음은 다른 이들의 기회다. 미키에게 상처와 죽음에 대한 대가를 제공하고 인류의 새로운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는 자긍심을 심어준다. 그러나 미키에게 상처와 죽음을 회복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의 신체는 완벽히 회복시켜 주지만, 그의 마음이 다시 온전해지지고 잔잔해질 시간은 그에게 제공한 대가로 대신해 버린다. 그러나 아무리 대가를 받은 상처일지라도 계속해서 쌓이면 더욱 고통스러워질 뿐이다. 그렇게 미키는 더 이상 자신의 상처가 대가로 인해 가벼워지지 않도록, 그리고 그 상처를 회복할 수 있도록 나샤와 함께 변화한다.


상처는 나의 한 부분을 삭제당하면, 스스로 삭제하면 만들어진다. 삭제당한 것이 있던 공간에 상처가 자리 잡는다. 차라리 삭제만 당했다면 다시 채우면 될 텐데, 그곳에 단단히 자리 잡은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생기고, 그 딱지가 떨어질 때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끔은 상처가 계속 흐르고 흘러서 그냥 문들어진다. 그리고 그냥 내버려 두기도 한다. 상처가 상처로 영원히 남아있도록. 상처가 영원히 눈에 보이도록.


상처를 땅을 다지 듯이 잘 다져서 삭제당한 것이 있던 공간을 다시 만들 수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상처가 묻힌 공간을 채우는 데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상처가 만들어 내고 상처를 묻기 위해 만들어낸 균열은 언제든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낼 준비가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세심하게 더욱 신경 써서 그 공간의 밀도를 채운다.


어떤 것이 어떤 방식으로 삭제되어야 그것이 진정한 상처이며 소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 확립한 자신에 대한 정의가 흔들릴 때, 그 정의의 근거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질 때 우리는 조금씩 소멸하며 소멸한 자리에는 어지럽게 뒤엉킨 상처가 나뒹굴고 있다.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는 순간에도 당신은 소멸할 수 있다. '존재한다'는 것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의 존재를 거울에 비치는 그 존재로 대체할 수 없다는 걸 당신도 알 것이라 믿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관계라는 건 단지 허상이 되며 그것은 불필요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 이 글을 쓴 나와 이 글을 읽은 당신의 관계 모두 존재의 복잡함을 인정하고 마주할 때만 이야기할 수 있다. 복잡함이 없다면 무엇이 관계를 연결하겠는가.


쉽게 소멸되고 어렵게 존재하는 우리, 쉽게 상처가 쌓여도 그것을 묻고, 그 공간을 어렵더라도 다시 채우려는 우리이다. 그렇게 어려움이 하나씩 쌓이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우리의 역사이며 존재가 존재에 대한 증명이 된다. 그리고 그 역사를 하나씩 함께 짚어나갈 때 그 증명을 하나씩 함께 살필 때 관계가 만들어진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당신의 역사이며 그 역사의 증명이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를 소중히 여길 것. 역사가 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 역사를 누군가와 오래도록 즐길 수 있도록. 그 누구도 익스펜더블은 꿈꾸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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