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네시, 260년을 관통한 시간의 향기

by M plus Paris

오늘날 서울의 가장 트렌디한 바(Bar)에서, 혹은 누군가의 견고한 장식장 안에서 우리는 흔히 헤네시(Hennessy) 라는 이름을 마주하곤 하죠. 특히 한국 시장은 2023년 한 해 동안 무려 83%라는 경이로운 성장률을 기록했어요. 이제 헤네시는 단순한 브랜디를 넘어 하나의 세련된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거죠.


하지만 우리가 잔에 따르는 그 황금빛 액체 뒤에, 한 이방인의 절실했던 망명사와 2세기를 넘긴 기다림의 철학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많지 않으실 거예요. 오늘은 그 깊은 이야기를 파리지앵의 시선으로 하나씩 풀어보려고 해요.



I. 조국을 잃은 소년, 프랑스의 전설이 되다



이야기는 1724년, 아일랜드 코크(Cork) 주의 한 가톨릭 귀족 가문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의 지배 아래 '카톨릭 형벌 법(Penal Laws)' 이라는 가혹한 탄압을 받고 있었죠. 종교적 자유는 물론 재산권까지 박탈당한 가톨릭 귀족들에게 고향은 더 이상 희망의 땅이 아니었어요.


야망 있는 젊은이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단 하나, 조국을 떠나 타국의 군인이 되는 것뿐이었죠. 리차드 헤네시(Richard Hennessy) 역시 '와일드 기스(Wild Geese)'라 불리던 망명 장교 중 하나였답니다. 그는 자유와 명예를 찾아 프랑스로 망명했고, 루이 15세 휘하의 아일랜드 여단인 '클레어 연대'의 장교가 되었죠.



image.png Portrait of Richard Hennessy in military uniform by Georges Scott Bertin


II. 이방인의 눈에 포착된 기회



1745년, 리차드 헤네시는 퐁트누아 전투에서 부상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프랑스 서부, 대서양과 인접한 샤랑트(Charente) 지역에 머물게 되죠. 온화한 해양성 기후가 감도는 이곳 코냐크(Cognac) 시를 중심으로 이미 증류주 무역이 태동하고 있었거든요.


군인으로서의 예리한 감각이었을까요? 그는 그곳의 척박한 토양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증류주, 즉 오드비(Eau-de-vie) 의 무한한 잠재력을 단번에 알아봤어요. '생명의 물'을 뜻하는 이 거친 증류주가 아일랜드와 영국, 나아가 거대한 신대륙을 연결할 '전략적 가교'가 될 것임을 확신한 거죠.


결국 1765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하우스를 설립합니다. 프랑스 토착 귀족이 아니었기에 가질 수 있었던 '이방인의 시선'은 오히려 큰 득이 되었어요. 기존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대서양 건너 뉴욕과 러시아, 아시아로 과감히 눈을 돌릴 수 있었으니까요. 메종 헤네시가 전 세계 160개국을 호령하는 제국이 된 것은, 창립자가 품었던 '망명자의 투지'가 유전자(DNA)에 박혀 있기 때문이랍니다.



image.png Interior of the Hennessy "Paradis" aging cellar, 2022. © Hennessy.


III. 럭셔리 제국의 탄생, 헤네시가 '힙'해진 진짜 이유



헤네시의 역사는 1987년, 현대 럭셔리 산업의 판도를 바꾼 거대한 사건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LVMH Moët Hennessy Louis Vuitton라는 거대 제국이 탄생한 거죠. 그룹의 공식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샴페인과 코냑의 명가인 모엣 헤네시(Moët Hennessy)와 전설적인 가죽 공예 하우스인 루이 비통(Louis Vuitton) 의 전략적 합병으로 완성되었답니다.


이 결합은 단순히 '기업의 합병'을 넘어, '가장 고귀한 시간'과 '가장 세련된 현대성'이 만난 기념비적인 사건이었어요. LVMH라는 거대한 생태계 안에서 헤네시는 전략적으로 진화했습니다.


과거의 헤네시가 '전통을 지키는 가문'이었다면, 이제는 '문화를 선도하는 글로벌 아이콘'이 된 거죠.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지휘 아래, 헤네시는 주류를 넘어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완벽히 포지셔닝 되었습니다. 특히 아시아와 미국 시장에서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코냑을 '올드한 신사의 술'에서 '힙합과 예술의 상징'으로 탈바꿈시켰답니다.



image.png Hennessy "Made for More" 2025 campaign featuring African talents. © Hennessy


image.png LVMH Headquarters at 22 Avenue Montaigne, Paris. © LVMH


IV. 찰나의 시간이 멈춘 곳, 리차드 헤네시라는 예술



메종의 정점에 위치한 제품, '리차드 헤네시(Richard Hennessy)'는 이 모든 서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어요. LVMH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 최상위 라인은 극한의 희소성 전략을 구사하죠. 40년에서 최대 200년까지 숙성된 100가지 이상의 희귀 원액을 블렌딩한 이 액체는 연간 단 12개의 티에르송(Tierçon)만 생산된답니다.


여기서 '티에르송'은 단순히 오크 통을 부르는 명칭이 아니에요. 이는 헤네시 가문의 장인들이 프랑스산 참나무로 직접 손수 제작하는 500리터 급의 역사적인 대형 오크 통을 뜻하죠. 헤네시가 보유한 50만 개의 오드비 중, 마스터 블렌더의 까다로운 선택을 받아 이 티에르송에 담길 수 있는 원액은 극히 일부에 불과해요.


전 세계를 통틀어 딱 12통 분량만 만든다는 것은, 일 년에 생산되는 병 수가 고작 수백 병 남짓이라는 뜻이죠. 약 80억 인구 중에 매년 단 몇백 명만이 이 맛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어떤 성분은 리차드 헤네시가 살아있던 1800년대 초반에 증류된 것도 포함되어 있으니, 이 한 잔을 마시는 것은 창립자와 직접 대화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그야말로 선택받은 소수만이 허락받은 '시간의 결정체'이자, 설계된 희소성의 극치인 셈이죠.


최근 이 전설적인 액체는 현대 건축의 거장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를 만나 새로운 옷을 입었죠. 날카로운 기하학적 형태의 바카라 크리스탈 디캔터는 마치 '시간의 파편'을 형상화한 듯 신비로워요. 여기에 베를루티(Berluti) 와의 협업으로 제작된 가죽 케이스가 더해지며, 리차드 헤네시는 이제 단순한 주류를 넘어 LVMH가 지향하는 '예술적 완성도'의 상징이 되었답니다.



image.png Architect Daniel Libeskind with the Richard Hennessy decanter. © Hennessy.


image.png The Richard Hennessy decanter in a bespoke Berluti leather case. © Hennessy / Berluti.


파리지앵의 시선: 기다림이라는 가장 고귀한 예술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죠. '효율'과 '속도'가 미덕인 사회에서, 200년 전의 원액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블렌딩하는 헤네시의 철학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프랑스인들의 라이프스타일 철학인 라르 드 비브르(L'art de vivre, 삶의 예술) 의 핵심은 사실 '기다림'에 있어요. 포도가 익기를 기다리고, 오크통 속에서 원액이 '천사의 몫(Angels' Share)' 을 내어주며 부드워지기를 기다리는 그 인고의 시간 말이죠.


리차드 헤네시가 전장에서 부상을 입고 요양하던 그 고통스러운 기다림의 시간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황제는 탄생하지 않았을 거예요. 결국 인문학적으로 볼 때, 럭셔리란 결핍과 고통을 시간이라는 여과기에 걸러내어 '우아함'으로 치환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우리네 삶 역시 지금의 고단한 기다림이 훗날 어떤 향기로운 오드비로 남을지, 헤네시의 한 잔을 보며 사유해보게 됩니다.



image.png Château de Bagnolet, the Hennessy private guesthouse. Photo by Antoine Bagot.


시간이 허락한 단 하나의 완벽함



260년 전 아일랜드 장교의 가슴속에 불탔던 정복의 열정은, LVMH라는 현대적 제국을 만나 전 세계인의 미각을 사로잡는 가장 우아한 위안이 되었습니다. 헤네시는 단순히 브랜디를 만드는 메종이 아니에요. 그들은 세대를 건너뛰어 대화하는 법을 알고, 찰나의 유행보다 영원한 가치를 믿는 이들의 정신적 지주인 거죠.


여러분도 오늘 밤, 잔 속에서 일렁이는 황금빛 시간의 조각들을 마주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안에는 당신이 꿈꾸는 어떤 미래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숙성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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