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데 메오의 케어링 새로운 질주
최근 명품 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뉴스가 하나 전해졌습니다. 루이비통을 거느린 LVMH와 함께 프랑스 명품계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하는 케어링(Kering) 그룹이, 프랑스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자동차 기업 르노(Renault)의 CEO 루카 데 메오(Luca de Meo)를 영입했다는 소식이죠.
패션과 자동차, 언뜻 보면 접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파격적인 조합은 사실 현대 럭셔리 산업이 마주한 냉혹한 현실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이제 명품은 단순히 디자이너의 영감(Inspiration)에만 의존하는 단계를 넘어, 초정밀 운영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고도화된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목재 거상에서 시작해 구찌, 생로랑, 그리고 최근 발렌티노까지 품에 안은 케어링의 60년사를 통해 이 질주의 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짚어보겠습니다.
케어링의 위대한 이야기는 1962년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지방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곳은 한국의 제주도처럼 독자적인 정체성이 강하고, 거친 바다를 마주한 억센 기질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죠. 창업주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는 이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목재 회사 '에타블리스망 피노'를 설립하며 비즈니스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피노 회장은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 아닙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과 고등학교 시절 동급생들의 따돌림으로 인해 16살에 학업을 중단한 그는, 장인어른의 보증으로 빌린 10만 프랑을 종잣돈 삼아 거친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나무를 사고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부실한 목재소를 헐값에 매입해 정상화시킨 뒤 높은 가치로 매각하는 '기업 회생'의 감각을 이때부터 체득했습니다. 이것이 훗날 케어링을 지탱하는 강력한 M&A 유전자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피노 회장의 시선은 나무에서 사람들의 일상으로 옮겨갑니다. 그는 1992년, 파리 쇼핑의 상징과도 같은 프랭탕(Printemps) 백화점 그룹을 전격 인수하며 프랑스 유통업계의 절대 강자로 부상했습니다. 당시 이들의 그룹 명칭이었던 PPR(Pinault-Printemps-Redoute)은 프랑스인들의 소비 생활 그 자체를 의미했습니다.
당시 이들은 명품 그룹이 아니라 한국의 신세계나 롯데 같은 소매 유통의 절대 강자였어요. 특히 카탈로그 보고 전화로 주문하던 시절 (한국 초기 홈쇼핑 같은), 통신판매업체 레두트(Redoute) 까지 갖고 있어서 프랑스 사람들 안방까지 점령했죠. 아마존이 유럽에 들어오기 전까지 PPR은 프랑스 1위,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유통 공룡이었어요.
1999년은 케어링이 명품 제국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역사적인 전환점입니다. 피노 회장은 당시 격렬한 경영권 분쟁 중이던 구찌(Gucci) 그룹의 지분 42%를 전격 인수했는데, 이때 구찌의 우산 아래 있던 전설적인 하우스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까지 함께 피노 가문의 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당시 이브 생로랑은 전설의 은퇴와 향수 사업권의 분산으로 인해 다소 혼란스러운 상태였습니다. 피노 회장은 천재 디자이너 톰 포드(Tom Ford)를 전면에 내세워 생로랑에 현대적인 관능미를 주입하는 과감한 리브랜딩을 시도했습니다. 이는 '감성'에만 머물던 패션 브랜드를 '상업적 성공'이라는 궤도 위에 올린 케어링식 명품 경영의 첫 번째 성공 사례로 기록됩니다.
M&A는 단순히 숫자의 결합이 아니라, 브랜드의 영혼을 읽고
그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타이밍을 낚아채는 예술이다.
구찌와 생로랑의 인수는 곧 프랑스 재계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명품 전쟁'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이미 구찌의 지분을 매집하며 인수를 노리고 있었고, 피노 회장의 깜짝 등장을 '약탈적 행위'라 맹비난하며 법정 다툼을 시작했습니다. 파리 법조계와 언론은 연일 두 거물의 자존심 대결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죠.
2년여에 걸친 이 전쟁은 2001년, 양측의 극적인 지분 교환으로 일단락됩니다. 피노 회장은 구찌 그룹에 대한 완전한 지배력을 확보하는 대신, 유통 부문의 일부 지분을 넘겨주는 전략적 양보를 택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명품 산업은 LVMH와 케어링이라는 견고한 양강 체제로 재편되었으며, 이는 오늘날 글로벌 럭셔리 시장의 지형도를 결정짓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5년, 아버지를 이어 수장에 오른 프랑수아 앙리 피노(François-Henri Pinault)는 더욱 날카로운 메스를 들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30년간 일궈온 유통 제국을 과감히 해체하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프랭탕 백화점을 매각하고 프낙(Fnac)을 분리시킨 그의 결정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온라인 쇼핑의 습격을 예견한 '신의 한 수'였습니다.
그는 가장 높은 가치를 평가받을 때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그 자본을 오직 명품에만 쏟아붓는 '순수 명품 그룹(Pure Player)'으로의 전환을 완성했습니다. 할리우드 스타 살마 하이액과의 결혼으로 화려한 사생활이 주목받기도 했지만, 경영자로서는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전략가임을 입증하며 케어링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2013년, 그룹은 과거의 잔재인 PPR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케어링(Kering)'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Ker'는 창업주의 고향인 브르타뉴 방언으로 '집(Home)'을 뜻하며, 여기에 진행형인 'ing'를 붙여 브랜드들이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보금자리를 표방했습니다. 브랜드 로고에 새겨진 올빼미는 지혜와 선견지명을 상징하며 그룹의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죠.
이 시기 생로랑은 브랜드명에서 '이브(Yves)'를 떼어내고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을 영입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케어링이 각 브랜드의 고유한 유산(Heritage)을 존중하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파괴적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함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이제 케어링은 단순한 지주회사가 아닌, 럭셔리 생태계를 조율하는 마에스트로로 거듭났습니다.
케어링의 영리함은 2014년 설립된 '케어링 아이웨어'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동안 명품 브랜드들은 안경 사업을 외부 전문 업체에 라이선스 형태로 맡기고 로열티만 받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케어링은 디자인부터 생산,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통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무모해 보였던 도전은 현재 연 매출 15억 유로(약 2조 원)를 상회하는 거대 신사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브랜드의 미학을 안경이라는 작은 프레임 안에 완벽하게 이식하기 위해 제조 공정까지 수직 계열화한 이 집요함은, 케어링이 추구하는 완벽주의적 전문성(Savoir-faire)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2023년 7월, 케어링은 전 세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합니다. 카타르 왕가 소유의 메이훌라(Mayhoola)로부터 이탈리아의 자존심 발렌티노(Valentino)의 지분 30%를 약 17억 유로에 인수한 것이죠. 이는 단순한 브랜드 추가를 넘어선 고도의 전략적 배치입니다.
구찌에 편중된 매출 구조를 다변화하는 동시에, 생로랑과 함께 '하이엔드 쿠튀르'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특히 2028년까지 지분 100%를 인수할 수 있는 옵션을 확보함으로써, 발렌티노를 구찌와 생로랑에 이은 그룹의 세 번째 거대 엔진으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명확히 했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영광 뒤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매출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구찌의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맥시멀리즘에 열광하던 대중은 피로감을 느꼈고, 최대 시장인 중국의 경기 침체는 직격탄이 되었습니다. 주가는 고점 대비 반토막 났고, 시장은 "구찌 없는 케어링은 존재할 수 없다"는 냉혹한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Sabato De Sarno)를 투입해 '구찌 앙코라(Gucci Ancora)' 캠페인을 펼치며 미니멀리즘으로의 회귀를 시도했지만, 실적 반등의 속도는 더뎠습니다. 이제 케어링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디자인의 변화'가 아니라, 브랜드의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할 시스템의 혁신이었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케어링은 2025년 말 루카 데 메오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듭니다. 폭스바겐에서 세아트(SEAT)를 부활시키고, 르노의 만성 적자를 단숨에 흑자로 돌려세운 '브랜드 재창조의 연금술사'가 명품 하우스의 이사회에 합류한 것입니다.
그는 자동차 산업의 초정밀 공급망 관리(SCM)와 효율적인 운영 시스템을 패션에 이식하려 합니다. 수만 개의 부품이 오차 없이 맞물려야 하는 자동차처럼, 명품 또한 디자인부터 매장 진열, 재고 관리까지 모든 과정이 공학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판단입니다. 이제 케어링은 구찌와 생로랑이라는 유려한 차체에 자동차 산업의 강력한 '효율 엔진'을 장착하고 다시 한번 속도를 높일 준비를 마쳤습니다.
창업주 프랑수아 피노가 공격적인 M&A라는 날카로운 칼로 제국의 영토를 확장했다면, 루카 데 메오의 등장은 확장된 영토 위에 가장 견고하고 효율적인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선언입니다.
현대 럭셔리 산업은 이제 신비주의라는 낭만을 넘어, 실시간 데이터와 고도화된 공급망이 승패를 가르는 '초정밀 제조 서비스업'의 영역으로 진입했습니다. 구찌의 엔진을 재설계하고 발렌티노의 쿠튀르를 시스템화하려는 이들의 도전은, 쇠퇴하는 구질서에 던지는 가장 현대적인 해법입니다.
감성이라는 유려한 외피 속에 이성이라는 차가운 엔진을 장착한 케어링의 질주는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루카 데 메오가 그려낼 '럭셔리의 공학적 부활'이 정체된 시장에 어떤 파열음을 낼지, 우리는 그 냉정한 실행의 과정을 지켜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