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원픽'한 보석, Chaumet

240년 동안 왕좌를 지킨 비결

by M plus Paris

파리 여행의 로망이 응축된 방돔 광장(Place Vendôme)에 서면, 수많은 명품 하우스 사이에서도 유독 정갈하고 압도적인 아우라를 풍기는 건물이 있습니다. 바로 12번지에 위치한 쇼메(Chaumet) 메종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주얼리를 판매하는 매장을 넘어 프랑스 황실의 역사를 보석으로 기록해온 '살아있는 박물관'입니다. 화려한 보석함의 뚜껑을 열어 그 안에 숨겨진 프랑스 근대사의 생존 전략과 장인 정신의 서사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I. 권위의 계승 : 부르봉의 유전자로 제국의 초석을 닦다



쇼메의 창립자 마리 에티엔 니토(Marie-Étienne Nitot)의 커리어는 시작부터 남달랐습니다. 그는 프랑스 혁명 이전,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전담 보석상 밑에서 도제로 수학하며 황실의 정교한 세공 기술을 몸소 익혔습니다. 구체제(Ancien Régime)의 정점을 경험한 인물이었던 셈입니다.


나폴레옹이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니토를 발탁한 것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신의 한 수'였습니다. 이는 마치 고려 왕조가 저물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세워졌을 때, 고려 왕실의 격조 높은 기물을 담당하던 장인을 조선의 새 궁궐로 모셔오는 것과 같습니다.


새로운 왕은 그 장인을 통해 전 왕조가 가졌던 수백 년의 품격과 정통성을 자신의 권위로 단숨에 흡수하게 됩니다. 나폴레옹 역시 니토를 기용함으로써 구체제의 '사부아 페르(Savoir-faire, 노하우)'를 획득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제국에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했습니다.



image.png Par Louis-Léopold Boilly — Peinture, Domaine public



II. 권력의 시각화 : 리전트 다이아몬드와 조세핀의 티아라



새로운 황제는 자신의 권위를 전 세계에 압도적으로 보여줄 강력한 '상징'을 필요로 했습니다. 니토는 1802년, 140캐럿의 전설적인 리전트(Le Régent) 다이아몬드를 나폴레옹의 대관식 검에 세팅하며 새로운 황권의 탄생을 선포했습니다.



image.png Napoleon's coronation sword © RMN-Grand Palais


동시에 나폴레옹의 영원한 뮤즈, 조세핀(Joséphine)을 위해 고전 미학을 재해석한 티아라(Diadème)를 선보였습니다. 특히 그녀의 첫 공식 행사용 디자인에 등장한 '밀 이삭(Épi de blé)' 모티프는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풍요와 평화를 상징하는 이 문양은 전쟁에 지친 민중들에게 제국이 선사할 따뜻한 미래를 암시하는 고도의 이미지 메이킹 전략이었습니다.



image.png François-Regnault Nitot, circa 1811 © Chaumet




III. 혁신의 시작 : 세계 최초의 시계와 자연주의 미학



쇼메는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1811년, 조세핀의 며느리를 위해 제작된 '팔찌 시계'는 기록상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 중 하나로 인정받으며 라이프스타일의 판도를 바꾸었습니다.


나폴레옹 시대 이후에도 쇼메는 딱딱한 대칭미를 벗어나,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식물의 곡선을 그대로 구현하는 자연주의(Naturalisme) 스타일을 정립했습니다. 금속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이들의 독보적인 세공력은 유럽 전역의 귀족들을 방돔 광장으로 불러모으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되었습니다.



IV. 예술적 성지 : 방돔 광장 12번지와 쇼팽의 선율



1812년, 쇼메은 방돔 광장에 최초로 입성한 보석상이 되었고, 1907년 현재의 본사인 12번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곳은 예술 애호가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성지와 같은 공간입니다. 바로 음악의 거장 프레데리크 쇼팽(Frédéric Chopin) 이 마지막 숨결을 거둔 역사적인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쇼메는 이 공간을 단순히 보석을 파는 곳이 아니라, 예술적 영감이 흐르는 살롱으로 보존해왔습니다. 공간이 가진 역사적 아우라를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흡수하는 전략입니다. 덕분에 쇼메는 단순한 상업 브랜드를 넘어 프랑스 문화의 자존심으로 격상되었습니다.


image.png 12 Place Vendôme (Maison Chaumet).



V. 경계를 넘는 명성 : 인도의 마하라자가 파리를 찾은 이유



1920년대 쇼메의 명성은 유럽을 넘어 아시아의 정점까지 닿았습니다. 인도의 카푸르탈라 마하라자(Maharaja of Kapurthala) 는 가문의 거대한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를 가득 싣고 직접 파리 쇼메 매장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인도 전통의 화려함과 파리의 세련된 아트 데코 스타일이 절묘하게 결합된 주얼리를 주문했고, 쇼메는 이를 완벽하게 구현해냈습니다. 이는 쇼메가 전 세계 'VVIP'들이 가장 신뢰하는 맞춤형(Sur-mesure) 하이 주얼리의 독보적인 거점임을 증명하는 명백한 사례입니다.



image.png Portraits of Maharaja Jagatjit Singh of Kapurthala and his wife Maharani Prem Kaur



VI. 제국의 현대적 부활 : LVMH와 비 마이 러브(2011)



1999년, 쇼메는 세계 최대 명품 그룹 LVMH에 합류하며 더욱 공격적인 글로벌 전략을 펼치게 됩니다. 그 정점이 바로 2011년에 런칭한 '비 마이 러브(Bee My Love)' 컬렉션입니다.


나폴레옹 황실의 문장이었던 꿀벌(Abeille)을 현대적이고 세련된 기하학적 벌집 구조로 재탄생시킨 이 시도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00년 전의 권위적인 상징을 오늘날 세대의 데일리 아이템으로 번역해낸 헤리티지 마케팅의 정석으로 평가받습니다.



Bee My Love


image.png



VII. 시대의 아이콘 : 송혜교 & 차은우가 완성한 'K-보석'



오늘날 쇼메의 서사는 아시아의 스타들을 통해 다시금 화려하게 꽃피우고 있습니다. 글로벌 앰배서더인 배우 송혜교와 차은우는 현대판 황후와 황제의 모습으로 브랜드의 위상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송혜교 씨가 착용한 '조세핀' 컬렉션은 과거의 고결한 권위를 현대적인 우아함으로 치환하며, 'K-콘텐츠'의 파급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럭셔리의 현대적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image.png 사진 출처: 보그 코리아 (Vogue Korea)



파리지앵의 시선 : 시간이 빚어낸 영원한 우아함의 전략



쇼메의 역사를 7가지 결정적 장면으로 정리하며 주목한 지점은 그들이 위기를 대하는 '유연성'입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뀔 때처럼, 정치적 격변기마다 그들은 전 시대의 정수를 흡수하여 다음 시대의 무기로 삼았습니다.


전통이란 단순히 과거를 박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항해 과거의 본질을 끊임없이 재해석하는 힘입니다. 쇼메의 서사는 현대 비즈니스 환경에서도 200년 뒤까지 살아남을 '자신만의 한 땀'이 있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효율성과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쇼메가 지켜온 이 느리고도 정교한 미학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꿀벌이 부지런히 벌집을 짓듯, 그들이 쌓아올린 시간의 층위는 그 어떤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하고 아름답습니다.



결론



화려한 쇼케이스 너머로 무심히 빛나는 보석은 침묵 속에 잠겨 있는 듯하지만, 그 이면의 서사를 읽어내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선 한 시대의 장엄한 증언으로 다가옵니다.


200년 전 나폴레옹의 손에 들린 검과 오늘날 우리 앞에 선 송혜교의 목걸이가 하나의 영혼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명품을 향유하며 그 가치를 되새기는 진정한 이유일 것입니다. 쇼메가 그려낼 또 다른 200년의 위대한 연대기는 파리의 방돔 광장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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