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을 버틴 멜레리오의 선택
‘400년’이라는 숫자는 보통 박물관의 연표나 역사책 속에서만 실감 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파리 오페라 광장에서 몇 걸음 떨어진 뤼 드 라 페(Rue de la Paix)를 걷다 보면, 무려 41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멜레리오 디 멜레(Mellerio dits Meller)의 매장을 마주하게 됩니다.그 막연했던 숫자가 쇼윈도 너머로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전통을 “과거를 고수하는 힘”이라 정의합니다. 하지만 멜레리오의 역사는 조금 다릅니다. 이곳에서 전통은 과거에 머무는 선택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지향점에 가깝습니다. 어떻게 한 가문은 왕비의 생명을 구했다는 전설 같은 우연을 시작으로, 혁명과 제정, 공화국과 글로벌 자본의 시대를 지나며 단 한 번도 이름을 바꾸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이 글은 단순히 명품 주얼리 브랜드의 연대기를 나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굴뚝 청소 소년의 선택, 왕궁 앞에서 보인 소년의 용기, 황후의 취향을 사로잡은 깃털 하나, 그리고 14대에 걸쳐 이어진 전통 까지. 멜레리오가 지켜온 시간은 곧 인생을 대하는 철학이자, 우리 삶에 깊은 통찰을 주는 교훈입니다.
멜레리오 가문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바뀐 시점은 1613년 10월 10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 역사로 치면 조선의 15대 왕 광해군이 재위 5년 차를 맞이하여 임진왜란의 상흔을 딛고 나라를 재건하던 시기이니, 그야말로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들의 역사는 흐르고 있었던 셈입니다.
당시 프랑스는 어린 국왕 루이 13세를 대신해 어머니인 마리 드 메디치(Marie de Médicis) 왕비가 섭정(Régence)을 하고 있었습니다. '섭정'이란 국왕이 너무 어리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통치할 수 없을 때, 왕족이나 신뢰받는 신하가 대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던 왕비는 멜레리오 가문이 포함된 이탈리아 출신 상인들에게 파격적인 '상업 특권(Privilège)'을 허락하는 문서에 서명합니다. 이는 길드의 엄격한 규제 없이 프랑스 전역에서 자유롭게 보석을 판매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특권을 의미했습니다. 특권이란 단순히 주어진 혜택이 아니라, 가문이 증명한 헌신에 대한 왕실의 가장 고귀한 응답이었습니다
이 기적 같은 특권 뒤에는 영화보다 더 극적인 '전설'이 숨어 있습니다. 왕궁의 굴뚝을 청소하던 멜레리오 가문의 한 소년이 벽 너머로 국왕 루이 13세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엿듣게 되었고, 이 사실을 왕실에 알림으로써 거대한 비극을 막아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서사는 멜레리오가 단순한 '보석상'이 아닌, 왕실의 생명을 지켜낸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방인 가문이 프랑스 심장부에서 생존하기 위해 구축한 이 스토리는, 400년 넘게 이어져 온 하우스의 상징적인 뿌리가 되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1777년, 프랑스 혁명의 전조가 흐르던 베르사유 궁의 아침으로 향해봅니다. 당시 12세였던 장-바티스트 멜레리오는 베르사유 궁 정문 앞에 자그마한 노점을 차렸습니다. 그가 들고 있던 것은 '마르모트(Marmotte)'라 불리는 작은 나무 보석 상자였습니다.
산책을 하던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왕비의 시선이 그 작은 상자 속에 담긴 보석들에 머물렀습니다. 12세 소년의 순수한 열정과 정교한 솜씨는 왕비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보석을 구입하며 멜레리오를 기억하게 되었고, 이후 멜레리오는 왕비의 주문을 직접 받는 왕실 전담 주얼러로 자리 잡게 됩니다. 현재도 뤼 드 라 페 매장에는 왕비의 손길이 닿았던 그 상자 '마르모트'가 소중히 보관되어 있습니다. 척박한 길 위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믿고 왕비에게 다가갔던 소년의 용기, 그것이 럭셔리의 본질인 '선택받은 자의 서사'를 완성했습니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풍요로웠던 제2제정기, 멜레리오는 또 한 명의 강력한 스타일 아이콘을 만납니다. 바로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인 외제니(Eugénie) 황후입니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에서 멜레리오는 전설적인 '공작새 깃털 브로치(Plume de Paon)'를 선보이며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실제 깃털처럼 미세하게 흔들리는 이 브로치는 당시 사교계의 모든 시선을 단숨에 빼앗았습니다. 외제니 황후는 이 작품의 독창성에 매료된 대표적인 후원자였고, 덕분에 멜레리오는 ‘황후의 주얼러’라는 명성을 얻으며 유럽 전역의 왕실로 뻗어 나갔습니다. 공작새 깃털의 눈 부분에 세팅된 에나멜과 다이아몬드의 조화는 멜레리오만의 독창적인 디자인 정체성인 '자연주의(Naturalisme)'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멜레리오의 위대함은 단순히 보석의 크기나 화려함에만 있지 않습니다. 1854년, 그들은 꽃과 식물이 자연스럽게 흔들리도록 설계된 '유연한 줄기(Flexible Stem)' 기술로 특허를 획득했습니다. 이는 보석을 멈춰있는 물건이 아닌,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 바라본 혁명적인 시각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장인 정신은 '멜레리오 컷(Mellerio Cut)'으로 그 정점을 찍습니다. 마리 드 메디치가 소유했던 ‘보 생시(Beau Sancy)’ 다이아몬드의 타원형 실루엣에서 영감을 받은 이 57면체 커팅 기법은, 400년 전 왕비가 지냈던 보석의 기억을 현대적인 기술로 되살린 멜레리오만의 독보적인 자산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이들의 방식은 브랜드가 수백 년간 생명력을 유지해 온 핵심 전략입니다.
거대 자본 그룹이 모든 브랜드를 흡수하는 요즘 명품 시장에서 멜레리오는 매우 독보적인 행보를 보여줍니다. 14대째 외부 자본의 간섭 없이 가문이 직접 경영을 이어오고 있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 경영 하이 주얼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200년 이상 된 가족 기업들로 구성된 국제 협회 ‘에노키앙(Les Hénokiens)’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경영이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가문의 이름과 명예를 다음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는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Savoir-faire, 노하우)'의 전수 과정입니다. 14대 수장 로르-이자벨 멜레리오(Laure-Isabelle Mellerio)는 예술사학자로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가문의 역사적 유산(Archive)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며, 독립 경영만이 가질 수 있는 진정성을 브랜드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멜레리오의 영향력은 과거의 궁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1956년 상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축구 선수들의 최고 영예인 ‘발롱도르(Ballon d’Or)’ 트로피를 제작하는 곳이 바로 이들의 공방입니다. 황동을 두드려 황금 공을 만드는 장인들의 정교한 손길은 최고의 성취를 거둔 영웅들에게 바치는 멜레리오만의 경의입니다.
또한 일본 황실의 마사코 황후가 공식 석상에서 멜레리오의 시계를 착용하는 사례는, 서구의 전통이 동양의 품격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413년 전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 가문이 세운 이 주얼리 하우스는 이제 국경과 분야를 넘어 '최고의 순간'을 빛내는 글로벌한 위상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멜레리오 디 멜레의 413년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에 마주하게 됩니다. 과연 무엇이 이 가문을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그리고 무엇이 여전히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가 하는 물음이죠.
그 답은 화려한 다이아몬드의 광채나 '왕실 납품'이라는 타이틀에만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세기 동안 반복되어 온 ‘서두르지 않는 선택’, 그리고 거대 자본의 유혹 앞에서도 가문의 이름과 철학을 먼저 세웠던 고집스러운 태도에 있습니다. 프랑스식으로 말하자면, 이는 단순한 비즈니스 전략이 아니라 L’art de vivre, 곧 삶을 대하는 방식 그 자체입니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을 견뎌내는 '지향점'은 어떤 자본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귀한 영역입니다. 멜레리오의 보석이 우리에게 이토록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수많은 시대의 불안과 파괴적인 변화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인간의 결연한 선택이 그 속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효율과 속도가 모든 가치를 판단하는 유일한 잣대가 된 이 시대에, 멜레리오는 여전히 단 한 점의 보석을 위해 수십, 수백 시간의 정직한 손길을 허락합니다.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가장 빠르게 ‘영원’이라는 가치에 도달합니다.
결국 멜레리오의 413년은 자본의 속도전 속에서도 정체성을 지키는 독립 경영과 장인 정신이 어떻게 독보적인 유산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증적인 기록입니다. 400년 전 시작된 이들의 서사는 효율보다 본질을 선택한 결과가 일구어낸 시간의 승리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