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풍자 만화가이자 사실주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시대의 거인

by M plus Paris

예술의 시선이 화려한 궁전이나 신비로운 신화의 세계에만 머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두 발을 거칠고 축축한 파리 뒷골목의 현실에 굳건히 딛고 선 예술가가 있었습니다. 시사 풍자 만화의 아버지이자, 단 한 순간도 시대의 아픈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사실주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입니다. 그는 화려한 유화 물감 대신 검은 잉크가 묻은 석판화 연필을 들고, 우리 곁의 이웃들이 살아가는 민낯을 가장 적나라하게, 그러면서도 가슴 시리도록 따뜻하게 기록했습니다.


960px-Honore_Daumier-Nadar.jpg?type=w966 Nadar, Honoré Daumier, photographie, Paris, BnF.



시대의 목격자, 펜을 든 혁명가의 탄생


도미에의 드라마틱한 여정은 1830년, 혁명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파리의 거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프랑스는 '시민왕'이라 불리던 루이 필리프(Louis-Philippe)가 다스리고 있었지만, 민중이 갈망했던 진짜 자유는 여전히 멀기만 했습니다. 이때 도미에는 당시의 핫한 잡지였던 '라 카리카튀르(La Caricature)'와 '르 샤리바리(Le Charivari)'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가 선택한 무기는 당시 최신 인쇄 기술이었던 석판화(Lithographie)였습니다. 돌판에 직접 그림을 그려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이 기술은, 값비싼 그림을 살 수 없던 평범한 시민들에게 예술을 전달하는 가장 완벽한 수단이었습니다. 신문을 통해 파리 전역으로 퍼져나간 그의 그림은 오늘날의 SNS 피드처럼 순식간에 여론을 움직였습니다. 도미에는 매체의 특성을 꿰뚫어 보고 대중과 소통한, 시대를 앞서간 최고의 콘텐츠 전략가였습니다.


Unknown_Artist_-_Printing_in_France_in_the_19th_century_Chromolithography_of.jpg?type=w966 Printing in France in the 19th century
kiosques-journaux-paris-anciens-e1497197457611.jpg Paris Newspaper Kiosk




권력의 심장을 겨냥한 '배 모양 왕'과 가르강튀아의 진실


도미에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사건은 루이 필리프 왕과의 정면 승부였습니다. 그는 1831년작 '가르강튀아(Gargantua)'에서 왕을 세금을 집어삼키는 탐욕스러운 거인으로 묘사했습니다. 가난한 민중들이 자신들의 전 재산을 바구니에 담아 왕의 입으로 향하는 경사로에 쏟아붓는 장면은 당시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의 진짜 '사이다' 같은 풍자는 왕의 의자 밑에 숨겨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왕이 앉아 있는 의자는 사실 '변기'입니다. 왕이 삼킨 금전들은 배설물이 되어 쏟아져 나오는데, 그것들은 민중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기득권층을 위한 문서와 훈장 더미였습니다. 그 아래에서 아첨꾼들이 그 배설물을 하나라도 더 건지려고 눈을 번뜩이는 모습은 권력의 추악한 속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작품 때문에 도미에는 왕을 모독했다는 죄명으로 감옥 신세를 지게 되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시대의 거인'으로 각인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도미에가 루이 필리프의 얼굴을 '배(Poire)' 모양으로 그렸다는 것인데, 프랑스어에서 배는 '바보'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이 이미지는 오늘날의 짤(Meme)처럼 유행하며 왕권을 조롱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1280px-Honor%C3%A9_Daumier_-_Gargantua.jpg?type=w966 Gargantua (1831), caricature de Louis-Philippe
philipon_les_poires.jpg?type=w966 Louis Philippe Pear Shape



법복 뒤에 숨은 위선을 파헤치는 '인간 희극'


1835년, 정부의 검열이 심해지자 도미에는 정치 풍자 대신 사회 전반의 부조리로 눈을 돌립니다. 특히 판사나 변호사 같은 법조인들의 이중성을 다룬 '법조인들(Les Gens de Justice)' 시리즈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입니다. 피고인의 절박함에는 관심 없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판사,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며 뒤로는 자기 이익만 챙기는 변호사의 생생한 표정은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이런 풍경은 200년 전 파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이나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법조문이라는 겸고한 방패 뒤에 숨어 진실보다는 그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씁쓸한 공감을 느끼게 됩니다. 도미에는 단순히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허영을 꿰뚫어 보는 사회학자의 눈을 가졌던 셈입니다. 문학 거장 발자크가 추구했던 인간 희극(Comédie Humaine)을 그는 붓끝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냈습니다.


Honore_Daumier_-_Cartoon_by_Daumier_Serie_Les_Gens_de_justice_published_in_C.jpg?type=w966 Cartoon by Daumier : Serie “ Les Gens de justice” published in “Charivari”
image.png An advocate who is evidently fully convinced. From the Series Les gens de justice, 1845
960px-Liberal_Wars.jpg?type=w966 Caricature sur la guerre portugaise

1280px-Honoré_Daumier,_La_Cour_du_Roi_Pétaud_(The_Court_of_King_Pétaud)_(1832),_hand-coloured_lithograph,_24.6_x_50_cm.,_British_Museum,_London.jpg The Court of King Pétaud (1832), hand-coloured lithograph, 24.6 x 50 cm., British Museum, London:


960px-Honoré_Daumier,_A_literary_discussion_in_the_second_Gallery,_published_in_Le_Charivari_(1864),_lithograph.jpg A literary discussion in the second Gallery, published in Le Charivari (1864)


거인의 시련: 무너지는 건강과 고단한 삶의 무게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펜을 휘두르던 거인이었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 못했습니다. 도미에는 평생 빚에 허덕였고, 형편이 어려울 때면 집안의 낡은 가구까지 팔아야 했습니다. 쉰두 살이 되던 해에는 수십 년간 몸담았던 잡지사에서 "대중의 인기가 시들해졌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가장 큰 시련은 눈이었습니다. 예리하게 세상을 살피던 그의 시력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고, 결국 말년에는 앞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도 프랑스는 '파리 코뮌'과 같은 격동의 시기를 지나며 수많은 민중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한번 도미에의 시원한 고발을 기대했을지도 모르지만, 눈이 멀고 쇠약해진 그는 더 이상 민중의 애환을 그림으로 풀어낼 힘이 없었습니다. 야성적이었던 예술가도 흐르는 세월과 노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요.


960px-Honore_Daumier_The_Uprising.jpg?type=w966 L'Émeute (après 1848)
960px-Honor%C3%A9_Daumier_035.jpg?type=w966 Les Avocats, Lyon, musée des beaux-arts.

Daumier_République.jpg The Republic (1848), oil on canvas, 73 x 60 cm., Musée d'Orsay, Paris
Don_Quichotte_Honor%C3%A9_Daumier.jpg?type=w966 Don Quijote and Sancho Panza (c. 1868), Neue Pinakothek, Munich
960px-Le_Malade_imaginaire.jpg Le Malade imaginaire (1860-1862), Philadelphie, Philadelphia Museum of Art.
1280px-Les_Fugitifs-Honore_Daumier-IMG_8326.jpeg?type=w966 The Fugitives (c. 1850–52), plaster, 32.2 x 45.8 cm., Musée d'Orsay, Paris
500px-Honor%C3%A9_daumier,_le_celebrit%C3%A0_dell%27Aurea_mediocritas,_terracotta,_1832.jpeg?type=w966 Clément François Victor Gabriel Prunelle
500px-Honor%C3%A9_daumier,_le_celebrit%C3%A0_dell%27Aurea_mediocritas,_terracotta,_1832.jpeg?type=w966 Antoine Odier: from the series Célébrités du Juste Milieu



마지막 자존심: 낮은 곳을 향한 고결한 신념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서야 세상은 뒤늦게 그의 예술성을 인정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국가 최고의 영예인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 훈장을 주려 했지만, 도미에는 이를 두 번이나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권력을 비판해 온 자신이 권력이 주는 훈장을 받는 것은 평생의 신념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높은 곳이 아닌,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 '낮은 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다행히 동료 화가 카미유 코로(Camille Corot)가 그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몰래 집을 선물하는 등 따뜻한 우정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덕분에 그는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며 파리 교외의 화실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파리지앵의 시선: 우리 시대에 필요한 '선한 거인'



여기 한 명의 선한 인간이자 위대한 미술가, 최고의 시민이었던 도미에가 잠들어 있다.



도미에가 떠난 날, 그의 비문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졌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미디어에서 날카로운 풍자 이미지를 접할 때, 200년 전 석판화 연필을 쥐고 권력의 민낯을 파헤쳤던 한 예술가의 용기를 떠올려봅니다. 도미에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린 화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침묵할 수 없었던 시대의 양심이었고, 외면할 수 없었던 현실의 기록자였습니다.


눈이 멀어가는 순간까지도 아래를 향했던 그의 시선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를 보고 있습니까? 권력의 화려한 응접실입니까, 아니면 민중의 삶입니까?"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민중의 곁에 섰던 오노레 도미에. 파리의 뒷골목에서 시작된 그의 외침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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