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기억에 대하여
순간에 머무는 기록보다는 매순간 되새김질 할 수 있는 기억이 낫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사실 주로 그랬다.
‘기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한 번이라도 정제하여 ‘글’이라는 도구로 구태여 ‘기록’해야 한다는 것 자체도 부담이겠거니와
그냥 부담을 핑계 삼아 형이상학적으로 도피하려는 나태한 속내가 컸다.
물론 근 몇 년 간 기록을 위한 기록이 사치로 여겨졌던 시절을 보낸 연유도 있겠지만.
이유를 위한 이유 같지 않은 이유는 오늘도 끝이 없다.
‘활자’에 대한 애증이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어느 가정이 그렇듯 어려서 위인전을 위시한 고전들을 읽도록 부모님께 추천 받았지만
어린 마음에 아로새길 정도로 읽을 책은 60권으로 된 만화 삼국지 정도.
그 마저도 집에 없어 도서관 또는 친구들에게 빌려 읽곤 했었고
- 그 시절엔 만화 삼국지 있는 친구가 그렇게 부러웠었다. 그리고 나와 자녀를 위해 미리 황석영 삼국지를 구비해놨지롱 -
언젠가 집 안을 둘러보니 책장이 있는 곳은 - 약간의 책을 지닌 동생 방과 - 내 방 뿐이었다!
대학생이 된 후 같은 서울에서도 통학시간이 멀다는 연유로 - 왕복 3시간 가까이. 사실 이 정도면 대전도 간다 -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오가면서 많은 책들을 읽었드랬다.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삼국지, 초한지, 열국지, 서유기등 중국 기전은 물론
이외수나 김진명으로 위시되는 국내 대표작가들 책부터
당시에는 - 물론 지금도 좋아하지만 - 특히 좋아하던 하루키 책들까지.
아무 생각 없이 ‘무라카미’만 보고 빌리다가 ‘무라카미 류’씨 책도 읽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득한 리만브라더스 부도 전 747 시절.
평소처럼이나 썰이 길었다.
좋아했던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드는 아쉬움이 조만간 휘발되는 아쉬움을 아끼고자
‘기억’에 의지하지 않고 ‘기록’해보겠다는 에필로그를 이렇게나 둘러둘러 풀어대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