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끝판왕을 찾아내는 능력과 그 과정도 다 '멋' 이다
멋을 부리려면 시간도 투자해야 하지만 돈도 어느 정도 투자해야 합니다. 기본으로 갖춰야 할 것은 있지 않겠습니까? 야구를 즐기려면 방망이와 글러브 정도는 있어야 하고, 홈 카페 하려면 적어도 커피 머신은 사야 되는 거죠. 물론 등산처럼 별도의 비용 투자가 없어도 할 수 있는 게 있긴 합니다만 웬만한 것은 비용이 수반될 것입니다.
하지만 돈을 많이 쓴다고 해서 폼이 나고 멋이 나는 것은 단연코 아닙니다. 검색해 보니 슈퍼 프리미엄급 헤드폰 중에서는 500만 원이 넘는 것도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돈을 쓰면 음악 감상에 있어 최고의 멋을 갖췄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돈값(?)은 좀 할 거라고 생각은 듭니다만, 백이면 백 사용자의 역량이 제품의 품질에 크게 미달하지 않을까 합니다. 비싼 걸 쓸 줄 모를 거라는 거죠.
'졸부(猝富)' 라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사람을 말하죠. 그런데 이 '졸' 이라는 글자가 '옹졸할 졸(拙)' 자를 떠올리게 합니다. 부자이긴 한데 옹졸한 사람인 것이죠. 수백만 원짜리 옷, 수천만 원짜리 가방, 수억 원짜리 자동차, 이런 걸 갖춰도 '멋푸어' 티를 못 벗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 많이 쓰면서 멋도 못 내는 사람은 멋푸어를 넘어 '꼴불견' 일 뿐입니다.
(* 단양 구인사의 '대조사전' 은 황금기와에 금가루 단청까지 들어간 높이 27m의 거대한 건물입니다. 어떠십니까. 우리나라 불교 건축물 중 최고의 멋이라고 느껴지십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선 헤드폰 또는 이어폰의 예를 들어봅니다.
일단 본인이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의 범위를 정합니다. 10만 원 미만에서 해결할 것인지, 20만 원 미만에서 해결할 것인지, 20 이상을 쓸 것인지를 정합니다.
그다음에 용도를 고려해서 제품군을 좁힙니다. 집에서 쓸 것인지 포터블(휴대용)로 쓸 것인지 정하고, 집에서라면 모니터용인지 감상용인지, 포터블이라면 이동 중에 들을 것인지 운동 등 격한 활동 중에 들을 것인지, 외부에 소음이 새도 되는지 최대한 줄일 것인지(밀폐형/개방형), 만약 음악 감상이라면 주로 듣는 장르는 무엇인지 등을 고려해서 필요한 제품의 특성을 좁혀 놓습니다.
이후에는 그 특성에 맞는 제품들을 찾아서 세부 스펙을 하나하나 훑어봅니다. 당연히 세부 스펙의 의미는 미리 공부해야겠죠? 정격 출력, 주파수 응답, 감도 이런 데이터를 읽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후보군을 추리고 나면 이용자들의 평을 충분히 모니터해서 O.X를 쳐나갑니다.
*정격 출력(root mean square, RMS) : 앰프나 스피커 등에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신호로 내보낼 수 있는 평균 출력. 스피커가 순간적으로 낼 수 있는 최대출력을 뜻하는 '순간 최대출력(peak music power output, PMPO)' 과 구분됨.
*주파수 응답(frequency response) : 진폭이 일정한 여러 주파수의 입력 신호가 장치에 들어왔을 때 이를 얼마나 잘 재생하는지 측정한 것. 어느 음높이(주파수)의 신호라도 균일하게 재생하는 것이 이상적이나 실제로는 음높이에 따라 재생의 크기가 달라지는데 그것을 표시한 것임.
*감도(sensitivity) : 똑같은 신호를 받았을 때 얼마나 큰 전기적 신호로 바꿔 재생하는지를 나타냄. 감도가 낮으면 볼륨을 크게 올렸을 때 잡음이 더 많이 섞이게 됨.
'뭐 대충 사람들 평 좋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시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집에서 쓸 거라면 굳이 블루투스를 쓸 필요가 없으니 음질이 좋은 유선이, 포터블이라면 당연히 거추장스러운 유선보다는 블루투스가 낫겠죠. 만일 블루투스라면 통신에 문제가 없는 제품인지 꼼꼼히 이용자평을 살필 필요가 있고, 특히 운동 중에 들을 거라면 잃어버리지 않도록 귀걸이 형도 고려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또 유튜브 등의 모니터 용도라면 사람의 목소리 음역대인 중고음 대를 선명하게 내는 녀석을, 음악 감상용이라면 고음과 저음 양면에서 모두 풍부하게 내는 녀석을 고르고, 특히 클래식이라면 음역대도 넓은 녀석을 골라야 할 겁니다.
물건 하나 고르는 데도 참으로 품이 많이 들어가는, 참으로 피곤한 인생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좋아하고 집중하는 것이라면 이와 같이 깐깐하게 물건 하나하나를 고르는 과정도 즐거움이고 멋이 됩니다.
옷이나 전자제품 등을 살 때 발품을 팔면 팔수록 더 싸고 좋은 걸 살 수 있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앞선 글에서 멋을 위해서는 수고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렇게 아이템을 구비할 때에도 수고를 해야 더 효율적인 제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고민해서 고르면 10만 원도 안 하는 헤드폰이라도 주변에서 엄지 척을 올려주게 됩니다.
(* 처음부터 내 맘에 쏙드는 집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건축사가 많은 비용을 들여서 지어준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죠.)
* 출처 : Pixabay / Vic_B.
'난 여유 있으니 처음부터 충분히 쓰겠다' 라고 하실 수 있겠는데 이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처음에 '저렴이' 로 시작해서 감을 잡고, 그다음에 '입문용' 을 거쳐 '준전문가용', '전문가용' 으로 확대해야 더 내공이 강해집니다.
전원주택을 짓는 경우를 예로 들어 봅니다. 처음부터 수십 억의 건축비를 들여 집을 지었다고 그 집이 '멋진' 집이 된다는 보장은 단연코 없습니다. 멋에는 개인 취향이 필요한 법이고 특히 집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한데, 이러한 것은 아무리 전문 건축사가 지어준다고 해서 100% 충족되는 것이 아닙니다. 뭔가 내 기호에는 안 맞는 부분이 몇 가지 존재하는 것이죠.
그래서 전원주택을 짓기 전에 전세로 한번 살아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일단 살아보고 본인과 가족이 전원주택 생활에 잘 맞는지 아닌지부터 느껴보라는 것입니다. 수억을 들여 집을 사거나 지었는데 전원생활 자체가 싫어졌다고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 일단 먼저 살아보라는 것이죠.
이렇게 살다 보면 뭔가 부족하고 필요한 부분을 계속 알게 됩니다. 1, 2층을 오픈시켜 천정을 높게 했더니 냉난방비가 살인적이더라, 비가 올 때마다 앞마당이 진흙탕 돼서 너무 불편하더라, 건축비를 줄이려고 2층으로 지었더니 생각보다 조망이 안 나오더라, 1층에 거실을 넓게 했더니 웬만한 물건을 가져올 때에도 위층에 갔다 와야 하더라 등의 문제점을 직접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예로 든 헤드폰도 그렇습니다. 음질만 생각해서 샀더니 소리가 너무 새서 불편하더라, 저음이 너무 세서 이퀄라이저를 써야 고음대를 커버할 수 있더라 등의 문제점과 마주할 수도 있겠죠. 무엇보다 더 '고급' 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면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생각이 달라집니다. 헤드폰 앰프라는 게 있고, 오디오 믹서가 있고, 블루투스 송수신기가 있고 이런 것들을 알게 되면,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헤드폰에 대한 기호가 또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퀄라이저(equalizer) : 오디오 신호의 전체적인 주파수 특성을 보상 조절하기 위한 회로 장치 또는 기능을 말함. 원래는 장비의 주파수 응답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 고르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으나, 일부러 특정 음역대를 강조하기 위해 쓰기도 함.
*헤드폰 앰프(headphone amplifier) : 헤드폰·이어폰 등의 부족한 감도를 보완하기 위해서 쓰는 소형 증폭기(앰프). 초소형 제품의 경우에는 리모트 컨트롤 기능도 할 수 있음.
*오디오 믹서(audio mixer) : 다수의 입력 신호를 하나의 신호로 섞는(mix) 장비. 많게는 수십 개의 마이크와 여러 개의 음원을 소리 크기를 조절하여 하나로 묶어주는 전문 장비로 '오디오 콘솔(console)' 이라 부르기도 함.
*블루투스 송수신기(bluetooth transceiver) : 블루투스 통신이 안 되는 컴퓨터 등을 블루투스 기기와 연결시킬 수 있게 하는 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