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결정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날 때 새로운 '멋' 이 생겨난다
앞선 글들을 종합하면 멋을 위해서는 부단히 부지런해야 하고, 의도적으로 꾸준히 찾아야 하며, 짧은 시간이라도 허투루 쓰면 안 되고, 끊임없이 정보와 아이디어를 모아야 합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피곤한 인생을 주문하는 셈입니다.
이렇게 철두철미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보면 '멋져' 보이십니까? 솔직히 밥맛이죠. 주변하고 어울리지 못함은 물론, 나아가 자기 밖에 모르는 재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 '멋' 이 아닙니다. '멋' 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는 주변과의 '조화' 입니다. 자연환경뿐 아니라 사회 및 주변인들과도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러려면 가끔은 여백과 일탈을 주어야 합니다.
* 출처 : Unsplash / Amy Rollo , 볼리비아의 Uyuni 소금 사막.
동양화에서 여백은 결코 '빈 공간' 이 아닙니다. 몰라서 또는 귀찮아서 안 그리는 게 아니죠. 비어 있는 곳을 채우는 것은 보는 사람의 상상력입니다. 마치 포토샵 편집을 하듯, 영상에서 크로마키를 활용하듯, 여백은 비어 있기에 더 많은 것으로 채울 수 있고 공간의 경계는 허물어집니다. 그린 사람과 보는 사람이 같이 그림을 완성한다고도 볼 수 있죠.
*크로마키(Chroma-key) : 두 화면을 합성하는 영상 편집 기술. 초록색이나 파란색 단색 배경 앞에서 촬영을 하고, 편집 시 뒤 단색 배경을 다른 영상으로 대체하는 것을 말함.
이러한 동양 철학적 개념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무조건 채운다고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죠. 이러한 예는 일상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문서 작성을 생각해 봅니다. 줄마다 글자가 빽빽하게 쓰여 페이지 전체가 가득 찬 문서를 보면 어떠합니까? 무슨 말인지 보이지도 않을 겁니다. 모든 글자가 Bold 처리돼 있고 무지개색 총천연 컬러가 가득 찬 문서는 어떠십니까? 눈이 아파 보기도 싫겠지요.
집 정리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인테리어의 완성은 비우기에 있다고 하죠. 없으면 없을수록 집이 더 깔끔하고 예뻐집니다. 마음에 든다고 집에 계속 물건이나 가구를 사서 채워 넣으면 집은 쓰레기 창고가 될 뿐입니다.
정해진 패턴이나 룰을 지키는 것을 흔히들 '원칙대로'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원칙에는 당연히 예외가 따릅니다. 예외 없는 원칙은 오히려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구속합니다. 이것은 '멋' 이 아니죠.
연애를 예로 들어 볼까요? 아무런 대책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은 참으로 만나기 싫을 것입니다만 그렇다고 정반대로 모든 것이 철저히 계산된 시나리오로 움직이는 사람은 더 밥맛입니다. 가이드라인 딱 쳐 놓고 철통 방어하는 사람은 매력 없지 않겠습니까? 가끔 망가지기도 해야 매력이 있죠.
영업도 그렇습니다. 무슨 사람 간 보듯이 input-ouput 을 철저히 계산하며 접근하는 사람, 추가 비용 나오면 따박따박 다 받아가는 사람이 영업 잘한다고 볼 수 없죠. 가끔은 추가 서비스도 주고 손해도 감수하고 하는 사람이 더 훌륭한 영업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악으로도 예를 들어 봅니다. 클럽 등에서 많이 나오는 EDM 뮤직은 대체적으로 빠르고 강력한 비트가 특징인데, 그렇다고 'Raw Techno' 처럼 빠르고 강한 비트를 똑같이 주구장창 깔면 이는 오히려 소음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물론 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그래서 '트랜스' 같이 이러한 주제 비트를 계속 변화도 시키고 때로는 비트 전체를 소거도 시키며 소위 '들었다 놨다' 하는 음악이 더 흥이 나고 카타르시스도 가져옵니다.
*EDM(Electronic Dance Music) : 말 그대로 전자 악기로 만들어진 댄스 음악. 테크노, 하우스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
*테크노(Techno) : 1990년대에 하우스(House)와 함께 EDM을 독립된 인기 장르로 만든 EDM의 대표. 멜로디 라인은 가급적 배제하고 단순하고 강력한 비트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주제를 반복하는 것이 특징. 'Raw Techno' 라는 장르는 보통 통용되는 개념은 아니나, 주제의 단순 반복이 일반 테크노보다 보다 강한 음악을 말함.
*트랜스(Trance) : 테크노에서 발전된 EDM으로, 좀더 빠른 비트와 적극적인 멜로디 라인 사용, 그리고 말 그대로 '몽환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며, 특히 Intro-Breakdown-Climax-Outro 의 기승전결 4단계를 따르는 경우가 많음.
(* 멜로디 라인은 단순해 보이지만 반주 파트의 리듬 변화가 굉장히 다이나믹한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 출처 : Hans Zimmer / Jarrod Radnich - He`s A Pirates (arr.mpd) 악보.
앞서 '멋' 은 의도적인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이렇게 의도적으로 '멋' 을 찾다 보면 본인만의 루틴과 공식이 생깁니다. '이렇게 해야 멋있다' 라는 게 잡히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반복되면 오히려 거꾸로 행동규범처럼 나를 구속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여백과 일탈을 역시 '의도적으로' 해야 합니다. 집 정리를 예로 들면, 보통은 마음에 드는 물건이나 옷을 계속 사들이게 되는데 그러면 집에는 계속 물건이 쌓입니다. 그러면 집의 공간은 계속 줄어만 가고 청소하기만 더 힘들어집니다. 이럴 때 가끔 이런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 옷의 30%는 무조건 버린다'.
일탈도 예를 들어봅니다. 퇴근길에 항상 미리 내려서 2~3km 정도 걸어서 집에 오는 '루틴' 이 있지만 가끔씩 그 걷는 길을 (돌아오더라도) 집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바꾸는 것, 집에 오기 전에 검도장에 들러 운동하는 '루틴' 이 있지만 가끔씩 이를 깨고 고칼로리로 무장된(?) 술자리를 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저 옷들이 모두 얼마치인데...', '오늘 하루 먹으면 일주일 운동한 게 다 날아간다' 이런 계산을 하면 이런 여백과 일탈은 어려워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엇나가는 결정에 거리낌이 없는 그 자세, 이것이 의도적인 여백과 일탈입니다. 특히 누군가 옆에서 '오늘 치맥 벙개 어때?' 라고 했을 때 별 계산 없이 '좋지!' 로 받아주는 그 맛, 그게 바로 '멋' 아닐까요?
(* 물론 이러한 여백과 일탈을 위해서는 평소에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겠습니다. 회사를 관두고 몇 개월 세계여행이나 먼곳살이를 하려면 사후에 대한 대책을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하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본인이 만든 '멋' 에 대한 레시피를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변화에의 의지죠. 멋있어지겠다고 만든 루틴에 본인이 구속되는 삶은 불행한 것입니다. 본인이 알고 믿었던 게 항상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열려있는 자세, 나아가 고인 물은 썩고 정체하면 도태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새로운 '멋' 을 추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