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트> (2025)

시험당한 것은 '인간의 한계'가 아닌 '나의 기대'였다...

by HeeHee

요즘 꽤나 볼만한 예술 영화(그러니까 마이너 한...)들을 배급하는 배급사 찬란에서 수입한 영화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홍보가 시작되고 나서야 이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스페인 영화인 데다가 감독이나 배우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고, 포스터도 그냥저냥이고... 딱히 끌릴 말한 요소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로 다음 홍보 문구 때문이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경험할 것”,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광기”. 아니,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게다가 사운드가 매우 중요한 영화라니. (정식 개봉 전부터 일부 아트영화관에서 레이브 파티도 열고 마케팅이 꽤나 적극적이었다.) 기왕 생소한 김에, 차라리 사전 정보를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극장에서 확인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뭐, 오스카에서 음향상 후보에 올랐다는 정도만 간단히 찾아봤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듣보... 느낌의 영화를 굳이 영화관에서 돈 주고 보기는 싫었기에.)


sirat-poster-5_goldposter_com_.jpg 휴... 아무리 봐도 끌리지 않는 이 포스터 이미지... ㅠㅠ

영화의 내용은 꽤나 간단하다. 어느 날 레이브 파티에 간 딸의 소식이 끊긴다. 아버지 루이스(세르지 로페즈)와 아들 에스테반(브루노 누녜스)은 레이브 파티가 열리고 있는 모로코 사막으로 딸을 찾으러 떠난다. 동시에 전쟁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군인들은 레이브 파티를 중단시키고 사람들을 피신시키려 하지만, 일부 무리는 또 다른 레이브 파티를 향해 군인들의 보호에서 탈출한다. 루이스와 에스테반은 딸을 찾기 위해 그 무리를 따라가며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잠깐 이야기가 새지만, 사실 영화관에 앉기까지 일정이 매우 빡빡했다. 아침에 테니스를 치고, 끝나자마자 전날 방문한 카페에 두고 온 지갑을 찾아오고, 급히 햄버거로 점심을 때운 후 영화 시작 시간에 맞춰 영화관에 착석. 맨 처음 테크노 음악 나올 땐 '오... 역시 신나는 음악이 역시 깔고 가는 영화인가?!' 잠시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 음악은 곧 잦아들었다. 남은 것은 사막에서의 질주와 여정. 갑자기 피로가 밀려온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레이브 파티로 향하는 인물들의 여정이 생각보다 잔잔해서였는지... 중간중간 눈이 감겨왔다.


그렇게 힘겹게 영화를 따라가던 중, 정말로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나타났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어,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갑작스러운 전개가 있었고, 잠시 후 그런 순간들이 또 이어졌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영화가 끝난 후 남은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그냥 이렇게 끝나...?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영화를 다 본 후 돌이켜보니, 마케팅에서 강조된 음악도 사실 그렇게 주된 요소가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시라트>의 가장 큰 문제는 영화 그 자체보다, 영화 바깥에서 만들어진 과대광고에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경험할 것”,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광기”라는 홍보 문구는 관객에게 극한의 정서적 체험이나 파괴적인 서사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가 실제로 보여주는 것은 광기라기보다 정제된 침묵에 가깝고, 한계를 시험한다기보다는 그 언저리를 맴도는 관조다. 문제는 이 차이다. 영화가 부족하다기보다, 약속한 것이 너무 컸다. 결과적으로 나는 관객으로서 영화와 싸우는 게 아니라, 내가 품었던 기대와 싸우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기로 선택한 내 결정에 대한 합리화를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이건 작품의 실패라기보다 마케팅의 과욕이다.


사실 이런 글을 쓰면서 마음이 온전히 편치는 않다. 요즘 가뜩이나 영화 시장이 어렵고, 기왕이면 나도 우리나라 배급사들이 고생고생해서 수입해 온 작품들을 관객들이 많이 봐서 영화 관련 산업이 조금씩 더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왕 내 돈을 주고 보는데 이렇게 홍보에 속아 기대치에 못 미치는 작품을 보면 허탈감이 들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이 아니지... 물론 이런 괴리는 <시라트>만의 문제는 아닐 거다. 최근 예술영화 마케팅은 작품의 실제 결보다,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센 말’을 먼저 내세운다. 침묵과 관조의 영화에도 ‘광기’와 ‘한계’를 덧씌우고, 느린 영화에도 ‘충격적 체험’을 약속한다. 그 결과 관객은 영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홍보 문구가 만들어낸 가상의 영화와 비교하며 보게 된다. 기대가 높을수록 실망도 큰 법. 문제는 관객의 이해력이 아니라, 작품의 성격을 정직하게 소개하지 않는 태도다. 예술영화가 살아남기 위해 과장이 필요하다는 현실은 이해되지만, 그 과장이 영화를 먼저 배신하는 순간,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건 결국 작품 자신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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