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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결산

총 33편 감상

by HeeHee

앞서 기록한 빔 밴더스의 영화들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뭔가 할 말 있는(?) 영화들에 대해 기록해 본다.


노스페라투 (로버트 애거스, 2024)

노스페라투 (출처: 네이버 영화)

연말연초에 미국에 놀러 갔다가 별생각 없이 상영 중이던 이 영화를 보았다. 딱히 사전 정보도 없었고(나중에 찾아보니 1922년에 개봉한 <노스페라투>의 두 번째 리메이크작이라고 한다), 그냥 막연히 뭐 미장센이나 연출이 좋겠지?라는 약간의 기대만 가지고 본 것 같다. 나름 출연진이 릴리 로즈 뎁에 니콜라스 홀트이기도 했고(빌 스카드가드는 거의 알아볼 수도 없을 지경이니 패스...), 감독은 꽤 인상 깊게 보았던 <라이트 하우스>의 로버트 애거스이니.


아, 딱 예상만큼이었다. 고딕 느낌의 미장센 보는 맛만 있고, 재미나 감동은... 전혀 없었다. 되려 지루한 쪽에 가까웠고, 드라큘라가 하는 말은 알아듣기도 힘든데 자막도 없이 보니 더 환장.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비주얼적으로 상당히 폭력적이었던 드라큘라 최후의 모습... (역시 <라이트 하우스> 감독 아니랄까 봐?)


그냥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애정결핍 걸린 사람 잘못 만나면 인생 골로 간다'라는 교훈만 깨달은 정도? 였다. (사실 이건 직접 경험한 바이기도 해서 더 와닿았다는…) 올해 초에도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을 하긴 했는데, 진짜 소리 소문 없이 내려간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이런 것까지 열정적으로 찾아볼 것 같은 시네필 사이에서도 잔잔한 입소문조차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정서에는 역시나 조금 안 맞긴 했나 보다.


드라큘라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92)

드라큘라 (출처: 네이버 블로그)

<노스페라투>에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란시스 코폴라의 <드라큘라>도 보았다. 비슷한 내용인데, 드라큘라와 여주인공의 관계가 이쪽이 좀 더 개연성이 있어서 <노스페라투>처럼 황당한 기분은 아니었던 듯. 분위기도 이 영화가 훨씬 더 에로틱했던 것 같다. 드라큘라로 나오는 게리 올드만도 <노스페라투>의 빌 스카드가드와는 다르게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고, 위노나 라이더와 키아누 리브스의 리즈 시절에 찍은 영화니 뭐 배우들 비주얼은 이쪽이 압도적이었다. 심지어 편집 기술도 90년대 초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화려해서 이 영화가 보는 재미는 더 있었던 듯.


리볼버 (오승욱, 2024)

리볼버 (출처: 네이버 영화)

<무뢰한>을 개인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에(이 영화에서 전도연의 연기는 정말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굿와이프> 작가도 이 영화에서의 전도연이 인상 깊었는지 이 캐릭터 이름, 김혜경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했던 것 같다), 오승욱 감독의 최근작 <리볼버>에 대한 기대가 좀 있었다. 별 코멘트 안 하겠다. 갈수록 이런 느와르 한국 영화는 퇴화하는 것 같다. 이 장르가 이미 너무 많이 소비되어 버린 것일까? 다시 전성기가 오긴 올까?


화란 (김창욱, 2023)

화란 (출처: 네이버 영화)

칸에 초청되었다고 하고, 나름 저예산 영화 씬에서 호평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던 <화란>이 넷플릭스에 올라왔길래 궁금해서 봤다. 하, 그런데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 캐릭터, 너무 무리수를 둔 설정들... 도대체 이 영화가 왜 칸에 초청을...?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인데, 개연성 부재나 무리수 캐릭터 설정 등 내용 측면에서의 이슈와는 별개로, 유독 인디영화나 저예산 영화들이 어두운 소재를 좀 과하게 다루는 면이 없잖아 있는 것 같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같이 어둡고, 칙칙하고, 암울하고, 서늘하다. (찾아보니 이런 영화를 "불행 포르노"라고 부르기도 하나보다.) 보고 나면 마냥 우울하고 기분이 더럽다. 물론 이런 세상이 존재하긴 할 테니 이런 영화가 나오는 것일 수 있겠지만, 유독 저예산 영화에서 그려지는 밑바닥 세계는 더 처절하고 희망이 없는 느낌이다. 어차피 이런 소재를 다루는 이상 공감 측면에서는 글렀는데 재미나 감동도 없으니 원... 개인적으로는 저예산 영화씬에서도 좀 더 다양한 주제가 다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인디영화나 저예산 영화도 좀 더 활성화될 수 있지 않을까?


커피와 담배 (짐 자무시, 2006)

출처: 네이버 영화

짐 자무시의 <지상의 밤>을 나름 재밌게 봐서 연이어 본 영화. 이 영화도 옴니버스 형식인데, 아, <지상의 밤>과는 다르게 지루하고 또 지루하다... 일단 대화들이 딱히 재미가 없다. 짐 자무시만의 감성이 있고 그 감성을 좋아하는 팬층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어렵네…


사랑은 낙엽을 타고 (아키 카우리스마키, 2023)

출처: 네이버 영화

최근 나의 최애 감독들 중 하나로 등극한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최신작!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감독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 그 특유의 드라이함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캐릭터들 하나같이 표정이 없다.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드라이함은 다른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한없이 드라이 한 와중에도 타인을 향한 애정이나 온기가 있다는 게 킬포.


프렌치 수프 (트란 안 홍, 2024)

출처: 네이버 영화

요리에 대한 애정을 다룬 잔잔한 영화. (솔직히 좀 지루하고 재미없는 편에 가깝...) 개인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에서 굉장히 큰 행복을 느끼는 한 사람으로서, 매우 공감 갔던 대사가 하나 있었는데 뭐 대충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맛있는 음식이 더 직접적인 행복을 주지" 이런 비슷한 거였다(완전 기억에 의존해 쓴 것이라 정확하지 않지만 대충 이런 의미).


그나저나 영화와 너무 매치가 안 되는 이름의 감독이어서 찾아보니 베트남 출신의 프랑스 감독이라는데, 개인적으로 요리에 관심이 많고 프랑스 미식 문화에 대한 애정과 경외심이 있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영화 속 요리는 미슐랭 3스타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에게 자문을 받았다고. 근래의 많은 요리 예능 때문에 그러했듯, 이 영화를 보면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진다. 인생, 이런 즐거움이라도 챙기면서 살아야지.


브루탈리스트 (브래디 코베, 2024)

출처: 네이버 영화

처음으로 이동진의 언택트톡이랑 같이 보게 되어 장장 5시간 반 정도를 영화관에서 있게 한 영화. 영화 자체가 3시간 반이 넘는데, 중간에 15분 인터미션이 있어서 그렇게 버겁지는 않았다. 마치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일 것 같은데, 픽션이다. 이번에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오스카에서 (두 번째) 남우주연상을 받았는데, 개인적으로는 한 인간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 가이 피어스의 입체적인 연기가 인상 깊었다.


이 영화에 대해서 한 시간 반...이나 해설을 할 게 있을까 싶었는데 이동진님은 그걸 해내시더라(심지어 말이 꽤 빠른 분인데...). 영화의 구성에 대한 해설과 의미는 물론, 역사적 배경, 배우에 대한 이야기까지 온갖 이야기를 다 해주시는데 역시 평론가는 참 대단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는 데 있어 이렇게까지 세세한 디테일에 의미를 파고들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인 것 같은데 좀 과하게 의미를 연결시키는 부분이 없잖아 있는 것 같아서.) 하지만 결국 이런 게 문화를 더 다채롭게 즐기는 방식일 수도.


이동진의 언택트톡은 영화관에서만 보여주고 그 어느 채널에도 따로 업로드해주지 않기 때문에 해설이 필요한 영화라면(그리고 이동진의 팬이라면) 볼만 한 것 같다.


새벽의 저주 (잭 스나이더, 2004)

출처: 네이버 블로그

드라큘라에 이어 좀비물까지 몇 편 달린 올해 초. (이 영화 말고는 <사랑은 낙엽을 타고>에서 주인공들이 영화관에서 본 짐 자무시의 <데드 돈 다이>였다. B급 좀비물인데 다행히 킬링타임용으론 볼 만했다.) 뭐를 볼까 엄청 고민하다가 별 기대 없이 본 영화인데, 78년작 <시체들의 새벽>의 리메이크작이라고 한다. 이제까지 좀비물이 워낙 많이 나왔기 때문에 대부분 알거나 본 듯한 요소들은 다 있는데(아마도 장르적 특성상 다룰 수 있는 요소가 한계적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심장 쫄깃해지는 스릴러 물이었다. 개인적으로 고전 명작(히치콕의 스릴러나 <영웅본색>, <유주얼 서스펙트>같은 것...)을 보고 나서 영화에 있어 시의성도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 당시가 아닌 현시대에 보니 지루하거나 유치하거나 재미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하지만 웬걸…이 영화 정말 재밌더라. 나의 고정관념을 깨준 영화. 이제는 이미 어디선가 다 본 듯한 구조와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재밌게 본, 좀비물의 정석 같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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