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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영화 결산

총 17편 관람

by HeeHee

4월에는 (좋든 안 좋든) 간단히라도 코멘트를 남기고 싶은 영화들을 꽤 본 것 같다. 원래는 한국어 제목을 기재하는데, 이번에는 유난히 한국어 제목들이 좀 별로인 작품들이 유독 많아 다 영어 제목으로 기재하는 것으로 통일.


Rosemary's Baby (로만 폴란스키, 1968)

출처: 네이버 블로그

감독의 악명 높은 사생활은 차치하고... 일단 너무 유명한 작품이니 꼭 한번 보고 싶어서 리스트에 올려두었던 작품. 한국어 제목은 <악마의 씨>. (제목 그 자체로 스포 아닌 스포인 듯?)


전에도 언급했지만, 역시나 “시의성”이 중요하구나,라고 생각했던 작품이다. 오컬트 + 공포로 분류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영화 촬영 후 관계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악재들이 겹친 것으로 유명한 영화이니 보고 나서 기분이 나쁠까 봐 살짝 우려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보니 생각보다 맹숭맹숭한 오컬트였달까. 딱히 무서운 장면도 없었고, (대부분의 오컬트 영화가 그러하지만)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보면서 대충 다음 전개가 예상되어서 생각보다 살짝 맥 빠진 영화였다.


Vicky Christina Barcelona (우디 앨런, 2008)

출처: 네이버 영화

개인적으로 천재라고 생각하는 감독 중 하나인 우디 앨런의 작품 중 아직 보지 못했던 영화. (하지만 로만 폴란스키처럼 우디 앨런도 사생활 논란이 꽤 심한 감독이다.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어야 이런 예술작품들을 만들 수 있는 건가? 훌륭한 아티스트들 중에 그래도 꽤나 건전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천재 같은 사람들 중 사생활 논란이 다분한 사람이 유독 많은 느낌은 왜지. 아무래도 평범하게 살아서는 비범한 아웃풋이 안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한국어 제목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인데, 꽤나 뜬금없는 제목이다.


우디 앨런의 예전작들은 코미디 요소가 강하고 우디 앨런이 직접 출연해서 연기도 하는 작품들이 꽤 많은데, 최근작들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주인공들이 나오고, 미장센이 훌륭하다. 개인적으로 우디 앨런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그 영화들의 메시지가 크게 "인생 네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 " "인생은 운빨, " "애쓰지 마라, " 대충 이렇게 귀결되어서 나름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휴가를 온 두 친구 비키(레베카 홀)와 크리스티나(스칼렛 요한슨)는 우연히 화가 후안 안토니오(하비에르 바르뎀)를 만나게 된다. 후안 안토니오는 대놓고 이 두 여성에게 작업을 걸고, 경계하는 비키와 다르게 크리스티나는 그 플러팅을 즐긴다. 하지만 비키 또한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후안 안토니오에게 빠져들게 되고, 후안 안토니오는 이렇게 비키의 마음을 뺏는 데 성공하고는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크리스티나에게 가버린다. 이 대목에서 '역시 여유 있는 남자는 다르긴 하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비에르 바르뎀의 뻔뻔함과 여유로움이 여성성과는 아주 상반된, 그야말로 진짜 남자다움을 보여준달까. 비록 나는 여자긴 하지만, 그의 그 여유로움이 좀 탐나긴 하더라. (하비에르 바르뎀이 우리나라에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단발머리 이미지로 예능에서 좀 자주 소비되어 내 인식에도 그냥 뭐랄까... 그냥 선이 굵고 우직한 서양 배우 느낌이었는데, <하몽하몽>이나 이 작품에서의 젊은 하비에르 바르뎀을 보면 사실은 그가 테스토스테론 뿜뿜 하는, 완전 상남자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좀 놀라게 된다.)


Blow Out (브라이언 드 팔마, 1981)

출처: 네이버 블로그

지난달은 브라이언 드 팔마 영화들을 내리 몇 편 보았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이 작품. (한국어 버전으로는 <필사의 추적>이다.)


유독 이 작품에서 브라이언 드 팔마 특유의 편집 기술이 돋보인다. 그중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지막에 폭죽이 터지는 배경을 뒤로하고 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안고 있는 장면이었다. 슬픈 장면인데 정작 바깥에서는 화려한 폭죽이 터지며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고, 주인공과 그 세상의 단절이 인상 깊었달까.

출처: 구글 이미지

Passion (브라이언 드 팔마, 2012)

출처: 네이버 영화
출처: 네이버 영화

아, 역시 내 촉을 믿었어야 했는데… 아무리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라지만 저 포스터가 심히 구려서 볼까 말까 몇 년을 고민하고 이번에야 드 팔마 작품들 정주행 하면서 보게 된 영화다. (아니, 패션이면 그냥 패션이지, 아래 또 “위험한 열정”이라고 한국어 뜻까지 부제로 달아놓는 건 대체 뭔지... 게다가 포스터에 온갖 조잡한 문구들이 추가되어 있다...!) 대충 한 줄 요약: 레이첼 맥아담스만 엄청 예쁘다.


아, 너무나도 넷플릭스에서 킬링타임용으로 제작했을 것 같은 미친 여자들의 cat fight 영화였다. 이게 정말 드 팔마 감독 작품이라고…? 중간에 이 감독의 시그니쳐인 스플릿 스크린 같은 것들이 나와 이 감독 작품이라는 걸 겨우 인지할 수 있을 정도이고, 솔직히 영화가 너무 유치하다. 믿기지가 않아 대충 찾아보니, 이 감독의 최근작들이 전성기(1970-90년대)의 작품들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지배적인가 보다. 아니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좀 안타까운 일이다.


The Other Side of Hope (아키 카우리스마키, 2017)

출처: 네이버 블로그

어쩌다 핀란드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이 그를 도와주는 현지인들과 유대를 쌓으며 정착해 가는 이야기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모든 영화가 그렇듯 이 작품 역시 deadpan 코미디인데 그 안에 따뜻함이 낭랑한 영화이다. 워낙 아키 카우리스마키를 좋아해서 좀 찾아보니 그 특유의 스타일인 미니멀리즘, 담담한 정서 같은 것들은 오즈 야스지로 감독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근래 들어 오즈 야스지로 이름이 여기저기서 종종 눈에 띄기도 해서 마침 궁금하긴 한데, 그의 작품들이 좀 연식이 된 작품들이라(그리고 아키 카우리스마키 작품들 같은 유머는 없을 것 같아...) 아직 선뜻 시작을 못하고 있다.


다른 작품들과는 좀 다르게 이 영화에서 일본 요소가 살짝 나온다. (그래서 아키 카우리스마키도 분명 일본 문화에서 뭔가 영향을 받은 감독이겠거니, 추측할 수 있었다.) 시리아 난민인 주인공이 일을 하게 되는 레스토랑에서 일본인 단체 손님을 상대로 아주 허접하게(!) 만든 스시 장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이 씬이 너무 웃겼다는.


M. Butterfly (데이빗 크로넨버그, 1993)

출처: 네이버 블로그

처음에는 그냥 단순히 오리엔탈리즘에 빠진 백인 남자 이야기인가 했다. 심지어 남자 주인공이 제레미 아이언스인데, 유독 내가 본 작품들이 그런 건지는 몰라도 항상 이 배우가 나오는 작품에서는 꼭 여자한테 정신 못 차리고 파국으로 치닫는 역할이 많았어서 인지 나에게는 호색한(?) 이미지가 뇌리에 강하게 남은 배우이다. 그 선입견으로 이번 영화를 보니 '아니 이번에는 동양 여자야...?' 이런 생각이 또 들면서 '이 배우 진짜 한결같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영화는 실화 바탕이라고 한다. 너무나 강력한 스포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 쓰지는 못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름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어서 기대보다는 신선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둔했던 걸까? 싶기도 하고.) 처음에는 <색, 계>와 비슷한 영화인가 했는데 약간의 트위스트가 있는 영화이다.


Shadows in Paradise (아키 카우리스마키, 1986)

출처: 네이버 영화

<아리엘> 그리고 <성냥공장 소녀>와 함께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핀란드 노동자 계층의 고독과 연대를 그린 프롤레테리아(노동자 계급이라는 뜻) 3부작 중 하나. 이 작품의 한국어 제목은 <천국의 그림자>이다.


삶에 대한 의욕이 없던 쓰레기 수거원인 주인공이 한 여자에게 반해 살아갈 희망을 얻고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되는 이야기다. 여기도 소소하게 마음 따뜻해지는 장면들이 있는데, 가령 사랑에 빠진 후 친구와 가만히 앉아있다가 주인공이 친구에게 "아름다워, 해와 바다와 새들."이라고 뜬금없이 말하는 장면이라던가, 주인공이 이 여자와 잘 되게 도와주려고 주인공의 친구가 자기 딸의 저금통을 터는 장면 등이다 (특히 이 장면에서는 혼자 피식했다). 어찌 보면 굉장히 소소한 장면들인데, 평소에 놓치는 행복의 감정들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 더 뇌리에 남았다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김기덕, 2003)

출처: 네이버 영화

예전에 친구가 이 영화의 풍경이 아름답다고 했던 것 같아 리스트에만 추가해 두고 드디어 이번에 보았다. 계절 별로 챕터가 나뉘면서 인간의 여러 악한 본성, 본능 같은 것을 보여준다.


내가 김기덕 영화를 많이 봤다고는 못하지만, 대충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는 알고 있다. (별로 내 취향은 아니어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찾아보진 않았다.) 나름 좀 추측해 보자면 그나마 이 영화가 그 김기덕 작품들 특유의 불쾌한 성적 요소는 덜한 편일 것 같은데, 그래도 존재하긴 하고 여전히 묘하게 기분이 불쾌하다.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인가? 홍상수나 에릭 로메르는 이성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도 때때로 유머가 있어 자칫 불쾌할 수 있는 그 기분을 가볍게 휘발시키기도 하는데, 유독 김기덕의 인물들은 늘 너무 진지하고 어둡다. 게다가 그 분위기를 수반한 행위가 종종 도덕적인 선을 한참 넘기도 하고. 그래서 유쾌함은 없이 불쾌함만 남는 것 같다.


Casualties of War (브라이언 드 팔마, 1989)

출처: 네이버 블로그

이 영화는 그나마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전성기 때 만든 영화라 위에 언급한 <패션>과는 달리 볼만한 영화다. 개인적으로 이제 전쟁 영화에 별로 관심이 없는지라 썩 끌리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드 팔마 감독 영화들을 정주행 하면서 안 볼 수 없어 보게 된 영화다. 숀 펜의 이렇게 젊은 시절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인 듯. 한국어 제목은 <전쟁의 사상자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오프닝의 지하철 씬인데,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배경 인물들이 마치 연극 세트장에 있는 것처럼 인위적이고, 색채와 조명도 꽤나 극적이기 때문. 처음에 보면서 '이거 상당히 기괴한(?) 지하철 씬이네... 전쟁 영화로 알고 있는데 꽤나 뜬금없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 지하철 씬만 제외하면 전쟁터에서의 영상들은 드라이하고 사실적이다 (물론 중간중간 감독 특유의 화려한 편집 기술이나 카메라 워크가 사용되고는 하지만). 아마도 그 지하철 씬은 전쟁이 끝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주인공이 느끼는 그 비현실적인 현실과 전쟁터에서의 잔혹했던 현실의 대비를 보여주는 장치로 보이는데, 꽤나 인상적인 연출이었다.

The Big Feast (마르코 페레리, 1973)

출처: 네이버 블로그

최근에 굉장히 예약이 어렵다는 식당에 예약을 성공해서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잔뜩 먹고는 집에 오는 길에 (그리고 집에 와서도) 결국 다 토했다. 그리고 잠깐 잠들었다가 새벽에 깨서는 '아, 다 부질없네 이렇게 먹고 다 토할 거...'라는 생각에 '이제 식탐 부리지 말자' 등등 온갖 자책을 하며 허무주의에 빠졌었는데, 그 와중에 이 영화가 계속 생각났다. 한국어 제목은 <그랑 부프>이다.


인생에 권태로움을 느끼는, 꽤나 부유한 중년 남성 친구 네 명이서 한 별장에서 죽을 때까지 먹고 마시고 여자들과 쾌락만 즐기다 차례차례 죽는 내용이다. 정말 더 이상 음식이 들어가지 않을 지경에 이르러도 이들은 쉴 새 없이 꾸역꾸역 입안에 음식을 욱여넣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모든 것에 감흥이 떨어지는 걸 느낀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너무 과하게 먹고 마시는 것에서 사치나 탐욕을 부렸다는 생각이 들면, 그 역치를 낮추기 위해 다시 단출하고 간단한, 그냥 직관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찾고는 한다. (사실 이게 속이 더 편하기도 하고.) 이제 난 하루만 폭식해도 그 후폭풍이 어마어마하던데... 저 주인공들은 정말 얼마나 인생이 허무했길래 저렇게 죽을 정도로 먹고 마셨나 싶다. 더 권태로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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