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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영화 결산

총 18편 감상

by HeeHee

6월이 되었으니 ‘이번에는 얼른 5월 결산을 올려야지!‘라고 생각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6월 말일이라니...! 다시 한번 또 게으른 나 자신을 반성하며 이번에는 비교적 간략히(?) 지난 결산을 기록해 본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파얄 카파디아, 2024)

출처: 네이버 영화

여기저기서 이 영화 제목을 종종 봤던 기억이 있어 보게 된 영화다. 아마도 작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이라 그랬던 듯. (인도 여성 감독 작품으로서는 최초 칸 경쟁부문 진출작이라고 한다.) 사실 막 엄청 끌리지는 않았던 작품이지만, 나름 호평이었던 것 같아 한번 봤다. 이 작품은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인도의 계급 사회, 여성의 지위, 종교적 차이에 대해 그린다. 예상외로 영상미와 음악이 꽤나 좋았다. 특히 뭄바이 밤 풍경의 흐릿하면서 몽환적인 불빛 등. 인도의 모습을 이렇게 자세히 접할 수 있던 영화도 개인적으로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내용 측면에서는 좀 지루했다. 서사가 좀 부족하다고 할까. 이 영화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여성'으로서 겪는 문제로는 꽤나 흔한 소재이기도 하고, 딱히 인도 여성에게만 국한된 문제도 아니어서 서사만 좀 더 충실하게 채워졌더라면 더 공감가지 않았을까 싶다. 뭔가 중간 단계들이 생략되고 (예측 가능한) 결론이 바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 보편적 감정에 충실한 영화도 아닌 것 같고... 심지어 평소에 인도 영화를 잘 보지도 않거니와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보았는데, 지루한 와중에 특히나 생소한 인도어 영화를 자막으로 보려니 기분 탓인가, 왠지 모르게 피로감이 더 느꼈다. (게다가 몰랐는데 인도에서는 지역별로 다른 언어를 쓴다고 한다. 내가 너무 상식이 부족한 듯. 이 영화 보고 이제 처음 안 사실이다.) 세 여자들의 삶을 겉핥기식으로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했다 (아키 카우리스키마키, 1990)

출처: 네이버 영화

영국에서 일하던 한 프랑스인 앙리가 정부의 민영화 정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고, 아무도 없이 외로운 삶을 살던 그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결국 그는 살인 청부업자에게 본인을 죽여달라고 의뢰를 하고, 2주 안에 일이 성사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다. 청부업자는 앙리에게 혹시 마음이 바뀌면 그전에 알려달라고 하지만, 그는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다 우연히 마가렛이라는 꽃을 파는 여자를 만나 첫눈에 반하고, 다시 삶의 의미를 찾게 되어 이후로 필사적으로 청부업자를 피해 다니게 된다.


흔하디 흔한 주제이지만, 내가 워낙 이 감독의 미니멀한 연출법을 사랑해서 그런지 이 영화마저 좋았다. 개인적으로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간결하고 묵직하게 그 중요성을 표현해 낸 그 단순함이 좋다. 게다가 본인을 죽여달라고 의뢰까지 했던 청부업자를 다시 피해 다니는 입장이라니, 어찌 보면 되게 무서운 상황인데 이걸 유머러스하게 풀어낼 수 있는 그 발상이 기가 막히다.


르 아브르 (아키 카우리스키마키, 2011)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는 살짝 다른 결이었다. 주로 남녀 간의 사랑이 (물론 노동과 함께) 이루어졌다면, 이 영화에서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아프리카에서 밀입국한 소년을 숨겨주고 도와주는 한 노인 구두닦이를 그린다. 그 소년을 영국에 있는 엄마의 품으로 보내주기 위해 심혈을 다해 도와주는 구두닦이의 마음이 너무나도 따뜻했다. 보고 나서 인류애가 충전되는 느낌이었달까. (왜냐면 솔직히 나란 사람은 절대 못할 짓이기에... 하지만 저런 사람들이 있어야 이 세상이 그나마 살만하게 굴러가겠지.)


A Woman under the Influence (존 카사베츠, 1974)

출처: 네이버 영화

한국어 제목으로는 <영향 아래 있는 여자>. 근래 들어 존 카사베츠의 이름을 여기저기서 본 것 같아(정확히 누가 말한 건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이 감독의 영화들을 몇 편 내리보았다. (참고로 존 카사베츠는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에 출연했던 남자 주인공이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이 영화다. 남편과 세 자녀와 사는 한 주부, 메이블이 점점 불안정한 정신으로 기이한 행동과 감정상태를 보이는데, 메이블을 연기하는 지나 롤랜즈의 연기가 가히 압권이다. 사실 그녀가 그렇게까지 정신이 이상해진 정확한 계기는 나오지 않아 정확한 서사를 파악할 수는 없다(대충 그렇게 유해(?) 보이진 않는 남편을 감당하고 애를 셋이나 키우는 주부의 누적된 스트레스라고 추측하는 수 밖엔). 진짜 미친 여자를 보는 것 같았는데, 어찌나 그 불안정한 감정을 그렇게 날것 그대로 표현하는지, 보는 나까지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나 롤랜즈라는 배우는 이번에 처음 봤는데(가 아니라 <노트북>에 나왔다고 하는데 기억이 안 나네...), 이런 배우가 있었나 싶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작년에 별세하셨네... 존 카사베츠의 아내로 그의 영화 다수에 출연했고, 아들이 연출한 <노트북> 에도 출연했었다.


존 카사베츠의 연출과 촬영기법은 꽤나 독특하다. 특히나 그 시대를 감안하면. 그래서일까, 아마도 배우보다도 감독으로서 좀 더 인정을 받았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나 탁월했는데, 불안함을 나타내는 신체의 일부(가령 손)만 클로즈업한다던지, 정확히 메이블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지는 보여주지 않은 채 메이블의 이상 행동을 보고 충격에 빠진 가족들의 표정만 잡는 장면들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It Comes at Night (트레이 에드워드 슐츠, 2017)

출처: 네이버 영화

A24 영화는 꽤나 많이 챙겨보는 편이고 안 본 것들도 대충 이름들은 들어봤는데, 우연히 알게 된 이 영화는 꽤나 생소했다. 마침 자기 전에 뭘 볼까 고민하던 차에, 별로 유명한 것 같지 않아 아무런 기대 없이 틀었고 예상외로 끝까지 다 보고 잠들었다 (보통 잘 때 영화를 틀면 꼭 잠들기 때문에... 이걸 끝까지 한 번에 다 봤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전염병이 퍼진 와중에 어느 깊은 숲 속 은둔하며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로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다가, 어느 날 생존을 위해 침입한 한 남자를 포박한 뒤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까지 집에 들이면서 벌어지는 심리 스릴러이다. 이 새로운 가족을 일단 집에 들였으나 계속 꺼지지 않는 의심, 그리고 서로에 대한 경계 때문에 벌어지는 심리전에 나도 모르게 조마조마하면서 꽤나 집중해서 끝까지 봤다. 제일 인상 깊었던 포인트는 영화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급격하게 줄어들던 화면비. 아마 이렇게 대놓고 화면비가 줄어드는 영화는 거의 처음 본 것 같은데, 인물들이 겪는 심리적 압박을 꽤나 잘 나타내준 것 같았다.


대충 후기를 찾아보니 "그래서 대체 '그것'이 무엇이냐"라는 혹평이 꽤나 보였다. 이 대목에서 수년 전, 넷플릭스가 한국에 거의 처음 들어왔을 때 크게 화제가 되었던 <버드박스>라는 영화가 갑자기 떠올랐다. 당시에 <버드박스>가 굉장히 재밌다는 평이 지배해서 봤다가, 지금 <It comes at Night>에 대한 혹평과 같은 이유로 실망했었다. <버드박스>는 정체불명의 존재로 인해 인류가 자살을 하게 되는 내용인데, 모두가 눈가리개로 눈을 가리고 그 정체불명의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대피하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여기도 보이지 않는 공포가 존재한다. 너무 오래전에 본 영화라 지금 보면 뭐 느낌이 다를까 싶기도 한데, 결국 <버드박스>도 똑같이 위협의 원인을 알려주지 않는 심리 스릴러인데 오히려 이 영화가 더 그 위협의 원인을 밝힐 듯~ 말듯~하는 느낌이었다가 그냥 팍 끝나버려서 이거 뭐야? 했던 기억이 있다. 반면, 개인적으로 <It Comes at Night>은 애초에 '그것'에 대한 정체보다는 인물들 서로 간의 불신과 긴장감을 처음부터 엄청 깔고 가서 나도 “그것"의 정체보다는 이 인물들의 심리전에 더 몰입을 했던 것 같다. (<버드박스>는 산드라 불록이 주연을 맡아 더 버프 되었던 게 아닐까, 조심히 추측해 본다.) 뭐 어찌 되었든, 전혀 기대 안 했으나 나름 몰입해서 본 영화.


플라워 킬링 문 (Killers of the Flower Moon; 마틴 스코세이지, 2023)

출처: 네이버 영화

실화를 기반으로 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최근작이다. 장장 3시간 반이 넘는 러닝타임에 인디언 내용이라 딱히 끌리지 않아 결국 개봉했을 당시 영화관에서 못 (혹은 의도적으로 안) 보고 지나간 작품이었는데, 애플티비에 있길래 감상했다. (어쩌다 애플티비 무료이용권이 생겨서 사용 아닌 사용(?) 중이다. 그런데 이건 뭐, 너무나도 볼 게 없어서 있으나 마나 한...) 이 영화는 실제로 1921년부터 오세이지족을 대상으로 벌여진 연쇄살인에 대한 실화 기반이다. 석유를 소유한 오세이지족을 죽여 그 재산을 탐하고자 한 백인들의 만행을 고발하는 영화인데, 그래서 그런가 늘 스코세이지 감독 영화 특유의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이 또 강하게 느껴지는 영화였다. 명확한 스토리가 있고, 그냥 그 흐름을 따라 관람하면 되는 영화. 일종의 폭로성(?) 영화이지만 뭐 엄청 스릴 넘치거나 긴장감 있거나 자극적이지는 않다. 슴슴하지만 기본적인 내용에 충실한 느낌?


그나저나 '플라워 킬링 문(Flower-Killing Moon)'은 5월의 보름달을 의미하는데, 오세이지족 전통에서 5월이 되면 작은 꽃들이 큰 꽃들에 의해 사라지는 현상을 빗댄 시적 표현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와 같은 제목은 원주민의 번영과 그 번영이 백인들에 의해 파괴되는 과정을 상징한 것이라고.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크리스토퍼 맥쿼리, 2025)

출처: 네이버 영화

전편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이 딱히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아 나 이제 나이 먹었네... 이런 영화 이제 재미없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마지막이고 뭐 딱히 영화관에서 볼만한 다른 영화도 없어서 큰 기대 안 하고 봤다. 뜬금없지만 영화 시작 전에 톰 크루즈가 이 영화를 보러 와준 관객들에게 고맙다는 감사인사를 하는 짧은 영상이 나오는데, 살짝 감동받고 시작. (요즘 후퇴하는 영화 퀄리티는 생각도 안 하고 영화관에 사람들 안 온다고 찡찡대기만 하는 국내 영화배우들 기사만 하도 봐서 그런 듯.)


영화 초반에 그간의 미션 임파서블 영화들의 주요 장면들을 플래시백으로 보여주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분명 나 저 영화들 어릴 적 영화관에서 봤는데... 어느덧 저 젊고 잘생겼던 톰 크루즈가 이렇게 할아버지가 되었다니...ㅠㅠ 세월이 이렇게나 흘러 나도 저만큼 나이를 먹었구나 생각을 하니 괜히 서글퍼졌다. 그러다가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그래... 아무리 톰 크루즈가 지금 할아버지가 되었어도 톰 크루즈는 톰 크루즈네... 28살 연하 만날 자격 너무나 있네...’라는 생각부터 들더라...ㅋㅋ


결론적으로 영화는 전편보다는 더 나았다. 미국 액션 영화의 클리셰인 국뽕과 가족애가 만연하게 펼쳐지지만 다 알면서도 여전히 예상 가능한 만큼 오락스러웠달까. 그나저나 톰 크루즈가 저 나이에도 이렇게 액션을 직접 소화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언의 꿈과 희망(?)을 주는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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