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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영화 결산

뜨거운 여름에는 몸을 쓰자

by HeeHee

6월에는 총 23편의 영화를 보았다. 날이 더워져서 인가, 꽤나 노출도 있고 육체를 많이 쓰는(?) 영화를 많이 본 것 같은데, 역시 계절에 따라 구미가 당기는 콘텐츠 장르가 달라지나 보다.


La Piscine (자크 드레, 1969)

출처: 네이버 이미지
출처: 네이버 이미지

영화 제목은 프랑스어로 '수영장'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수영장이 핵심 장소로 (그리고 그에 따른 아주 아름다운 주연 배우들의 노출까지 덤으로(?)) 등장하는 영화이다. 대략 줄거리는, 주인공 작가 장폴(알랭 들롱)과 그의 연인이 마리앤(로미 슈나이더)이 남부 프랑스의 빌라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장폴의 옛 친구이자 마리앤의 옛 연인이기도 한 음악 프로듀서 해리(모리스 로네)와 그의 딸 페넬로페(제인 버킨)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심리 스릴러이다. 수영장과 빌라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카메라가 이 네 인물의 시선이나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숨 막히게 잡아내는 것이 이 인물들 간의 갈등이랑 심리적 긴장을 한층 더 고조시킨다.


옛 연인이 개입되고, 너무 아름다운 남녀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보니 거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서로 간의 묘한 긴장감, 질투, 욕망 등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너무 뻔하기도 해서 놀라울 것은 없지만.) 그 와중에 아마도 지금 시대라면 사람들이 진짜 말도 안 된다고 쌍욕 할 장면들이 다수 나오긴 한다. 애초에 전 남자친구를 현재 애인과 지내고 있는 빌라에 흔쾌히 초대하는 애인이나, 본인도 손님 입장이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떼거지로 데려와서는 남의 빌라에서 파티를 여는 전 남자친구나...ㅋㅋ


개인적으로 처음에는 폴 슈나이더의 미모에 감탄하면서 영화를 보다가, 제인 버킨 등장 이후로는 그녀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사실 폴 슈나이더가 더 정석의 금발 미녀인 것 같은데, 제인 버킨은 그 분위기가 진짜 놀랍더라. (말로만 듣던 그 제인 버킨이 등장하는 영화는 이번에 처음 본 것 같다.) 정석 미녀도 압도해 버리는 그 매력과 분위기... 1960년대인 게 촬영한 영화란 게 무색하게 색감, 배우들의 의상들까지 그냥 모든 게 너무 아름답다. 그냥 딱 여름에 보기 좋은 영상이랄까.


사실 뭐 엄청나게 대단한 내용은 없는 영화였고, 그냥 알랭 들롱과 이 두 여인들이 개연성이고 이 영화를 보는 이유였다. 그래서일까 (대부분 영화의 미감에 대한 듯 한) 호평도 있었지만, The New Yorker에서는 "겉멋만 든 공허한 작품"이라고 혹평했다고. 그나저나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알랭 들롱과 로미 슈나이더가 실제로 연인이었다고 한다. 역시... 다시 한번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은 아름다운 사람들끼리 만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Faces (존 카사베츠, 1968)

출처: 네이버 이미지

5월부터 꽂혀서 보기 시작한 존 카사베츠의 영화들 중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작품. 한 중산층 부부, 리처드(존 말리)와 마리아(린 칼리)의 결혼생활이 파탄 나는 과정을 그리는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관계의 불편함, 소외감, 어색함 같은 것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영화는 시네마 베리테(cinéma vérité ) 스타일로 연출됐다. 다큐멘터리적이고 즉흥적인 연출 방식으로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을 포착하는데 중점을 둔 것이다. 게다가 핸드헬드 카메라 워킹으로 인물들의 혼돈스러운 감정이 잘 나타난다. 이 영화는 고대비(high-contrast) 흑백 필름으로 촬영되었는데, 그 명암 때문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클래식하고도 실험적인 느낌을 준다. 영화 제목이 <Faces>인 것처럼, 이러한 촬영 기법과 익스트림 클로즈업이 더해져 인물들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포착되는데, 그 표정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상당히 인상 깊었달까. 특히 마지막 시퀀스가 압권이었는데, 이미 각자 외도를 한 사실을 깨닫고 집안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지만, 서로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고 애써 피해 다니는 리처드와 마리아의 움직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 같이 있으면서도, 서로는 계속 의도적으로 엇갈리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일말의 접촉도 싫다는 듯 시선은 상대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을 응시할 뿐이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내리며 각자가 갈 곳으로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이렇게 응축적으로 감정적 단절을 표현해 낸 이 씬이 상당히 신선해서 기억에 유독 남을 것 같다.


이 영화의 주 테마인 한 중년 부부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여 생기는 그 감정적 소외감에서 시작되는 관계의 파탄과는 별개로, 인간이 늙는 것에 대한 공포, 두려움 같은 것도 대사를 통해 강하게 전달된 것 같다. 매춘부(지나 롤랜즈)와 술 먹고 춤추며 즐기는 와중 리처드의 친구는 본인들 소싯적 이야기를 꺼내며, "우리 어릴 땐 여자들이랑 참 많이 놀았었는데,"라고 언급한다. 역시 마리아도 친구들과 파티에서 만난 한 젊은 남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그 친구 중 한 명은 이 젊은 남자에게 늙은 남자들은 이런 젊은 남자의 "youth, spirit, build"를 질투한다는 언급을 한다. 결국 인간들은 서로에게서 끊임없이 인정과 관심을 갈구하는 존재이구나. 게다가 상대방이 어릴 때 느꼈던 순수한 즐거움 같은 것까지 제공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구나, 라는 생각도 문득 스쳐 지나갔다.


자전거를 탄 소년 (다르덴 형제, 2011)

출처: 네이버 이미지
출처: 네이버 이미지

사실 영화든 드라마든 어린아이가 주인공인 콘텐츠는 개인적으로 취향에 안 맞아서 잘 안 보는 편인데, 이 영화는 어디서 또 주워들은 적은 있어서 한번 봤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소년이 계속 아버지를 찾으려 애쓰다가 어느 위탁모의 도움으로 상처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냥 한번 선입견 내려놓고 봐보자, 해서 큰 기대 없이 본 영화인데, 인트로 때 느낌이 왔다. 아, 이 영화는 다르겠다. 처음부터 아버지를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이 소년의 모습이 너무 처절하게 다가와, 나도 모르게 그 감정에 휩쓸렸다. 이 소년이 그토록 아버지를 찾고 있는 그 사연이 뭔지, 이 소년의 아버지를 찾는 여정이 어떻게 전개될지 너무 궁금해져 버렸달까.


영화는 소년이 결국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았음을 깨닫고 큰 상처를 받지만, 위탁모의 도움으로 상처를 극복하는 것을 덤덤히 암시하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는 큰 기교 없이 굉장히 미니멀하게 진행된다. 화려한 연출이나 편집 없이, 거친 핸드헬드 카메라로 소년의 파도 같은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오히려 이런 소년같이 어린아이의 감정을 다루는 영화는 이렇게 담백하게 촬영하는 것이 관객으로 하여금 그 어린아이의 세계에 더 섬세하게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리벤지 (코랄리 파르자, 2017)

세상 즐겁다가... (출처: 네이버 영화)
저래 됨... ㅠㅠ (출처: 네이버 영화)

작년 말 굉장히 화제였던 영화, <서브스턴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내용은 세상 심플하다. 유부남인(!) 연인에게 버림 당하고 심지어 그의 친구에게 성폭행까지 당한 여주인공이, 그들로 인해 거의 죽음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나서 그들을 하나하나 끝까지 쫓아가 죽이는 내용. 그러니까, 그냥 쭉- 밀고 나가는 이야기이다. (배우들은 다 처음 보는 굉장히 생소한 사람들이다.)


영화 <서브스턴스>에서 보여줬던 요소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전자 음악이라던지, 육체에 거의 붙다시피 한 클로즈업, 쨍한 컬러 사용 등으로 화려한 시각적, 청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게다가 유혈이 낭자한다. 진짜, 진짜 낭자한다. 엄청난 바디 호러 요소 포함! 내용은 일말의 반전도 없고 너무나도 예상 가능하지만, 역시 아무리 다른 여러 사람이 했던 뻔한 일이랄지라도 "잘" 하면 되는 것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영화다. 너무 식상한 표현이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연출에 복수가 시작되었을 땐 여주인공의 감정에 너무 강렬하게 이입했고, 막판에는 마치 내가 게임 플레이어가 되어 마지막 남은 그 남자를 죽이러 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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