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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영화 결산

한여름의 피서지, 영화관

by HeeHee

8월에는 영화를 좀 뜸하게 봤다. 총 11편. 그중 절반이 고전 영화였다. 최근 영화관 재개봉 열풍과 더불어 굿즈 이벤트가 많아져, 한동안 한산했던 극장에 오랜만에 활기가 도는 것이 좀 체감되고 있다. ‘이제 영화관은 정말 끝인가?’ 싶었던 때가 무색할 만큼(물론 아직 갈 길이 멀긴 하겠지만), 관객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다시 살아나는 듯해 내심 기쁘다.


머티리얼리스트 (셀린 송, 2025)

출처: 네이버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주목을 받았던 셀린 송 감독의 신작. 사실 전작에 크게 실망했던 터라 이번 영화는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상보다는 괜찮았다. 사실 특별히 독창적인 서사는 아니지만 음악과 영상미, 분위기가 좋아서 볼 만했달까. 그냥 영상미가 너무 예뻐서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 잠시 뉴욕에 다녀온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다코타 존슨을 보는 즐거움도 상당하고. (그녀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얼굴만 보면 되게 덩치가 있을 것 같은데 의외로 (?!) 상당히 슬렌더이다. 게다가 그 나른한 목소리와 말투... 분위기가 상당히 매력적인 배우여서 볼 때마다 같은 여자지만 나도 모르게 좀 홀린달까...)


내용은 뭐 익숙한 내용이다. 돈 많고 조건 좋은 남자 말고 결국 (가난하지만) 내 마음이 더 편하고 이성적으로 끌리는 남자를 선택하는 여자 이야기. 다만 현시점에 이런 내용을 풀다 보니 대사들이 매우 날 것 그 자체. 그래서 언어적, 정신적으로 좀 폭력적이긴 한데, 뭐 딱 요즘 시대 영화답다.


영화와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셀린 송 감독이 한편 좀 대단한 게, 솔직히 <패스트 라이브즈>는 정말 그렇게까지 호평을 받을만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이 영화로데뷔를 하자마자 주목을 받고, 그 버프를 받아 이 말도 안 되는 캐스팅(다코타 존슨, 크리스 에반스, 그리고 요즘 대세라는 페드로 파스칼까지)으로 차기작을 찍을 수 있다는 게, 참 사람 운명 알 수 없네...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패스트 라이브즈>가 애초에 외국 시장을 타겟한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또 한편 셀린 송 감독 인터뷰들을 보면 말을 상당히 잘하는데, 보다 보면 ‘세일즈 능력이 상당하네,’라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일단 (내용이 좋고 나쁨을 떠나) 말도 술술 잘 하지만 말을 할 때 그 자신감과 확신에 찬 애티튜드가 눈에 띈다. 역시 적극적 PR은 잘 먹힌다. 그녀의 능력이 부럽다.


죠스 (스티븐 스필버그, 1975)

출처: 네이버 영화

아주 유명한 클래식이지만 사실 아직(!) 본 적이 없었다. 마침 개봉 50주년이라고 롯데시네마에서 재개봉을 했는데, 너무 옛날영화라 지금 보면 재미없을까 봐 막판까지도 볼까 말까 고민을 하다 결국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길 잘했다. 사실은 초반에는 그냥 별생각 없이 보고 있다가, 갑자기 무슨 시체 튀어나오는 장면에서 완전 소스라치게 놀라서 다리를 펄쩍 뛰면서 비명을 질렀는데, 내 옆에 앉아있던 남학생이 나 때문에 놀란 것 같아 좀 민망해졌고… (사실 이 장면에 나오는 사운드에 내 비명이 묻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 후로 나 스스로 너무 웃겨서 보면서 겨우 웃음을 참으며 보다가 주인공이 상어 잡으러 바다로 떠난 장면부터는 또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올까 봐 긴장을 끈을 놓지 못하고 관람했다. (아, 영화 보면서 한 20년 늙은 기분은 처음...) 적어도 나에게는 “호러 블록버스터”라는 장르에 아주 걸맞은 영화다.


이 영화의 엔딩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인상 깊었는데, 상어를 결국 죽이고 나서 마을에 돌아가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알리고 사람들이 기뻐하는 그런 뻔한 전개가 아니라, 그냥 바다 한가운데서 영화가 끝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이게 훨씬 담백하고 깔끔하게 느껴져서 좋았다. 굉장히 미니멀하다고 느껴진 엔딩이었달까. 이런 영화를 고작 28세에 만들었다는 게 너무 놀랍다. 그 이후의 필모도 굉장하니… 스필버그는 정말 감독으로 태어난 사람인 듯.


그나저나, 한여름에 광활한 바다, 그리고 미국 어느 작은 휴양 마을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고 집에 오니 이 현대적인 배경이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져 마치 바캉스를 다녀온 기분이었다. 아주 가성비 좋게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랄까?


거미의 성 (구로사와 아키라, 1957)

출처: 네이버 블로그

꽤나 많은 서양의 거장 감독들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거론되는 감독 중 하나가 구로사와 아키라다.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아직도 <라쇼몽>은 내 리스트에만 담겨있다) 별생각 없이 본 영화다. 전에도 말했던 것 같지만, 일단 이렇게 옛날 흑백 영화는 명작이던 명감독이건 크게 기대는 안 하는 편이다. 지금 보면 다소 지루할 것 같아서.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각색한 영화인데, 기본적으로 욕망과 욕심으로 인해 파멸에 치닫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예상외로 이 영화는 꽤나 흥미진진했다. 뭔가 다른 영화에서는 보지 못했던 (아마도 지금보다는 기술에 한계가 있었을 테니) 편집 기법을 보는 재미가 있었달까. 특히 안개가 자욱한 숲에서 말을 타고 질주하는 장면이 생각보다 인상 깊었는데, 아주 옛날에 촬영된 흑백화면인데도 불구하고 꽤나 생동감이 있고, 그 분위기가 심리적 긴장감과 불안을 극대화했달까.


로마의 휴일 (윌리엄 와일러, 1953)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도 명작으로 꼽히는 클래식 중 클래식이나, 사실 아직 보지 못해서 롯데시네마에서 재개봉해 준 기회로 관람하게 되었다.


뭐 별 말 필요한가. 오드리 헵번은 아름답다. 그리고 현실적 결말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이번에 본 고전명작들은 엔딩이 참 군더더기 없네.) 신분차이로 결국 둘이 이어지지는 못하지만 서로 마음에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곱게 담아두고 헤어지는 엔딩.


그나저나 공주들은 자기 전에 우유와 크래커를 먹나 보다(아니면 오드리 헵번만?). 뜬금없이 이 포인트에 꽂혀서는 나도 괜히 따라 해 보겠다고 적당한 크래커 사냥에 몇 번 나섰지만 결국은 ‘내가 오드리 헵번도 아닌데 밤에 먹고 살만 찌겠지…’라는 생각에 계속 내려놓게 되었다는…


토니 에드만 (마렌 아데, 2016)

출처: 네이버 영화

단지 <추락의 해부>와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여주인공 산드라 휠러가 익숙해서 보게 된 영화인데, 중간중간 아버지로 나오는 주인공 때문에 뻘하게 피식한 영화다.


영화는 워커홀릭 딸 이네스(산드라 휠러)와 사이가 소원해진 아버지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의 이야기를 다룬다. 독일에서 혼자 지내던 빈프리트는 반려견이 죽자 허전함을 느끼고 다짜고짜 루마니아에서 일하는 딸을 찾아가면서 펼쳐지는 에피소드들.


내가 딸이라 그런지, 자꾸 산드라 휠러에 내 자신을 대입하게 되는데, 사실 내가 지금 저 상황이라면 정말 얼마나 끔찍할까 싶을 정도로 호러였다. 아버지가 틀니와 가발까지 써가며 이상한 분장을 하고 딸의 회사에 잠복해 있지를 않나, 딸이 친구들이랑 바에서 놀고 있는데 딴 사람인 척 내내 옆에 몰래 앉아있다가 불쑥 말을 걸질 않나…ㅠ 여하튼 이 영화는 외면하고 싶은 가족에 대한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보여준다.


끝내 산드라 휠러는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극복한 듯싶다가도, ‘에라이, 결국 안 되겠어,’ 싶다는 듯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참 가족인 뭔지. 미묘하다.


다이얼 M을 돌려라 (알프레드 히치콕, 1954)

출처: 네이버 블로그

바람핀 아내 마고(그레이스 켈리)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운 토니(레이 밀랜드). 하지만 그 어떤 단계도 그가 철저히 계산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 예상 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이건 영화 초반 토니의 “I assure you, nothing can possible go wrong.”이라는 확신에 찬 대사로서 그의 계획이 틀어지겠다는 예상이 된다.)


개인적으로 히치콕의 영화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늘 막판에 어떤 인물이 등장해 여태까지의 모든 상황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뭐랄까, 너무 설명에 충실하달까…? 문득 그의 모든 영화가 그런가 싶어 찾아보니, 이 영화처럼 스릴러/추리극에서만 그러한 설명 요소를 넣는다고 한다. 하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는 이런 설명 엔딩을 못 봤던 것 같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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